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범의 문제아>괜찮아, 새학기야
괜찮아, 새학기야. 우리 모두 새로 시작하자. 나도, 너희들도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하루가 한 달 같은 날들 속에서도 책을 읽어주는 일은 다른 것을 뒤로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니 왠지 용기가 안 난다. 7년째나 되었는데 왜 갑자기?
눈빛도 마주해야 하고 아이들의 숨소리도 말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첫 주부터 나 혼자서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거다.
무서운 척 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걸까?
‘그림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마음을 다 내어 보이고, 어떤 이야기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데 교실에서 나만 아직 적응을 못하는 ‘어른’이었다.
6개월의 공백이 뭐라고,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 나만 온갖 걱정을 하는 두려움으로 꽁꽁 싸맨 다른 사람이 되어서 다시 교실로 밀려왔다.
어쨌든 결국 집에서 그림책을 낑낑거리며 수십 권을 들고 왔다가 손끝에서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다른 책을 집었다.
(나에게는 그림책이 그러하다.)
단편동화는 목소리만 필요하니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적당히 떨어져서 읽기 시작했다.
첫 책은 ‘박기범’의 ‘문제아’다. 이 작품은 6학년 담임을 하면 꼭 읽어주었던 책이다.
주인공 ‘나’는 엄마는 죽고 아빠와 할머니와 사는데 가정 형편은 어렵다.
할머니의 약값을 지키려고 불량배 형에게 대들다 그 보복으로 같은 반 친구와 싸움에 얽히게 되는데
그 때부터 ‘문제아’의 딱지를 붙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마저 병원 신세를 지고 할머니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신문배달까지 하게 된다.
그런 ‘나’의 사정을 모르는 학교 아이들은 주인공을 피하고, 교실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은 주인공 ‘나’에게 연민을 가지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문제아’ 딱지를 달게 된 사건을 읽고 나서 반응을 물어보니 “억울했을 거 같아요.”, “문제아 아니에요” 한다. 또 “선생님이 너무해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주인공과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너무하다. 무엇을 해와도 무엇을 해오지 않아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잠을 자도, 숙제를 안 해도 말이다.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주인공을 이해해 주는 건 학교 밖의 ‘봉수 형’이다. 작품 속 선생님들 때문에 나조차 미안해진다.
어떤 편견이든 오해든 그것을 달고 있는 아이도 새 학기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다.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였다.
6학년이 되고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문제아라는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는 기대감으로 첫날을 시작한다.
“어떻게 되었을까? 뒷부분 이어쓰기 해보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의 글에서는 작품 속 주인공이 잘 살기를 빌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글쓰기를 기다려본다.
작품을 나누는 시간. 결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주인공이 더 힘든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_ 자퇴를 하고 돈을 벌거나 싸움에 휘말려서 더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은 아니지만 마음이 아프다.)
다른 한 가지는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서 문제아 딱지를 벗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결말이다.
이제 뒷이야기를 읽어주는 시간, 드디어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한다.
새로운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던지는 말 “야, 네가 그렇게 유명한 하창수냐? 사고만 쳐 봐. 용서 없는 줄 알아.” 이렇게 창수의 이름이 처음으로 불리어진다.
당장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창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어주는 이유는 아이들에게도 생각 할 거리를 주고 싶어서 지만, 새로 시작하면서 내 마음을 잡고자 읽기도 한다.
‘어떤 큰 일이 생겨도 그 조각 밑에 숨겨진 큰 덩어리를 보려고 노력하자’
그 언젠가 우리 교실에서도 내가 보듬지 못하고 보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말이다.
“나한테 제일 어려운 문제는 나를 문제아로 바라본다는 거다. 나는 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는 영원히 문제아로만 있게 될 거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내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 주면 나도 아주 평범한 보통 애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3월 4일 전 날 , 내 손에 들어 있던 봉투 속 아이들 이름 옆에 적혀 있던 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