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을 가면 우산을 쓰고 벌주를 먹이고 싶어진다. - 체험학습 이야기1
dumog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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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00:43
등장 인물 소개
me: (A.K.A. dumognim) 본교 경력 1년차. 2학기에 부장을 하사받았음. 나는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조직원들에게 세뇌교육 중.
지쌤: 모든 게 1년차. 그나마 2학년 경력자. 같은 지역 주민. 발랄함. 방전이 쉬운 체력!
진쌤: 모든 게 1년차. 영어 교담하다가 여름방학 3일전에 담임으로 투입. 발랄함(위와 쌍으로). 하지만 좀 더 원숙한 느낌. 이 분도 저질 체력!
실쌤: 모든 게 1년차. 9월 발령. 긍정적이고 깔끔쟁이. 20대 다운 체력!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잘한 체험학습이 꽤 많은 편이다. 9월에 이미 2번을 갔다. 오늘은 그 두 번의 체험학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학년 2학기 이웃은 마을(동네)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에서도 마을의 모습을 살펴보고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보는 내용이 꽤 나오는데 이와 관련한 근거리 체험학습이 있었다. 일명 <마을 둘러보기>와 <마을직업탐방>
<마을 둘러보기>활동은 순조로웠다. 학교 주변으로 안전한 이동로도 알고 있었고(나와 지쌤은 이 동네 근처에 사는 주민이었다.) 코스를 확인하기도 쉬웠다. 학부모 명예교사 협조도 잘 이루어졌고, 날씨도 좋았다.(경기도는 체험학습에 학부모나 학교의 잔여 교사가 지도교사로 따라가는 구조였다.) 올해 부장을 달고 처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었지만 1학기에도 이와 비슷한 체험학습이어서 나들이 가는 마음에 좀 쉽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
<마을 둘러보기> 당일. 학부모 명예교사 반 배정은 내가 해야된다는 걸 알았을 때나 우리 반만 줄 서 있고 교장•교감 선생님을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 겨우 다른 반도 다 모인 건 별 문제도 아니었다.(각각 벌주 +1잔 획득)
체험학습도 역시나 순조로운 편이었다. 마을을 둘러보는 활동이라 천천히 이동했고 우리 반 조직원들은 지구인 초딩답게 어디에 뭐가 있네 하면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학년 환영회식은 어디가서 뭘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간히 보이는 공공기관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학부모 포인트 +1점 획득!) 심지어 멈춰서 설명도 해주었다.(학부모 포인트 +2점 획득!) 여유있게 첫 휴식 장소에 도착했고 반 별로 휴식을 취하며 교과서에 나온 놀이기구 이용방법을 익힐 겸 순서대로 놀이터를 이용했다.
그리고, 운명의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진쌤이었다.
“선생님, 우리 반 애가 다리를 부딪혀서 아프다는데 혹시 파스같은 거 있으세요?”
“…”(3초간)
그랬다. 보건실에 들려서 구급가방 챙겨야 되는데 그걸 놓쳤다. 다행히 공원 바로 옆이 보건소라 거기로 가는게 어떻겠냐고 처리했다.(나중에 이런 일이 더 생기긴 했다.) 그리고, 단톡방에 미친 듯이 챙겨야 할 것 같은 사항들을 올렸다. 회식 때 벌주를 주겠다는 위협과 함께.
얼마 후 이동 예정 시간보다 10여분이나 이르게 지쌤 반이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호~ 그래도 나름 경력이 있다고 미리 챙기려나 보네.’라고 생각하며 우리 반 애들이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그러다가 엄습해오는 불길한 느낌. 돌아보니 지쌤 반이 통째로 사라졌다. 둘러봐도 안보인다. 황급히 전화!
“쌤 어디심?”
“저희 화장실 가려구 왔는데요.”
잠깐 안심이 되고 우리 반 옆쪽에 위치한 화장실을 봤다. 지구인들이 없다.
“어, 여기 화장실 옆에 자기네 반 안보이는데?”
“(해맑게) 저희 옆 공원 화장실로 왔어요.”
그랬다. 이 분이 계획을 숙지하지 못하고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길 건너 공원으로 혼자 이동해 버린거다. 거기서 대기하라고 말하고(벌주 +3잔 획득) 황급히 다른 반과 이동 준비를 했다. 챙기다보니 우리 반이 선두여야 되는데 오히려 맨 꼴찌로 가는 일이 발생했다. 역시나 앞에 간 반은 우왕좌왕하면서 지쌤 반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가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다시 4반이 합체를 해서 두 번째 휴식장소에 도착.
놀이기구 이용을 하는데 담임 분들이 멀리서 구경 중. 표정을 보니 이미 반쯤 방전된 모습이었다. 황급히 접선하여 학부모들이 보고 있으니 좀 가까이 가서 지도해주면 좋겠다는 당부 날리기.(벌주 +1잔 획득) 그래도 바닥난 체력으로 내 말에 잘 따라주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학교로 이동. 들어가기로 예정된 후문이 잠겨있어서 돌아갔던 것을 빼면(벌주 +1잔 획득) 만보가 넘게 걸어다닌 건강한 체험학습이었다. 얼마 후 학년회식에서 벌주를 서로 깎아 주었다는 훈훈한 미담은 덤으로~
그리고, <마을직업탐방>.
이건 시작부터 이상했다. ‘1학기 초부터 떠나가신 부장님이 이런 거 한다고 하셨는데 뭘까?’라고 생각하며 교육과정을 살펴봤는데, 이건 한마디로 없었다. 마을의 공공기관을 섭외하여 탐방한다는 내용이 교육과정에 없는거다. 즉 교육과정에는 제대로 반영이 안 된채로 몇 해 동안 실시한 구전으로 전해지는 활동이었던 거다. 아, 난 이런 줄도 모르고 문서작성 열심히 해서 운영위원회 심의까지 통과시켰는데. ㅜㅜ 그래도 이미 하기로 한 거니까 못 먹어도 1Go!
공공기관 섭외도 난항이었다. 스물 네 다섯명 정도 나눠간다지만 이것도 업무에 방해가 되는지 어렵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기관부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기관까지(한 공공기관을 연락했을 때는 거기 근무하는 우리 반 학부모가 전화를 받아서 서로 약간 민망했다.) 작년에는 8군데를 섭외했다는데 나의 능력 부족인지 겨우겨우 경찰지구대, 소방서, CCTV관제센터, 교육지원청(떠나가신 우리 부장님이 여기 계신다.)을 섭외했다. 그리고, 선호에 따라 학생들이 갈 곳을 나누고 팀을 짰다. 2Go!
그리고, 출발 당일. 아주 미세하게 비가 왔다. 우산은 준비하라고 시켰는데 막상 이건 오는지 안오는 지 모를 비를 보면서 걸어가야 되는데 갈까말까를 망설이다가 드디어 3Go!
난 CCTV관제센터로 애들을 몰고 가는데 비가 점점 굵어졌다. 우산끼리 부딪히고 난리여서 한 줄로 가라고 명한 후에야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관제센터는 견학하는 애들도 처음 보는 곳이라 어색했고 아침부터 걷느라 힘들었다. 관제센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완전히 퍼져 있던 애들에게 이 곳 직원이 궁금한 걸 질문하라고 했다.
“왜 카메라를 설치해요? TV달면 안되요?”
- 내 마음의 소리: 설마 TV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CCTV 얼마에요?”
- 내 마음의 소리: 같은 질문을 도대체 몇 명이 계속하는 거냐.
“CCTV 몇 대 있어요?”
- 내 마음의 소리: 이건 이미 설명했는데. 이거도 그만 좀 물어봐라. 뭐 이리 계속 물어봐.
“우리 학교도 보여요?” - 내 마음의 소리: 아까 봤잖아. 너 뭐했니.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 내 마음의 소리: 너 그것도 모르고 온 거니. 헐
그렇다. 여기 오기 전에 아이들이 충분한 사전 조사를 안 한 거였다. 우릴 보던 직원의 표정도 황당하다는 걸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질문이 끝나고 그 분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우리 딸도 지금 2학년인데 얘들처럼 이럴까요?”
“네. 아마 그럴걸요.”
난 한치의 망설임없이 대답하고 애들과 기념촬영 후 황급히 관제센터를 떠났다. 여전히 굵은 빗줄기를 뚫고 20분 정도를 걸어서 학교에 도착. 다행히 다른 곳에 간 팀들은 질문도 잘하고 잘 봤다고 하는데 내가 데려간 애들은 왜 그랬을까? 독박! ㅠㅠ
오늘의 교훈
1) 체험학습을 갈 때는 구급 약품을 꼭 챙기자. 덤으로 물도.
2) 한 번의 회의로는 부족하다. 사전계획단계에서 교사부터 계속 세뇌시키자.
3) 학부모가 볼 때는 하는 척이라도 하자.
4) 비오는 날 체험학습을 하면 좋게(?) 된다.
5) 체험학습 전에 철저히 사전조사를 시키자.
6) 남의 말을 좀 듣게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