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손주 5. 그게 네가 나한테 준 거야, 자존감 같은 거.
서희가 준 문장이 내내 생각났다.
“선생님이 봉사활동 하면서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셨을 때, 선생님이 따스한 햇살 같았어요.”
“나는 따스한 햇살 같은 사람이야.”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는 따스한 햇살일 것이다. 주위를 환히 비추는 햇살. 나는 무척 우쭐해져 버렸고, 교무실에 햇살처럼 들어섰다.
“안녕하세요오, 교감선생니임~”
나는 밝디 밝은 하이톤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교감 선생님은 마치 끝겨울 음달에 햇살이라도 비춘 듯 따스함을 느끼셨을 거다. 나는 햇살이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사람들은 따스함과 밝음을 선물받을 것이다. 나는 햇살이기에.
약간의 망상 섞인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한 것. 내가 나를 너무 좋아하게 한 것. 그게 서희 네가 나한테 준 거야. 자존감 같은 거.
서희는 다른 사람이 하라고 시키는 걸 겁나 싫어한다는 점이 꼭 나를 닮았다. 친구였다면 공통점이 있어 좋았겠지만, 유감이게도 나는 서희의 담임이 되었고 서희의 그러한 태도를 익히 들은 터라 걱정이 앞섰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동네손주를 함께 하자고 했다. 서희는 그걸 누가 만들었냐, 그걸 왜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서희를 설득할 수 있기를 바라며 봉사활동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며칠 뒤 비유하는 표현에 대해 배우는 국어 시간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를 비유할 대상 찾기를 했다. 며칠 동안 나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서희는 나의 목소리는 옥구슬 같고, 나의 외모는 배우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이 봉사활동하면서 행복해진다고 하셨을 때, 선생님이 따스한 햇살 같았어요.”
나는 너무 감격해서 쩍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가슴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라 붕 날아오를 것 같았다. ‘따스한 햇살’이라니. 사람들 패딩도 벗게 하고, 꽃봉오리도 트게 하고, 심지어 곰 겨울잠까지 깨우는 ‘따스한 햇살’이라니. 그래, 나는 햇살이었던 거다. 나도 몰랐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햇살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교무실에 내려갔다.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활짝 웃었다. 나는 햇살이기에. ‘내가 교무실을 너무 비췄을지도 몰라. 너무 밝아졌어.’ 나는 장소를 옮겼다. 이번엔 보건실, 내가 좋아하는 보건 선생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렸다. 나는 햇살이니까. 보건선생님께서 환히 웃으셨다. 햇살이 적잖이 따스하셨나보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신랑, 오늘 우리 반 애가 나보고 따스한 햇살 같대.”
“그렇지. 은진이는 항상 따스한 햇살 같지.”
“신랑도 알고 있었던거야? 내가 햇살인거? 나만 몰랐던 거야?”
“음?”
집에 오는 차 안에 봄 햇살이 깊숙이 내려왔다.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게 나라는 거야? 하, 햇살같은 나란 사람에게 취한다.
가장 마음이 쓰이고 걱정되었던 서희가. 어른들이 하자고 하는 거 제일 싫어하고, 더욱이 타인을 위한 활동은 더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서희가 건넨 말이었다. 교사를 하면서 많은 애정과 사랑이 담긴 문장을 받았었지만, 이렇게까지 뜻밖이고 큰 울림을 준 문장은 없었다.
나는 꽤 오래 서희가 준 문장을 생각할 것이고, 그 때마다 정말 햇살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서희야, 네가 물었지? 봉사활동을 하는 데 왜 자존감이 높아지냐고. 서희 네가 나한테 준 거, 그런 게 자존감이야.
*초등학교 학생자치회에서 혼자 사는 할머님댁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미자는 저희가 찾아뵙는 할머님 가명입니다
아이들 이름도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