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의 쉬운 수업디자인 프롤로그2] 당신은 당신의 수업을 하고 있나요?
1.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를 해 봅시다.
약속시간에 늦어서 친구가 독촉전화를 하는데 그 전화에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이 말은 ‘내가’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자동차’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말은 “나의 차가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에서 자동차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두뇌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마치 손과 발의 일부분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손과 발의 감각이 그대로 자동차의 핸들과 바퀴로 전해짐으로써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가려고 하는데 하나가 더 걸립니다.
네비게이션이라는 존재입니다.
네비게이션은 분명히 내가 지금 가려는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저는 그 네비게이션이 가라는대로 핸들을 돌려 자동차를 운전하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네비게이션이 운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보통 네비게이션이 운전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운전을 한다고 하지요.
그 이유는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고 있다고 해서
운전의 주도권을 네비게이션에게 완전히 옮겨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비게이션은 안내할 뿐 결국 최종 선택은 ‘내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최종적인 책임도 ‘내가’ 지게 되지요.
네비게이션이 신호위반 지역의 속도를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왔다고 해서
네비게이션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2. 위의 이야기는 ‘자기 결정권’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자동차는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운전자가 결정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자동차의 바퀴가 굴러가지만 그것은 자동차의 의지가 아닌 운전자의 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자가 원하는 목적지를 결정하면 그 경로를 알려줄 뿐입니다.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경로를 자동차가 주행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 운전자가 가고 있다.(능동형)으로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동차는 가게 되고 있다.(수동형)으로 말하는 것이 맞지요.
우리는 위의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을 얼마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알파고와 이세돌9단의 바둑에서였습니다.
우리는 이 바둑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둑을 둔것은 알파고와 이세돌9단이 아닙니다.
이세돌9단이 둔것은 맞지만 알파고가 둔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실제로 바둑을 둔 것은
알파고가 아닌 ‘아자황’이라는 박사입니다. 아자황박사는 알파고의 리더프로그래머인데요.
알파고가 화면에 바둑돌을 착수하면 그것을 보고
아자황박사가 이세돌9단 앞에 있는 바둑판에 실제로 착수하는 식으로 게임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자황박사와 이세돌9단이 바둑을 두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자황박사는 ‘자기 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결정권이 없는 사람은 결국 실제로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잊혀지는 사람이 됩니다.
네비게이션이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의 경로를 알려주고 있지만
결국 운전을 내가 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목적지의 선정을 내가 했고, 핸들을 내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적지의 선정도 내가 한것이 아니고 네비게이션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아있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톨게이트의 정산안내원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택배기사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택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떤 행동에 있어서 '자기 결정권'은 내 삶의 존재가치를 밝혀주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3. 당신은 당신의 수업을 하고 있나요?
내가 우리반에서 서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업’에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무언가를 배우러 옵니다.
그러므로 교실에서 나의 존재가치는 ‘수업’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의 수업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 지도서를 시작해서 인디스쿨, 아이스크림.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까지
정말 수많은 것들의 나의 수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저또한 이 수많은 도움을 정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네비게이션과 자동차처럼 어느덧 뗄레야 뗄 수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나의 수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수업이 아닌 남의 수업을 앵무새처럼 따라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어느 누가 교실에 와도 상관이 없겠지요.
단순히 따라하는 것은 누구나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전문가라면 ‘내가 결정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수업에 활용한다면 그냥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수업에서 아이스크림의 동영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고
지도안대로 수업을 하는 것이. 교육과정에 나와있기 때문에 그대로 쓴다고 하는 것이 아닌
우리반 수업에 지도안대로 수업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며
다른 어떤 블로그에서 진행한 수업을 우리반에 적용하는 것은
그 사람이 ‘신’이기 때문이 아닌, 그 수업이 우리반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결정한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4. 제가 생각하는 수업디자인의 시작점은 ‘내가 꿈꾸는 교실의 모습이 무엇인가?’ 입니다.
나는 어떤 교실의 모습을 꿈꾸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가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
이런 생각이 모이고 모여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수업을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