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유없이 무기력해지는 선생님에게
#0. case 1
D선생님은 경력이 10년정도 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열정교사입니다. 특히 학급관리만큼은 남 부럽지 않게 잘 해나가는 멋진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요즘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자꾸 듭니다.
원래 교사에게 3월은 무척 바쁘고 정신없는 달입니다.
D선생님의 교실도 다를 것이 없어서 최대한 학급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며 하루 하루를 잘 해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느정도 좋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학급 분위기가 정돈되어서 조금씩 편해짐을 느끼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교사에게 3월 몸살은 불치병이다라는 옛말처럼
3월에 몸이 좀 안좋고 피곤하다는 느낌을 당연한듯 넘겼지만
4월을 맞아 느끼는 이 느낌은 참 생소합니다.
주말에 아무리 쉬어도 지친 몸이 회복되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하자고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가 교사로 적성이 안맞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1. 교직 3년차 슬럼프
제가 신규일 때 선배 선생님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사가 되면 1~2년은 정신없이 지나가다가 3년차가 되면 공통적으로 슬럼프가 한번 올거야.
그리고 이 슬럼프를 잘 못넘기면 무척이나 힘들어지니 잘 넘기길 바랄게."
그때는 솔직히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3년차가 될 때 쯤 신기하게도 무기력한 마음이 갑자기 제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수업도 하기 싫고, 다른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대신 짜증이 많이 생겨서 아이들에게 그전보다 화가 많이 나는 것을 보면서
그 선배의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에 그 선배에게 진짜 신기하게도 갑자기 이상하게 슬럼프가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제게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성장통이니 지금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잘 지내면 별것 아니게 잘 지나갈 수 있어. 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어."
다행히 이 슬럼프를 잘 겪고 나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3년차일까? 다를 때 느낄 수도 있는데?
#2. 슬럼프(Slump)와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위의 상항과 제 경험은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유없이 갑자기 무기력해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위의 고양이처럼 분명히 크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개학을 며칠 앞둔 학생들처럼 방학숙제를 안한듯 불안해지는데
그 불안함으로 인해 더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은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갑자기 이유없이 무기력해지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슬럼프(Slump)입니다.
슬럼프란 한마디로 연습에 대한 효과가 올라가지 않아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처음에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조금만 무언가를 해도 변화가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하다보면 같은 변화라고 하더라도 그 변화가 작게 느껴집니다.
1이 2가 될때는 두배가 된 것이지만 100에서 101이 될 때는 변화가 없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하더라도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 그 의욕이 떨어지게 되고,
이와 동시에 능력이 오히려 퇴보되거나, 심적으로 불안함이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이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3월 한달을 나름대로 잘 보낸 다음
정돈이 되고 자리가 잡혔다고 느끼면서 갑자기 몸의 변화가 느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원인으로 들고는 합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한마디로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흔히 이것을 소진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번아웃 증후군은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베르거가 이름지었습니다.
번아웃증후군의 경고증상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이 경우 중 3가지 이상인 경우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2.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3. 하는 일이 부질없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4.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린다.
5.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
#3. 4월병 그리고 3년차 슬럼프
번아웃증후군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용어를 만든 프로인덴베르거는
사람이 소진되는 과정을 열 두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모두 설명하기보다 그 중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을 몇 가지만 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신을 증명하려는 강박
- 내 주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면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합니다.
- 목표를 무조건 완수할 수 있도록 나를 옭아맬 때 그것이 강박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2. 과도한 업무
- 내 능력 이상의 일을 맡게 되었지만, 그것을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깎아 내린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비웃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나 혼자서 해결하려고 바둥거리게 됩니다.
3. 욕구 무시
- 일에 모든 것을 바치다보니 내 주변의 친구, 가족, 음식, 수면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혼자가 되어 갑니다.
이 원인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관통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세운 목표를 최우선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계획을 1월 1일에 세웁니다. 왜냐하면 1월 1일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에게 새해는 3월 2일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고
더 크게는 새로운 업무,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3월 초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4월이 되면 마치 봄을 타듯 무기력해지는 선생님이 생겨나는 원인은 그러므로 단 하나입니다.
3월 한달간 선생님이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4. 소진되지 않는 나를 위해
번아웃 증후군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업무량 조절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할 수 없는 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더이상 일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흔히 번아웃 증후군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큰 약을 휴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가 쉬고 싶어서 휴식을 선택한 것과 내가 움직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한 것은 다릅니다.
앞의 것은 내 선택에 의한 '보상'이 될 수 있지만
뒤의 것은 마치 병원의 환자인양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쉰다고 하더라도 피로가 가실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양적인 면을 조절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저는 통제감과 보상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1. 통제감
통제감이란 내가 내 일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내 일에 대한 양을 줄일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조금씩 쉽게 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쉬운 수업을 하고자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수업을 쉽게 해야 학생들도 쉽게 수업을 할 수 있고
1년동안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 보상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정서적 보상을 말합니다.
물질적 보상으로는 내 마음이 채워지기 어렵습니다.
교사 월급이 두배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보다 두배로 학교에서 행복해 지지는 않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30년전 선생님들보다 우리가 훨씬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정서적 보상입니다.
남들에게 인정 또는 칭찬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보상은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것입니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면 그것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번아웃 증후군의 시작은 내가 하고 싶은 욕구가 부질없기 때문에
일에 대한 욕구 이외의 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5. 이유없이 무기력해지는 선생님에게
이유없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선생님들이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무기력하다고 느껴지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 왔기 때문에 번아웃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기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로 선생님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처럼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조금씩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내 행복을 찾아가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