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런 보드게임은 사지 마세요!
이런 경우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팁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플레이 시간이 긴 보드게임은 많이 사면 안 된다.
플레이 시간이 긴 보드게임은 전략적인 판단과 높은 몰입도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브루마블을 시작으로 무역 보드게임의 끝판왕인 카탄까지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보드게임의 재미는 오랜 시간 꾸준히 플레이를 하면서 서서히 그 상황에 몰입될 때 극대화 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서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쉬는시간 10~20분 정도. 점심시간이라고 해봤자 길어야 30분을 채 넘지 못한다. 여기에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다음 수업 준비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느긋하게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20분 내외다. 플레이 시간이 긴 보드게임은 잘못하다가 게임 셋팅만 하다가 끝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서서히 그 게임을 하지 않게 되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까), 점점 게임 박스에는 먼지가 쌓이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런 게임은 아무리 재밌어도, 없는 학급비를 쪼개 가며 사지 말아야 한다. 만약 꼭 사고 싶으시다면 일년에 한 개 정도 사서 차곡차곡 모아 놓으셨다가 몇 년 뒤에 충분한 개수가 되면 "선생님의 컨디션이 매우 떨어지는 날" 모둠별로 던져 놓으시는 걸 추천한다. 알아서 3~4시간 동안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들며 잘 논다.
두 번째, 너무 '공부'스러운 보드게임은 절대 비추!
보드게임 중에 이런 광고를 하는 게임들이 있다.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게임을 하면서 교과서 속 지식들이 쏙쏙!" 이런 광고의 게임이라면 우선은 구매 후순위로 접어두시는 것이 좋다. 선생님의 직업병 중 하나가 작은 활동에서라도 교육적 가치를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특히 보드게임 같은 데서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공부까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임을 하면서 공부를 더 잘하게 되고, 공부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몰라!"라는 과도한 기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아이들은 절대 보드게임을 하면서 공부 하지 않는다.
특히 너무 '공부'스러워서, 이게 도대체 게임인지 공부인지 헷갈릴 정도인 게임들은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게임의 기본은 재미, 스릴, 몰입인데 학습을 강조한 게임에는 이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수업시간에 강제로 한 두 번 복습용으로 사용한다면 모를까, 절대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손 대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학습 쪽에 관심을 두고 싶으시다면, 사칙연산만으로 대단히 훌륭한 게임성을 자랑하는 <파라오코드> 정도를 추천드린다.
세 번째, 조잡한 품질의 보드게임은 안 사느니만 못하다.
제한된 적은 돈으로 보드게임을 사려고 하니, 저급한 품질의 보드게임들을 사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갱지'같은 종이로 만들어 진 보드게임들이 바로 그것인데...한 두번 하고 나면 다 찢어지고 남아나는 것이 없다. 구성품들도 작아서 아무리 재미있어도 일회성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물론, 이런 보드게임들은 백이면 구십은 재미도 없다. 아이들도 보드게임의 구성품 자체에서 받는 몰입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급비가 없어도 이런 품질의 보드게임을 절대 사면 안 된다. 아까운 종이 쓰레기만 더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선생님이 보드게임판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너무 상투적이고, 식상한 말 같지만 정말이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선생님이 보드게임의 플레이어로 등판할 때, 보드게임에 대한 아이들의 게임 집중도와 몰입도도 '확' 올라간다. 그야말로 "선생님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이 있으면 보드게임 중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트러블이나 다툼도 간단히 중재가 가능하다. 게임의 룰도 훨씬 쉽게 파악이 되니 아이들로선 선생님과 함께 하는 보드게임이 가장 재밌는 보드게임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게임을 몇 번 하다보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지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것 밖에 안 되시는군요, 선생님?"과 같은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쿨하게 넘어가며 "오~ 많이 늘었네. 잘했어"라는 칭찬 한 마디만 던져주면 아이들의 마음을 쉽게 살 수 있으니 이 또한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재밌는 보드게임을 잔뜩 사셔서 모두 함께 즐기는, 행복한 학급경영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