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손주 2. 제가 당신을 동정하고 있나요?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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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11:19
"나는 동정받는 사람이니까."
지난겨울, 미자네 집에 젊은 청년이 라면 여섯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신자유연맹 비슷한 이름의 단체에서 노인들에게 나눠주는 거라고 했다. 미자는 라면 여섯 봉지를 고맙게, 귀하게 받아 들었다. 연이은 배달에 지쳐있던 청년이 미자에게 말했다.
ㅡ고작 이게 다냐고 하기도 하는 분도 계신데, 고맙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ㅡ갖다 주는 그 마음이 귀한 거지요. 너무 고맙습니다.
미자는 나에게도 그랬다. 처음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미자는 찾아와 주는 마음이 너무너무 고맙다고 했다. 한참이나 어린 나에게 쉽사리 말을 놓지 않았고, 항상 일종의 예를 갖췄다. 아이들과 내가 뭐라도 사 오면 이런 거 들고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젓다가, 종국엔 너무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자는 타인이 건네는 시간과 노력과 물건 그런 것들을 그 무엇도 당연하게 받지 않았다.
ㅡ나는 동정받는 사람이니까.
미자가 말했다. 미자는 스스로를 '동정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자 생각에 미자에게 찾아오는 사람들 중 미자에게 마땅히 와야 할 사람은 없었다. 다들 무언가를 나눠야 하거나 미자를 돕기 위해 미자를 찾았다. 미자는 그것이 혼자 사는 미자에 대한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미자는 동정받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미자는 미자를 찾는 이들에게 매번 송구스러워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동네손주들이 미자 할머니를 동정하고 있는가 생각했다. 맨 처음엔 담임 선생님이 "동네에 할머니 계시는데, 우리 학교 선배래. 그 집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놀다 오자." 하니까 신나서 따라왔다. 그다음엔 차 타고 슈퍼도 가고 빵집도 가고, 할머니한테 예쁨 받다가 맛있는 거 먹다 오니까 그걸 좋아했다. 어느새 미자가 주는 예쁨을 좋아하게 되었고, 미자네 옆 집 진돗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미자가 아파서 한동안 미자네 집에 못 갔을 때, 미자할머니가 언제 나을까 걱정했다. 이 모든 것은 동정이었을까? 아이들은 미자를 동정하고 있을까?
나는 미자를 동정하고 있을까? 미자가 자꾸만 아파서 입퇴원을 반복했을 때, 미자가 채 다 녹이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토하듯 꺼냈을 때, 미자의 명절 밤을 상상했을 때, 미자를 동정했던 것 같다. '내가 미자라면 슬플 것 같다, 고통스러울 것 같다, 외로울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미자를 걱정했다. 이걸 동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나는 미자를 동정했다.
내가 미자네 놀러 가는 이유가 동정인가? 그런데 나는 꽤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 불쌍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시간을 내어주진 않는다. 동네손주 대상 집을 찾기 위해 열 분의 할머니들께 전화를 걸었을 때, 가장 정중하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한 분이 미자였다. 나는 단 10분의 통화만으로 미자를 기대하게 되었고, 미자의 선한 미소와 신중한 단어 선택과 따뜻한 두 손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미자가 나의 고민마저 존중해서 좋았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 서로에게 진솔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미자가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자네 집에 놀러 간다.
미자네 집에 놀러 가는 이유가 미자 생각처럼 동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료히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동네손주의 모든 활동이 동정 때문인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미자를 만나면 우리가 미자네 놀러 가는 이유를 미자에게 설명할 거다.
내가 미자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한 순간이 있고, 그걸 동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주제넘게 미자를 동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미자네 놀러 오는 이유는 미자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과 미자가 아이들에게 주는 호의와 애정 때문이라고 말이다.
미자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흐릿한 향기를 세심하게 풍기는 사람이고 나는 그 때문에 자꾸 미자를 떠올리고 미자네 놀러 가는 거다.
[이 게시물은 악마쌤 김연민님에 의해 2024-02-16 12:21:58 에세이에서 이동 됨]
지난겨울, 미자네 집에 젊은 청년이 라면 여섯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신자유연맹 비슷한 이름의 단체에서 노인들에게 나눠주는 거라고 했다. 미자는 라면 여섯 봉지를 고맙게, 귀하게 받아 들었다. 연이은 배달에 지쳐있던 청년이 미자에게 말했다.
ㅡ고작 이게 다냐고 하기도 하는 분도 계신데, 고맙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ㅡ갖다 주는 그 마음이 귀한 거지요. 너무 고맙습니다.
미자는 나에게도 그랬다. 처음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미자는 찾아와 주는 마음이 너무너무 고맙다고 했다. 한참이나 어린 나에게 쉽사리 말을 놓지 않았고, 항상 일종의 예를 갖췄다. 아이들과 내가 뭐라도 사 오면 이런 거 들고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젓다가, 종국엔 너무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자는 타인이 건네는 시간과 노력과 물건 그런 것들을 그 무엇도 당연하게 받지 않았다.
ㅡ나는 동정받는 사람이니까.
미자가 말했다. 미자는 스스로를 '동정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자 생각에 미자에게 찾아오는 사람들 중 미자에게 마땅히 와야 할 사람은 없었다. 다들 무언가를 나눠야 하거나 미자를 돕기 위해 미자를 찾았다. 미자는 그것이 혼자 사는 미자에 대한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미자는 동정받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미자는 미자를 찾는 이들에게 매번 송구스러워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동네손주들이 미자 할머니를 동정하고 있는가 생각했다. 맨 처음엔 담임 선생님이 "동네에 할머니 계시는데, 우리 학교 선배래. 그 집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놀다 오자." 하니까 신나서 따라왔다. 그다음엔 차 타고 슈퍼도 가고 빵집도 가고, 할머니한테 예쁨 받다가 맛있는 거 먹다 오니까 그걸 좋아했다. 어느새 미자가 주는 예쁨을 좋아하게 되었고, 미자네 옆 집 진돗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미자가 아파서 한동안 미자네 집에 못 갔을 때, 미자할머니가 언제 나을까 걱정했다. 이 모든 것은 동정이었을까? 아이들은 미자를 동정하고 있을까?
나는 미자를 동정하고 있을까? 미자가 자꾸만 아파서 입퇴원을 반복했을 때, 미자가 채 다 녹이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토하듯 꺼냈을 때, 미자의 명절 밤을 상상했을 때, 미자를 동정했던 것 같다. '내가 미자라면 슬플 것 같다, 고통스러울 것 같다, 외로울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미자를 걱정했다. 이걸 동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나는 미자를 동정했다.
내가 미자네 놀러 가는 이유가 동정인가? 그런데 나는 꽤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 불쌍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시간을 내어주진 않는다. 동네손주 대상 집을 찾기 위해 열 분의 할머니들께 전화를 걸었을 때, 가장 정중하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한 분이 미자였다. 나는 단 10분의 통화만으로 미자를 기대하게 되었고, 미자의 선한 미소와 신중한 단어 선택과 따뜻한 두 손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미자가 나의 고민마저 존중해서 좋았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 서로에게 진솔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미자가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자네 집에 놀러 간다.
미자네 집에 놀러 가는 이유가 미자 생각처럼 동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료히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동네손주의 모든 활동이 동정 때문인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미자를 만나면 우리가 미자네 놀러 가는 이유를 미자에게 설명할 거다.
내가 미자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한 순간이 있고, 그걸 동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주제넘게 미자를 동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미자네 놀러 오는 이유는 미자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과 미자가 아이들에게 주는 호의와 애정 때문이라고 말이다.
미자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흐릿한 향기를 세심하게 풍기는 사람이고 나는 그 때문에 자꾸 미자를 떠올리고 미자네 놀러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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