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놀이를 해 보아요. - 알뜰시장 이야기
dumog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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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1:03
글을 올린다 올린다 하던게 벌써 겨울 방학의 중반을 지나가는 군요.
오늘은 두 번째로 하는데도 여전히 모자란 2학기 알뜰시장에서 생긴 실수들을 돌아봤습니다.
#1 과소비를 조장하다.
알뜰시장은 4시간에 걸쳐서 진행했다. 1교시는 장사준비(간판도 만들고 물건 목록도 만들고), 2교시는 여학생들이 구입하는 시간, 3교시는 남학생들이 구입하는 시간, 4교시는 정산 및 정리활동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1학기에도 한 번 해봤던지라 아이들은 그래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장사도 생각보다 버벅대지 않고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장사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 아이들이 장사하다말고 놀기도 하고 자기 자리로 가서 쉬기도 했다. 이 정도면 좋았을텐데 자기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티슈를 세 곽이나 사는 녀석도 있었고 분명 그 녀석 취향이 아닌데 인형을 사는 녀석도 있었다. 심지어 집에서 가져온 주방용품(키친타올로 기억한다.)까지 사들이고, 어느 교회에서 뿌린듯한 물티슈들도 금세 주인을 찾아갔다. 이렇게 소비를 극을 향해 달렸고 물건은 거의 바닥을 보였다.(그 와중에도 다 써버린 핫팩은 끝까지 안 팔렸다. ^^;) 아이들이 산 물건을 보니 이걸 왜 샀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본인들도 왜 샀는지 말을 제대로 못하는 모습에 살짝 좌절.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길러줘야 하는데 이건 과소비를 부추기는 꼴이 됐으니...
- 교훈: 아이들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바로 지른다. 평소에 경제에 대해 좀 가르쳐 둘 것을...
( 도대체 키친타올과 티슈는 왜 팔려고 가져온 걸까? 그리고, 왜 사간 걸까? 학교와 사회가 같이 고민할 문제다...ㅋ )
#2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돈은 왜 남았을까?
1학기에 했던 알뜰시장의 교훈으로 돈 계산이 편리하고 물건 판매 상황을 바로 표시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사 준비를 하면서 물품 목록표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장사해서 번 돈은 쓰지 못하게 했다. 거기다가 물건값을 1개당 최대 500원으로 제한해서 계산하기 쉽도록 했다.(물건 값은 100원 단위로 매기도록 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장사가 끝나고 정산해 보니 돈이 남는다는 모둠이 6개중 3개나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자라다고 해야 정상 아닌가? (남는다는 돈을 합쳐보니 2000원이 넘었다.) 아무리 주인을 찾아도 나오지 않고 대략 난감. 아이들에게 남은 돈도 다 기부하는 걸로 하고는 기부금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 교훈: 물건 사려고 가져온 돈도 기록해 둬야 하는 걸까?
#3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데...
사실 1학기에 알뜰시장 수익금은 무조건 50%는 기부하는 것으로 하고 시작했었다. 그런데 2학기에는 선생님들과 얘기할 때도 수익금에서 자신이 자유롭게 기부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라 애들에게도 그렇게 안내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연말연시라 꼭 기부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날렸지만, 기부안하는 분(이해는 한다. 그만큼 수익이 적은 녀석들이었으니)들은 그렇다치고 달랑 100원을 기부하는 분들은 뭔지. 꼭 100원이라는 기부액 자체가 너무 적다는 얘기가 아니라 본인들 수입도 이미 내가 다 알고 있고 그렇게 나눔을 강조했는데... 이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다고 뱉어버린지라 그냥 웃어야했다. 하아~ 하아~ 하아~ --;
- 교훈: 나눔을 실천하는 일은 평소에 공을 쌓아야 나중에 제대로 되는 것 같다.
#4 재벌놀이
사실 모든 장사가 다 그렇듯 잘 되는 곳이 있으면 안되는 곳도 있다.(현실에서는 안되는 곳이 훨씬 많지만) 특히 책이나 연필같은 것은 1학기도 그렇고 이번에도 인기가 없는지 잘 안 팔렸다. 그래서 장사하는 아이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1학기처럼 이번에도 장사 종료 직전에 재벌 놀이를 좀 하려고 동전을 준비를 했다.(물건 값도 싸고 안 팔리니까 사주는 거긴 하지만 꽤 쓸만한 녀석들을 많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살 물건들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과소비의 여파인지 내가 찍어둔 물건들이 족족 팔려나가는 거다. ‘애들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지.’라고 되뇌이며 침착SW을 뇌에 설치했지만 장사 마감에 가까울수록 재벌놀이의 희망은 사라져만 갔다. 그래도 책은 인기가 적었는지 꽤 많이 남아있었고 난 집에 있는 딸내미들을 생각하며 우리반과 다른반의 쓸만한 책들을 긁어모았다. 거기에 연필 한 세트, 스티커, 분홍 미키마우스 머리핀은 덤으로 사들였다. 그런데 이렇게 산 분홍 미키마우스 머리핀은 18개월차 둘째 따님이 한방에 해먹어버리셨고, 책들은 알뜰시장이 끝난지 몇 주 지났지만 아직도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
- 교훈: 나부터 경제교육을 받아야겠다. 덤으로 따님들의 취향 파악까지.
( 재벌놀이의 결과물. 나름 만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초반에 왕창 사야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