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승의 날이 지나 쓰는 스승의 날 이야기
5월 내내 학교와 관련해서 씁쓸한 소식이 많은 요즘이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목까지 차오르던 말을 속으로 집어 넣다가 그 중 스승의 날에 있었던 일을 꺼내본다.
몇 년 전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aka. 김영란 법)이 적용되었다. 다행히 작년, 재작년은 6학년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선물(대부분 간식)을 가져오거나 하면 잘 설명해서 돌려보낼 수 있었다.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것이 들어오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올해 이상하게 아이들이 15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나에게 편지를 줄거다, 선물을 줄거다 말이 많은 것이다. 4학년 아이들이고 나를 많이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라 관심의 표현이긴 하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기에
“스승의 날에 선생님한테 선물을 주면 안돼.”
“왜 안돼요?”
“선생님은 공무원이야. 공무원은 자신의 일과 관련된 사람에게 선물을 받으면 안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어. 너희들을 선생님이 가르치니까 너희한테 뭔가를 받으면 안돼지.”
몇 번 이렇게 말해주니 이해하는 듯 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안하였다. 뭐가 된다, 안된다라는 말조차 부담이 되어서.
그리고 5월 15일 아침.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몇 명의 아이들이 스승의 날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괜히 멋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고맙다 하며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학생이 쓴 편지가 책상에 있었다. 곱게 꾸미고 쓴 편지가 고마웠다. 아이들이 다 등교한 8시 50분이 지나고 반장이 카네이션을 들고 나왔다. 나는 ‘으잉?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표정이 미묘했는지 반장 아이가
“학생 대표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드리는 카네이션은 된다고 해서......”
요 며칠 신문에서 알려주는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려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고민을 하셨나 보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다른 학생들이 학생 대표의 특권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대다수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표가 주는 것으로 한 것 같은데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초등학생들은 대표 학생이 카네이션을 주는 것을 부러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생대표가 된 학생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지 않을까?
두 번째는 학생대표가 주는 카네이션은 누가 사야하는걸까이다. 학생대표의 가정에서 사야하는 걸까 학교에서 준비해야하는걸까. 둘 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 번째는 위의 두 가지를 생각해보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는 것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인지, 공개적인 행사를 이야기 하는 건지 혼동이 된다. 신문과 뉴스기사의 공개적인 장소라는 표현이 불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 앞에는 반장이 가슴에 달 카네이션을 들고 서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반장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매년 반장을 빼놓지 않고 했었고 자신의 의견도 똑부러지게 말하는 친군데 왜 저리 긴장했을까. 그래서
“법으로 선생님은 너희들이 주는 선물이나 꽃을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학생 대표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러분을 대표해서 대신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꽃은 학생 대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주는 거니 고마운 마음으로 선생님 가슴에 달게요.” 말을 하고 꽃을 달았다.
김영란 법 덕분에 부담스러운 선물들을 쉽게 거절할 수 있게 된 점은 참 다행이다. 예전에는 마음 표현도 못하냐며 크고 작게 민망한 실랑이를 하게 될 때도 있었지만 법이 많이 알려져서 이런 상황이 잘 발생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이 쉬워졌다. 그리고 이제 겨우 2개월 가르친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이랍시고 아직 가르친 것도 별로 없는 내가 스승으로 축하를 받기에는 민망하지 않은가. 스승의 무게와 교사의 무게는 또 다르기에. 그래도 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전해주는 고마움의 표현, 또는 좋아하는 표현이 법이라는 이유로 쉽게 거절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한 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