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물들다]이별 뒤에 우리들은
2월. 해를 넘기고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다. 방학동안 느슨하게 지내다 온 아이들은 나 혼자 생각인지 몰라도 좀 변해있는 거 같다. 시큰둥한 것 같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방학이야기를 나누고 늘 그렇듯 금요일이라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책 한권 같이 나누어 읽었을 뿐인데, 어머머 다시 따뜻해졌다. 역시. 선생님이 오해했구나.
방학숙제로 한권의 책을 읽고 서평 써오기를 부탁했다. 후루룩 쓰는 독후감 말고, 제대로 읽고 내가 독자와 책을 연결해 줄 수 있는 평론가의 역할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예상대로 개학전날 메일로 서평이 속속 도착했다.
그 중에서 그림책으로 서평을 쓴 아이가 보인다. <너였구나>와 <나의 작은 인형 상자>. 어쩜 이렇게 그림책 보는 안목도 있는지. 숙제를 검사하며 두근거리는 교사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우리 반 친구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하며 읽어보았다.
<졸업식 후 우리들은> -00
저학년 때, 5학년 때 같은 반이였던 친구들, 6학년이 되고 나서 같은 반, 다른 반으로 흩어졌다.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도 있겠지만 반이 달라지고 나서는 서로 같은 반 친구끼리 친해져 우정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때면 마음이 정말 아프다. 우리는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각자 다른 반, 다른 중학교로 떨어질 우리들의 우정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며 ‘너였구나’ 라는 책을 서평으로 쓰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는 공룡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공룡과 한 여자가 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어느 날 공룡이 여자 집으로 왔다. 그런데 공룡과 여자가 같이 지내면서 하는 말들이 심상치 않다. “방이 그대로네?”, “나...정말 몰라?” 공룡이 이렇게 말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 틀림없다. 그리고 “잊혀지는게 힘들까? 잊는게 힘들까?” “우리 공룡들의 여행의 시작은 기억이야” 그러고 나서는 공룡이 깊은 눈으로 여자를 봤다. 그러자 여자는 공룡이 자신의 어릴 적 친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 너였구나” 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누구도 공룡을
신기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너였구나 中-
위와 같이 여자와 공룡이 함께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은 그녀가 공룡이 그녀의 친구인 줄 몰랐던 동안에는 이미 그녀들을 영락없는 친한 친구들로 보았던 것이다. 이 그림책에는 그녀들이 친구였다는 흔적이 그려져있었다. 바로 보라색 스카프이다. 공룡은 처음 주인공의 집에 올때 부터 보라색 스카프를 입고 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심지어 같이 목욕할때도 항상 그 스카프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릴적 둘의 사진을 보면 보라색 스카프를 둘다 끼고 있고 그 스카프만 색이 칠해져 있다. 이로써 공룡이 그녀의 집에 올수 있었는 것은 함께 추억이 담긴 보라색 스카프의 기억 덕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도 중학교가서 서로 만나면 인사 받아주고 같이 놀러가고 계속 추억을 만들면 좀 더 커서 “너 누구야?” 라는 말이 안 나오고 서로 서로 기억에 남는 친구가 될수 있을 것같다. 함즐반 우정 영원하길
먼저 00이의 서평을 들려주었다. 00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글을 읽었다. 그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내 마음도 더 떨렸다. 그리고 내가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한 모습이다. (난 읽으면서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읽었다.)
그림책을 다 읽고 아이들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희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어보았다.
“색감이 공룡이 가진 색감으로만 이어져요. 스카프, 모자, 옷 색들이 다른 페이지에서 스며들어요”
이 친구는 그림을 유심히 보았나 보다.
“공룡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죽은 거 아닐까요?”
“나만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는 나이가 멈춘 게 이상해요.”
“우리도 나중에 못 알아볼까요?”
잠시 숨을 고르고, 각자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연0: 좀.. 슬펐다. 내가 누군가에게 잊혀 진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잊혀지는게 힘들까? 잊는게 힘들까? 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계속 생각해 보니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잊혀지는 것이 쉽다면 잊는 것도 쉽겠지. 반대로 잊는게 힘들다면 잊혀지는 것도 힘들겠지. 그리고 읽는 내내 슬펐다. 친구들이 내 기억속에서 잊혀진다고 생각하니. 서먹했다.
연0: 성아의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의 만남이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혜0: 지금 우리 함즐반도 이 모습이 아니라 변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중,고등학교때 친하게 지내면서 얼굴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
대부분 아이들은 성아처럼 우리가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잊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해 슬퍼했다. '졸업'이란 새로운 시작이라며 좋아해 놓고서도 정든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쉽기만 한가보다. 그래서 장난치기 좋아하는 남학생들도 순간 진지한 표정에 빠졌던거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한 친구가 물어보았다.
사실 나는 이 그림책을 ‘졸업’, ‘추억’이라는 시각으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00이의 서평에 더욱 놀라웠던 것이다. 그림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싶었다.
내게 이 그림책이 각별했던 이유는 <너였구나>는 ‘세월호’로 보였기 때문이다. 2014년 봄. 우리는 아까운 아이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후로 4년이 흘렀다. 가끔 그 아이들을 떠올려 보지만 많이 잊혀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잊혀진다는 것이 힘들까? 잊는 것이 힘들까?"
잊지 않기로 수없이 다짐해 놓고서, 노란스카프를 가득 걸어두고서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살아가는가.
전미화 작가가 ‘봄, 사진, 여행, 스카프’에 세월호 아이들을 담아 위로하였다. 라고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이야기 해 보았다.
사랑하는 우리반. 우리의 소중한 기억. 언젠간 빛바랜 추억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 때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여기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단다.
‘아.. 너였구나.’ 반가워하며 우리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