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2
중학교의 하루는 몹시 바쁘게 흘러간다.
08시까지 출근해서 08시30분까지 조회를 들어갔다가 08시45분부터 1교시를 시작한다.
초등학교와 달리 반을 옮겨가며(원래는 교과교실제이지만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교사가 옮겨 다닌다.) 수업을 진행한다. 학년도 1개 학년만 맡는 것이 아니라 2개 학년을 겹쳐서 맡겨 되니 1교시는 1학년 2교시는 2학년 이런 식으로 메뚜기처럼 널뛰면서 수업이 진행된다.
특히 3월이 되면 이건 거의 전쟁을 방불케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모든 학교가 마찬가지겠지만 수업 준비, 평가계획, 진도표, 자유학기제 준비, 각종 공문 등등 항상 책상은 정리라고는 1도 되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고 그 와중에 학생들은 싸워서 불려 오기도 하고 장난치다가 다른 수업 선생님께 혼나러 교무실을 오기도 한다.
이 와중에 내가 대학원 수업을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가기도 전에 "내가 미친놈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공부를..."이라는 푸념이 머릿속을 채웠다.
바로 옆에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왕복 200km가 넘는 길을 일주일에 3일 가야 한다.
봄, 여름은 괜찮지만 장마철, 눈길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 일이 바빠 못 가는 날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을 버리고 출발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잠시 대학원 시절을 추억한다.
15년 가을, 항상 가고 싶었던 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면접을 보고 대학원생이 되었다는 행복도 잠시
결혼한 지 딱 3개월이 되는 달, 짐을 싸 3주간의 하계 대학원 수업을 시작하러 떠났다.
오랜만에 가보는 기숙사는 온갖 벌레와 익숙한 냄새로 나를 반기고 있었고, 새로 보급한 이불에서는 새 이불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기적적인 체험을 선사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는 수업에 지쳐 학생들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수업 재밌게 해주는거 다 필요없다. 일찍 마쳐주자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점심식사 하면서 대학생이 된 것처럼 수업 땡땡이 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교육을 논한다는 핑계로 음주가무와 함께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의 생생한 교육 체험을 듣기도 했다.
ebs 문제집을 만든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고, 강의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 교육청 강사선생님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부러워하다가 문득 나를 바라봤다. 나는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을까? 나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지역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며 배울점이 있으면 적어서 학교 현장에 대입하려 노력했고, 수업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서스럼없이 자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기숙사에서 짐을 빼기 전, 방을 둘러보는데 그 동안의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수히 먹은 깐풍기, 무수히 먹은 맥주, 뭐가 그리 좋아 웃고 즐겼던 룸메이트와의 생활,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보니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번 대학원도 그렇길 바란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지나보니 모두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