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볼을 스치는 바람의 시작은 -<내가 라면을 먹을 때>
교실에서 소개하는 그림책은 학생들이 이전에 읽은 적 없는 책이 거의 90%다. 학교 도서관에 없고, 무엇보다 6학년이 자발적으로 그림책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표지를 보여주자 그동안 없었던 반응이 나왔다. “저 이 책 알아요.” “저 책 우리 집에 있어요.” 6-7명이 이미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00이가 “이 책 2학년 권장도서라서 읽어봤어요.” 라며, 여기저기서 본 이야기를 한다. 그럼 이 책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겠구나 라며 어땠는지 물어보자 갑자기 조용해지며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대었다. 사실 이 그림책은 지금 6학년이 배우고 있는 지구촌 갈등 문제 공부시기에 한 번 보면, 절대 잊혀 지지 않을 책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는 한마디로 훅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그건 아주 평범한 일을 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일본 그림책이니까 우리로 생각하면 내가 밥을 먹을 때? 그만큼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때를 말한다.
그런 때에 이웃집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바이올린을 켜고, 비데단추를 누르고 하는 평범한 일상이 나온다. ‘이웃집’ 아이의 평범한 일상에 무언가 할 때, ‘이웃마을’ 아이의 평범함이 연결된다. 그러다 글은 ‘이웃나라’로 쓱 하고 이동한다. 글자 텍스트가 독자를 갑자기 먼 곳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그림책에서 1,2,3 스텝에서 3번째에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1스텝은 이웃집, 2스텝은 이웃마을, 그리고 3스텝은 이웃나라다)
그곳에는 자전거를 타고, 아이를 돌보고, 물을 긷고, 소를 모는 우리의 ‘이웃집’ 아이가 하는 일과는 조금 다른 일을 보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지구본을 반 바퀴 돌려 지구 반대편의 빵을 파는 아이가 나오고.. ‘그 맞은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은 아이의 뒷모습만 볼 수 있다.
그 아이가 터키 바다에 쓸러 온 3살 아이 ‘쿠르디’로 보였다.
그림책 속의 작고 작은 아이의 몸이 흙바닥위에서 현실의 바닷가로 옮겨져 왔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 때’
라면을 먹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지구 곳곳을 연결하며 불어온다. 그림책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책을 읽는 우리 교실을 감싸는 듯하다.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 사실을 잊고 있다. 얼마 전 읽었던 강경수 작가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인다. 우리의 평범함을 가지지 못한 어린이들을 보여주는 것도 비슷하고, 마지막에 다시 우리의 시점에서 놀라움을 주는 것도 비슷하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서 “거짓말이지?”라고 할 때,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에서 쿵 내려앉는다. 그 감정은 미안함, 연민을 넘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양심의 가책이기도 하다.
작품은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요.” 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없어도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우리 반 이야기>
지윤: 책을 읽기 전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거라 굳이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걸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책을 읽고 현실을 한 번 더 깨달으니 기분이 묘했다.
예솔: ‘내가 라면을 먹을 때’로 시작해 연결해서 ‘그 맞은 편 나라의 산 너머 남자아이는 쓰러져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었다.’ 가 인상 깊다. 마음이 돌이 된 것 같다.
하경: 2학년 도서여서 살짝 해피엔딩일 것 같았는데 슬프고 마음 아픈 내용이어서 놀랐고 ‘쓰러져있다,’라는 말을 듣는데 너무 놀랐다. 나는 라면을 먹는데 그 아이는 쓰러져 있으니까 너무 미안하다.
재우: 나는 내가 움직일 때 죽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든 생활을 살고 있는지 생각을 안했다.
민경: 내가 아주 평범한 하나의 행동을 할 때도 다른 누군가는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구나.’를 느꼈다.
주은: 어린이 노동착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윤하: 내가 라면을 먹을 때는 자신이 라면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일어난다. 심각한 일은 쓰러지기 까지 했다. 나는 이런 사건을 조사하고 싶다.
채현: 이 책이 2학년 권장도서 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6학년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듯이 이 이웃나라의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태범: 그 짧은 시간에도 세계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은정: 내가 무엇을 하고 행복하게 살 때 다른 나라 다른 쪽 사람들이 이 책처럼 된다는 거에 가슴이 막막했다.
유경: 내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지구 어딘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거다.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다 읽고 나서 한참이나 먹먹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아이는 우리학교 도서관 서가에 2학년 권장도서로 꽂혀있다며 2학년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책이라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그림책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때로는 우리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책이 많다고 깨달음을 얻은 듯 표정을 지었다.
물론 2학년이 읽어도 되는 책이다. 연령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그 마음은 2학년도 알지 싶다.
‘안타깝다. 불쌍하다’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기를. 이 주제에서 우리 반은 열사람의 한걸음으로 내딛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우리는 무엇을 시작 하게 될까? 그 시작이 나비효과처럼 조금씩 보이지 않는 시작이기를.
(※ 11월 주제통합 수업 이름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갈등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책을 모둠 또는 교실단위에서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