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대소동]1. 동시락 배달사건 1) 1차 작업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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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 23:07
올해 분교에서 학생자치 업무를 맡았습니다. 학생 자치 예산이 180만 원인 데다가 학생자치회(4-6학년 학생)가 고작 4명뿐이니 마음만 먹으면 제 차에 태우고 어디든지 갈 수 있더라고요.
시내 학교에 근무할 땐 학생수도 많고, 제약받는 것도 많으니 상상만 하고 포기했던 마음속 교육 욕심들을 들여다봤습니다. 시골학교, 그것도 분교에 근무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으로 추진한 자치활동은 '동시락 배달'입니다. '동시락'은 제가 지은 카피인데요. '동락 분교 학생자치회가 마을 사람들에게 배달하는 도시락'을 줄여서 '동시락'이라고 지었습니다. 듣자마자 바로 이해되면서 재밌어야 성공적인 카피인데 교장선생님이 계획서 보시자마자 "동시락이 뭐여?" 하셨기 때문에 카피로서는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밀어붙여봅니다. 다른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니까요.
학생자치 아이들을 컴퓨터실로 모았습니다.
"회장 지윤이, 5학년 지연이, 4학년 지은이, 주연이. 다 왔구나?"
네, 4명이 끝입니다.
"얘들아, 너네가 마을 어른들한테 선물을 배달할 거야. 학교 주변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선물드리면서 깜짝 기쁨을 선물하는 거지. '동락 학생들이 배달하는 도시락'이라서 이름은 '동시락'으로 지었어. 이번 동시락 준비에 학교 예산 20만 원 정도를 쓸 생각이야. 어른들이 어떤 걸 받으면 좋아하실지, 몇 개 정도나 준비해서 배달하면 좋을지 너희가 논의해보고 장바구니에 담아주면 돼."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우리 아이들은 하자고 하면 합니다. 쇼핑몰 학교 아이디 로그인해주고 컴퓨터실에서 나왔습니다. '학생' 자치인데 교사가 껴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미안하지만 딴짓 하나 안 하나 감시는 했습니다. 아직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가 봅니다.
6학년 회장 언니는 리더로서의 부담을 느끼면서 아이들을 이끌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뭘 선물하면 좋을지 여러 쇼핑몰을 들락날락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지친 표정으로 컴퓨터실을 탈출했습니다.
아이들이 쇼핑몰에 담아준 물건들은 쇼핑백, 음료수, 초콜릿, 홍삼캔디, 과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끼리 회의해보세요."하고 결과물 뒤집는 교장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기 싫어 그대로 구입 기안을 올렸습니다(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님).
"너희가 고생해서 골라준 물건들 배송 오면 포장하고 배달 가자."하고 동시락 1차 작업을 마쳤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은 건지, 자치활동이 재밌는 건지 "포장 언제 해요?" 질문에 시달리다 지쳐갈 때쯤 모든 물건이 배송되었습니다.
포장을 하기 전에 잠깐 고민했습니다.
'내가 마을 주민이라면, 어떤 모양의 선물을 받을 때 가장 기쁠까.'
선물 받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격보다는 한 끗 센스 차이가 기쁨의 크기를 결정하기도 하니까요.
학생자치답게 그 고민을 아이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우리가 마을 어른들께 선물을 배달할 건데, 어떻게 드려야 받는 분들이 최대한 기쁠까? 선생님 생각에 동락이 드리는 선물이라는 거는 잘 나타나야 할 것 같아."
"그림을 그려서 넣어요."
"편지를 써요."
역시 아이들은 쉽게 답을 찾습니다. 물건들이 배송된 교무실 책상에 모여서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동시락'을 한눈에 나타내는 센스 있는 그림과 따뜻한 마음이 적힌 편지가 동봉된 선물을, 게다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을 학교 학생들로부터 건네받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부풀어오를 수밖에요. 동시락 배달은 꽤나 사랑스럽게 요란한 소동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제 모든 정성을 예쁘게 담아 길을 나설 차례입니다!
<다음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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