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세이]갑분사
*아이들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갑분사
학급을 운영하면서 항상 미안한 아이들이 있다
묵묵히, 조용히 자기 할 일 알아서 하는 믿고 가는 아이들.
사고치고 말 많고 다가와서 애교 부리는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정신 없이 보내다보면 정작 조용히 할 일 알아서 다하는 아이들에게는 미소 한 번 칭찬 한 번 건네기가 어렵다.
작년에 믿고 가는 아이들 중 한명이 올해 스승의 날 때 장문의 편지를 써왔는데 난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래서 결심했다. 올해는 생각날 때 마다 애정표현을 하자!
애기들 수학학습지 푸는 동안 나는 업무 좀 보다가 우연히 돌아간 시선에 믿고 가는 아이 유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달달한 사랑고백에 앞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기반 소리반으로 사랑고백을 띄웠다.
"유진아, 사랑해"
유진이를 비롯한 우리반 아이들 표정이 놀란 토끼가 되었다.
유진이가 말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가..갑자기...요?"
"응, 항상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나서 말하는 거야"
다른 아이 하나가 묻는다.
"너 스승의 날에 뇌물 냈지"
꺄르르 교실에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나도 따라 웃었다.
유진이는 얼굴이 불그레해지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유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내 마음이 몽글해졌다.
최근에 다른 반 친구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했던, 그러나 의젓하게 해결하고 친구의 사과에 멋지게 답장까지 써준 미예가 알림장을 검사받으려 들고 나왔다.
네가 얼마나 기특하고 멋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긴 오글거리니 쿨하게 말했다.
"미예야, 사랑해"
미예도 말을 더듬으면서 묻는다.
"갑자기요?"
"원래 항상 사랑하고 있었어."
"헤헤"
미예가 콧소리 섞어 웃으면서 어깨 한번 베베 꼬더니 자리로 돌아간다.
귀여웠다.
올해는 갑분사를 마구 마구 하려고한다.
*갑분사 - 갑자기 분위기도 모르고 사랑한다고 한다.
사랑표현, 아끼면 똥된다. 마구 갑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