[생각해:보다] #2. 너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너를 다시 보다
1.
우리 반 ㅅ는 불쑥 물어 본다.
"저는 왜 이렇게 키가 작을까요.", "친구들은 제가 말해도 안 듣겠죠.", "아이들 앞에서 제가 쓴 편지를 읽게 해 주세요.", "날 좋아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어요.", "왜 ㅈ와 ㅈ는 저를 째려볼까요. 질투가 나요.", "저요!! 저요오오!! 왜 선생님은 나만 발표 안 시켜줘요."
쉬는 시간마다 나와서 상담을 청한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들어 주고, 당시 같은 모둠이었던 ㅈ와 ㅈ와 셋이서 상담을 했다.
그런데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듣고 있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해결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해결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
"이렇게 맨날 상담했으면 좋겠어요." 말하는 너.
수업 중에 교실 중간, 칠판 앞으로 나와서 쓰레기를 버린다. 큰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필기구로 책상을 딱딱딱딱 두드리거나 몸을 흔든다. 친구들의 반응이 영 약하다 싶으면 얼굴을 찡그리고 에헤헤헤 웃는다. 발표를 하겠다고 하여 기회를 주면 칠판에 쓰인 말, 친구들이 한 말을 조합하여 말한다. 주제와 관련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는 ㅈ와 ㅈ이 자기에게 나쁘게 대했다며 불만을 말한다. 공개수업, 특별 수업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발표를 한다. 모든 일에 일단 자기가 해 보겠다고 나서고, 전교회장 선거도, 학급회장, 학급 부회장 선거도 출마하였다.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 걱정이 되었지만 부모님 연락처도 없었다. 아이에게 물은 어머니 전화번호로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너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내가 보고 들은 행동으로 너를 그려갈 것이고, 너에 대해 판단하는 대신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수양하는 마음으로 3월을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와 연락이 되었고, 긴긴 이야기를 들었다. 건강 문제, 또 여러 가지.
"나는 네가 학교에 나올 수 있는 이상 건강하다고 생각할 거야. 넌 예전처럼 아프지 않아. 그리고 우리 반이 된 이상 규칙은 지켜야 해. 선생님이 알아야 할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말하렴."
2.
학급 다지기의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교과수업이 시작되었다.
일단 큰 소리를 낸다. 목소리건, 두드리는 소리건. 자기 이야기, 친구 불평, 궁금한 것. 무엇을 할 거라고 하면 계속, 계속, 계속 언제 하느냐고 물어본다. 심지어 점심 언제 먹느냐, 수업 언제 끝나느냐, 꼭 이거 해야 하냐. 친구가 뭐라 하면 더욱 크게 대거리를 한다.
수업 시간에 늦게 오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실, 보건실에 간다. 가고 나면 함흥차사. 알고 보니 교과실, 교무실, 학교 곳곳을 돌아다닌다.
어디 갔나 찾아보면 보건실, 보건실에 없다 하면 텃밭에 달팽이를 잡으러 갔다 왔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텃밭은 잠겨 있는데.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단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평안을 얻을까 싶어 들어 보고, 무시도 해 보고, 옆에 가서 지도도 해 보고, 1-2-3 카운트를 하고, 타임오프를 써 본다.
"학교 안 올거야.", "선생님은 나만 미워하지.",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쓰러져서 병원에 가서 입원할 거야.", "전학가고 싶어.", "아파 죽겠는데 어쩌라고.", "난 하나도 모르겠어. 책 안 볼 거야."
들으라는 듯한 소리. 절대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은 화가 난다. 치미는 울화.
동학년 선생님들, 교과 선생님, 보건 선생님, 교무실에 계신 분들도 "쉽지 않겠어요~" 하시는데, "아니에요, 다들 힘드시죠." 씩씩하게 대답을 해 놓고는
과연 우리 반에서 ㅅ의 지분이 얼마나 되나 생각해 본다. 네가 없다면, 어땠을까.
3.
많은 방법을 제안하고, 어머니와 이틀에 한 번씩은 말씀을 나누고, ㅅ의 주변 아이들과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지친다.
이렇게 해도, 과연 바뀔까요.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때로는 기대를 접는 것이 보인다. 말해 봤자. 아이들도, 나도.
느리게 자라는 너.
네가 제일 답답하겠지. 그럴 거야.
4.
ㅅ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산책 시간이다. 쉬는 시간 상담이 늦어져 복도에서 얘기를 하다가 같이 손을 잡고 교실로 오게 되었다.
그 뒤로 가끔 선생님과 산책을 하자고 했다.
4월까지는 ㅅ가 학교에서 한두 시간씩 있다가 갔다. "선생님 오늘 산책하면서 얘기를 좀 나눌까요?" 바쁘지 않을 때는 같이 나무와 꽃을 구경한다. 햇빛을 쬐고, 상담도 하고.
"선생님 이렇게 산책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선생님, 주말에 시간 되면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같이 놀아요.", "선생님 아기 몇 살이에요? 선생님이랑 선생님 애기랑 저랑 저희 엄마랑 같이 놀면 좋겠어요.", "저 아기 때 엄청 예뻤대요. 아기 때 사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 그런 날이 오면 좋겠구나." 진심어린 ㅅ의 표정. 그래, 언젠가.
5.
일주일간 제주도로 체험학습을 떠났다가 돌아온 ㅅ. 돌아온 첫 날부터 존재감을 잔뜩 발산한다. 제주에서 온 초콜릿을 넣었다 꺼냈다 하나씩 주다가 또 주다가 교무실, 보건실, 교과실까지 찾아가 배달을 한다.
"재미있었니?"
"저 없으니까 교실이 완전 조용했죠?"
안 그래도 주말에 어머니께서 문자로 ㅅ가 없으니 교실이 조용하겠네요, 라고 보내셔서 "ㅅ가 있어야 온전한 우리 반이 되지요. 즐겁고 편안한 여행 되세요."했었는데.
"글쎄. 좀 심심했던 것 같기는 하네."
진도도 바빴고, 수행평가도 여럿 보았고, 여전히 크고 작은 사건들이 가득했던 일주일. 너의 지분이 작지 않지만, 네가 전부는 아니니까.
"제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사진 보여드릴게요." "그래, 얼마든지."
가끔 배시시 웃는 ㅅ의 순간. 널 인정해 줘야 하는데, 잘 안 되는구나.
6.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말을 걸다가 내게 온 ㅅ.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못 생겼죠?"
"그렇게 생각하니?"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다 별로에요. 키도 작고. 키는 안 클까요?"
"키는 남자들은 조금 더 늦게 커. 기다려 봐. 잘 먹고 운동하고 일찍 자면 크는데 도움이 된대. 그리고 키가 크지 않아도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턱이 낮아도 안 걸리고 지날 수 있겠네요." "옷도 더 오래 입을 수 있지. 너무 빨리 크면 얼마 못 입고 옷을 빨리 사야 하잖아."
"선생님과 말을 하니 장점이 많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어릴 때 ㅅ가 이뻤다고 어머니께서 그러셨는데. ㅅ도 잘 뜯어 보면 매력있는 부분이 있지."
"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교과 수업에 들어갔다.
7.
목요일 6교시가 끝나고, ㅅ이 두꺼운 책을 들고 돌아다닌다. "너 어디 어디 가야지. 알림장 쓰고."ㅅ어머니는 때때로 ㅅ의 일정과 본인의 일정을 문자로 알려 준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울면서 동네를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ㅅ어머니와 두 시간 넘게 학교에서 상담을 할 때 눈물범벅이 된 ㅅ가 찾아와서 알았다.
"꼭 해야 해요? 바로 가야 하는데요.", "알림장은 꼭 쓰고 검사 맡아야지." 클래스팅에 올라가지만, ㅅ엄마가 알림장은 꼭 쓰게 해달라고 했다.
휭 쓰고 나간다.
책을 펼쳐 보니 사진첩. 두어 살 때부터 어린이집 다니는 시기까지의 사진.
예뻤네.
너를 안고 웃고 있는 어머니.
이전에 어머니께서 입원했을 때 사진은 보여주셨는데, 그 땐 많이 힘들어 보였어.
두어 살이면 지금 우리 아이 나이.
아이를 낳고 나면 가르치는 학생들을 이해한다는데,
이렇게 이뻤을 아이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이뻤을 아이를 애지중지 길렀을 엄마 아빠와,
이제는 어느새 훌쩍 커서 자아를 찾아가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을 아이로 둔 나이든 엄마 아빠를 생각한다.
자녀가 학교에서 어땠다는 말에 흠칫 놀라는, 엄마 아빠들.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사랑받으며 큰 아이들,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아이들,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
인정받지 못하고, 안정적이지 않았던 아이들.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고, 도무지 방법을 모르는 너.
뭘 해도 서툰 너. 예민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너.
그래서 불안하고 재촉하게 되는 너.
인디스쿨에서 들었던 "가장 사랑이 필요한 아이는 언제나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요청한다." 라는 말이 맴돈다.
월요일에는 두고 간 사진첩 챙기라고 하면서
예전에도 이쁘고, 지금도 이쁜 부분을 꼭 찾아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