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손주 3. 어른을 잘 대하는 재주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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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16:19
저는 어른을 잘 대하는 재주가 있나 봐요.
"할머니, 먼저 잡수세요."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 맛있으세요?"
11살 수연이는 68살 미자에게 선뜻 다가가 미자를 제일 먼저 챙기고, 미자의 기분을 살뜰히 살폈다. 나와 미자는 그런 수연이의 행동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내가 수연이에게 어른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친 적은 없지만, 이런 수연이의 담임이라는 것이 뿌듯해져 버렸고, 수연이에게 내가 가진 칭찬의 말을 모조리 주고 싶었다.
"어쩜 이리 이쁘게 말할 수 있어."
"수연이 덕분에 어른들 기분이 너무 좋다."
"네가 선생님 제자인 게 뿌듯해."
나의 칭찬 세례를 받으며 수연이는 스스로의 어느 부분에 대해 알아차렸다.
"저는 어른을 잘 대하는 재주가 있나 봐요."
나는 룸미러를 통해 수연이를 훔쳐봤다. 고개를 까딱까딱하던 수연이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차올랐다. 나도 따라 미소를 머금었다. 예쁜 아이의 예쁜 구석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세상엔 별별재주가 넘친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금전적 대가도 따라붙는 누가 봐도 거대하고 근사한 재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한다. 교실에서도 먼저 눈에 띄는 재주들이 있다.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는 재주,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 피구를 잘하는 재주 같은 것들.
그리고, 눈에 잘 띄진 않지만 구들방처럼 뜨끈뜨끈한 재주들이 있다. 가령 수연이의 '어른을 잘 대하는 재주'처럼. 나에겐 어떤 재주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구들방이 되어줄 나의 재주는 무어가 있을까.
*초등학교 학생자치회에서 혼자 사는 할머님댁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미자는 저희가 찾아뵙는 할머님 가명입니다
아이들 이름도 가명입니다
[이 게시물은 악마쌤 김연민님에 의해 2024-02-16 12:21:58 에세이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