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다.
나와 전화 상담을 하던 중, 학교로 찾아온 학부모가 있다.
금요일 밤 11시, 불쑥 전화를 걸어온 부모도 있었다.
남들이 주저할만한 일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이 중요하고 절박하다는 의미다.
두 학부모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다보니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학부모님은 솔직하고 순수했다. 다소 감정적이기도 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 아이가 겪고 있는 관계의 문제를 학창 시절에 겪은 적이 있고,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걱정됩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 기분에 따라 억울하게 맞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걱정되는 마음이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묻지 않았는데 먼저 말씀하셨다.
학부모의 현재 생각에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지금 겪고 있는 일 때문에 들썩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기에 더 큰 불안,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두 학부모님은 같은 말을 하셨다.
“아이가 그렇게 될까 봐요.”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상처나 아픔을 아이가 겪게 될까 걱정되고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 일을 내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어린 바람도 담겨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대로, 여러 경험이 만들어 낸 자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모두 어떤 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렇게 됐으니 이 사람도 이렇게 될 것이다.’
개인이 가진 틀은 꽤 확고하다. 왜냐하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승패를 낼 일이 아니라면 그 사람을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나치다.’, ‘너무 과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때, 학부모의 경험과 상처, 단단해진 생각의 틀을 그대로 인정하려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야 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것이고, 그러면 그 때서야 이해가 될 것이다.
이것 또한 내 경험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