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여행 메이트 - 5학년 언니
"언니, 저 밥 빨리 먹는데 괜찮아요?"
"상관 없어요."
"그럼, 같이 가요. 미얀마!"
우리의 미얀마 여행이 결정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1도 없는 두 교사는 그렇게 배낭을 메기로 결심했다.
내 교실은 후관, 언니 교실은 본관이라서 한 학기 넘게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파견 온 언니,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언니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한 학기가 훌쩍 지나 가을 즈음,
언니 교실로 논문 관련 인터뷰를 하러 갔다.
여느때와 같이 이야기는 샛길로 새다가 미얀마 얘기가 나왔다.
"이번 겨울에 같이 갈래요?
친구랑 여행 갔다가 수저 먼저 내려놓는 걸로 싸웠던 경험이 있던터라
밥 빨리 먹어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언니는 상관없다며 어깨를 으쓱였고, 우리의 미얀마 배낭여행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너네 둘이? 너네 친했었어? 미얀마를 간다고?"
선생님들의 흔한 반응이었다.
엄청 친한 사람끼리 가도 피보고 오는 게 여행인데 듣도보도 못한 미얀마를 3주씩이나,
그것도 몇 마디 안 나눠 본 사람끼리 간다니 황당할 만도 하다.
게다가 직항 타면 6시간 걸리는 곳을 20만원 아끼겠다고 2번 경유하고(왕복 총 6대의 비행기를 탔다)
25시간 만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끊어놨다니,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받을만도.
그 와중에 언니랑 나랑만 해맑았다.
둘 다 고통을 예상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둘 중에 하나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꼈어야 여행준비라도 했을 텐데,
딱 미얀마 도착한 날 숙소만 잡아놓고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하자며 미얀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25시간 걸려서 아프리카도 아니고 동남아를 가는 여정은 힘들었다.
진.짜.진.심.으.로.
중국공항 라운지에서 노숙하다 쫓겨나고 겨우겨우 몸을 뉘인 곳은 얼음장이라 굼벵이처럼 웅크려 덜덜 떨었다.
머리를 못 감으니 앞머리에 광이 나고 몸에선 꾸질꾸질한 냄새가 났다.
3주동안 미얀마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알고보니 동남아에서 가장 큰 나라였고(최근에 알게 된 사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이동의 피로도가 높았다.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곡테인 열차를 타보겠다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이동 동선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러나 둘은 고생마저도 재밌어 미쳐하는 성격이었다. 자꾸만 낄낄낄낄 했다.
어느 이름 모를 사원에 앉아 책 읽다가 떠들다가 사진 찍다가 동네 사람한테 말걸었다가,
바간의 어느 사원에 기어 올라가 해가 저물어가는 모든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만달레이에서 돌아올 걱정 안하고 자전거 타고 막 달리다가 결국 트럭에 실려오기도 했고,
창문 안 내려가는 기차에 탔다가 햇볕 막으려고 뒤집어 쓴 가디건이 웃겨서 한참을 낄낄거리고,
체력 생각 안하고 일박 이일 트레킹 신청했다가 이튿날 오토바이에 실려 나오고,
자꾸만 미얀마분들이 우리 이쁘다고 하셔서 공주병도 좀 심하게 걸리고,
갑자기 찾아온 정전에 거나하게 취해 올려다본 별들이 또 생각난다
개고생의 연속이었지만, 미얀마에서 보낸 모든 순간이 좋았다.
언니를 3주 내내 따라다니며 펼쳐 읽는 것은 그 어떤 책을 읽는 것보다 재밌었다.
연애소설이었다가 철학책이었다가, 가끔은 골 때리는 개그책일때도 있었다.
언니는 특유의 긍정과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로 3주의 시간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올해 이제는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 있지만 우린 또 한 번 발리로 함께 떠났다.
학교에서 만난 내 소중한 여행메이트, 지예언니.
25시간만에 도착한 미얀마, 이정도면 남아프리카 정도는 갔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끽끽 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만달레이를 돌아다니던 그 때, 자전거가 끽끽 거리면 어떤가 내마음이 쌩쌩인데
태양을 피하고 싶었다. 안대는 왜 저런걸 사갔을까.
바간 들판에 있는 수백개의 사원 중 아무데나 기어올라가서 일출과 일몰을 보던 그 때
돌아올 체력을 계산하지 않고 최대한 멀리 갔다가 결국 자전거와 함께 트럭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한치앞을 내다보지 않는 둘.
미얀마 분들이 사진찍어달라고 공주대접해주셔서 저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쁜줄 알았다. 한국와서 평민대접 받고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