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학년의 교육과정 어디까지(함께) 하시나요?
새학기를 시작하기 전.. 2월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글을 시작해봅니다.
난 개인적인 사람이다. 초임 시절엔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으로 특히 남교사들 사이에서 좀 더 순화한 표현으로는 아웃사이더였었던..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르면서 학년부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최근 몇년은 학년부장을 할 때면 고민이 된다. 우리 학년의 교육과정, 즉 배움은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을 동학년과 어떻게 하면 함께 나누고 같이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개인주의적인 사람으로서 우리 학급만 생각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전체를 보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해 부터 올해 새학기를 앞두고 있던 2월 즈음에 이와 관련해 내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것은 ‘따로 또 같이’였다.
최근 몇 년 ‘교사교육과정’이란 말이 많이 들리는데, 이 말과 어울리는 실적을 만들기 위한 여러 부가적인 것들이 생겨나며 안 좋은 인식들도 있지만, 난 이 용어가 애초에 가지고 있는 취지를 좋아한다. 제시된 대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닌 교사들이 좀 더 고민하고 탐구하며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여기에는 학급이나 전담 교사 같은 개인별 교육과정 뿐 아니라 여러 명의 교사들이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역시 포함이 되기에 한 편으로는 용어만 새로 나왔을 뿐 맞는 방향이기도 하고 이미 많은 교사들이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해오던 것을 또 새로운 용어를 갖다 붙이니 그것 자체는 별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옛날에 조끼(의류)라고 부르던 것을 갑자기 어느날은 베스트라고 불러서 개인적으로는 어색했던 것 처럼.. ^^;;
글이 좀 돌아왔지만, 교사교육과정을 우리 학년내에서 함께 실천해보고 싶었고 그 컨셉이 바로 ‘따로 또 같이’였다. 같은 학년이지만, 학생들이 다르고, 교사들의 각 분야별 전문성이나 특장점 들도 차이가 있을테니, 학년 전체의 큰 배움의 줄기는 함께 논의해서 가져가되 그 안에서 학급별로 담임 교사들이 실천하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여유를 줄 수 있는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몇 년 쩨(코로나 때에는 그 이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주제와 역량을 선정하여 주제중심 교육과정 디자인을 해왔고 그 과정 속에서 학년이 함께 논의하며 여러 가지 갈래의 교육과정과 배움활동을 해왔었는데, 그 주제 안에서 학급별로 나름의 개성을 살려서 활동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1년 전체의 주제가 정해져있다보니(함께 논의를 했다곤 해도) 담임 교사만의 혹은 그 학급만의 교육과정 디자인을 하기엔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올해는 2월에 첫 동학년과의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교육과정을 어느 선까지 하면 좋을지를 선택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이전에 자주 해왔듯이 우리 학생들에게 지금 시점에 필요한 다양한 주제나 역량 등을 함께 논의 하면서 1년 전체를 함께 디자인하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으로는 정말 함께 하면 좋을 큰 주제를 소수 잡아서 그걸 함께 만들고, 나머지 여유분은 학급별 교육과정을 교사의 강점을 살려가며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고, 각각의 장점과 단점, 고려해야 할 점들을 따졌을 때 일단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학년부장인 나의 의도가 반영이 좀 더 됐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난 우리 학년 교사들의 강점들을 살릴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길 바랬고, 한편으로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어쨌든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학년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좀 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렇게 결론이 난 데에는 나와 비슷하게 이런 경험을 해보시고 올해는 좀 더 자기만의 교육과정을 해보고 싶었던 다른 동학년 선생님의 이야기가 좀 더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사실 이렇게 결정난 김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내 솔직한 바람을 적어보자면, 학급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을 정말 각자의 교사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학급별 교사교육과정을 문서로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거기까지 이야기를 꺼내진 못했다. 나야 그렇게 정리하고 계획은 세워놓는게 더 편하기도 하고 나의 자료를 누적해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일 뿐이지만, 다른 분들에겐 그렇지 않을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결론으로 나온 우리 동학년의 큰 배움 주제는 ‘사라져가는 마을 아카이빙’과 ‘다양한 범주의 시민교육’이었다. 3월은 각 학급별로 학급세우기를 하며 학급의 문화와 습관을 만들어가는 시기로 하고 그 과정 중에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 수시로 모여서 함께 연간 교육과정을 만들어가기로 결정했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과정이 어찌되든 간에, 이렇게 출발선상에서 함께 전체의 로드맵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사족.. 물론 이런 이야기를 첫 만남 때 부터 한 것은 아니고 처음엔 서로를 알아가는 활동들 부터 했었다. 처음 만나자마자 대뜸 교육과정 디자인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건 좀 그렇지.. ㅎㅎ
예고.. 과연 우리 동학년의 이런 결정은 잘 이어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