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 part 4] 학생들이 왜 통제가 되지 않을까? - 통제력 vs 통제감
1. 통제가 되지 않는 학생들
지난번에 통제가 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선생님은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학생들이 '즐겁게' 선생님의 의도된 제안을 실천하는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단순히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행동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청소를 하라고 이야기 했을 때
선생님은 학생들이 즐겁게 청소하기를 기대하지 선생님에게 속으로 욕하면서
기분나쁜 표정으로 청소를 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즐겁게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학생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제안 할 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 행동을 한다고 느끼도록 해 주어야 선생님의 말이 학생의 귀에 들리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 되어야 합니다/
1) 선생님을 학생들이 좋아해야 합니다.
- 학생들이 선생님을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 교실은 무조건 무너지게 됩니다.
- 선생님을 적으로 인식한다면 학생들은 선생님이 제안하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2) 선생님이 말하는 제안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선생님이 말하는 모든 제안이 좋아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
- 선생님이 말하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선생님이 말하는 제안이 필요한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두 번째 조건인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2. 통제, 통제욕구 그리고 통제력
통제란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또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하거나 지휘하거나 결정하는 권력의 행사를 말합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교실에서 조용하게 하도록 하는 것, 청소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 모두가 일종의 교실에서의 통제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까닭은 선생님은 교실 내로 한정된 통제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력이란 내 의지대로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통제력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마트의 장난감 부스를 지나갈 때 그 장난감을 갖기 위해서
부모님께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크게 보면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자신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에 부모님이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입니다.
아이가 마트에서 우는 것도 당황스럽고, 사고 싶지 않은 장난감을 사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경우 부모님은 그것을 사지 못하게 제한을 걸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부모님과 아이들의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투정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고 하고
아이들은 부모님이 장난감을 결재하도록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반 선생님은 우리반의 범위내에서 통제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옆반 아이들에게는 우리반 만큼의 통제력을 갖지는 못합니다.
복도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기는 하지만. 우리반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만큼은 아니지요.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학생들에게 훈계를 해야 할 상황이 오면 내가 이것을 말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들에게는 교사로서 부여받은 통제력의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게 되면
선생님의 통제력이 영향을 미치는 교실일지라도 바로 ‘네’라는 대답을 듣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잠깐 멈칫하고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상황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그 반작용으로
내가 나에 대한 통제력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머릿속으로는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더라도 여기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되면 반대되는 말과 행동이 습관화가 되면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반사적으로 짜증부터 내거나
그 사람의 말은 무조건 반발하게 되면서 나쁜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소 상황>
S1 :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T : 연민아 저쪽 쓰레기를 좀 치워줄래?
S1 : 이거 다른 사람 시키면 안되요?
이 상황에서 연민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민이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은 연민이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비록 그 시작은 연민이의 친구가 말을 건 것일지는 몰라도, 연민이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연민이의 의도입니다.
이때 선생님이 청소를 하라고 하는 것은 연민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의 주도권을 선생님에게 빼앗긴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민이는 나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선생님에게 반대하여 나의 상황 통제력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연민이의 말을 선생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통제력을 누가 누구에게 행사하는가에 대한 이른바 ‘밀당’이 생겨나게 됩니다.
선생님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는 학생은 교실의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을 중심으로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그 교실은 점점 ‘무너진 교실’이 되어갑니다.
3. 통제력 vs 통제감
통제력과 통제감은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통제력은 내가 상황을 나의 의지에 맞게 조절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면
통제감은 주변 상황을 나의 의지로 조절 할 수 있다고 믿는 감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은 내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바꾸어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면
통제감을 느낀다는 것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통제감은 자존감, 자기 효능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통제감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만족을 하며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한 통제감을 다른 사람들을 통제함으로 해서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제감이 부족한 사람은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서라도 변화하려고 하거나,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경우가 많습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은 교실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교실에서 학생들이 통제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통제감과 자존감을 교실에서 채워주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높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통제가 되지 않는 학생들을 그냥 그 상황을 선생님의 힘으로 통제하며 정리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그 학생들에게 부족한 통제감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주에는 이렇게 통제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