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너 있다!
6살, 4살.
아이들이 훌쩍 컸습니다. 이제는 궁금한 ‘말’이 많아졌습니다.
“엄마, 좌회전이 뭐야?”
“엄마, 터널이 뭐야?”
“엄마, 근데 대충이 뭐야?”
엄마는 대답합니다.
몸으로 대답하고, 손짓으로 모양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킵니다. 거기다 온갖 표정을 지어 가며 아이가 묻는 말의 느낌을 전달하려 애씁니다.
“아, 그러니까 이쪽으로 도는 게 좌회전이야. 엄마 손을 봐.”
“아, 그거 저기 봐바. 저게 터널인데 말이야. 저렇게 구멍을 뚫어서 차가 지나갈 수 있게 만든 거야. 자, 이제 터널 들어간다.”
“대충? 음, 대충은 제대로 안 하는 거야, 정성들여 안 하는 거. 그러니까 태하가 숙제를 할 때 하기 싫어서 빨리 해버리거나 아무렇게나 하는 건데,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대답하는 제 말이 문법교육에서의 어휘교육과 연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휘교육은 문법교육의 일부입니다. 저도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 전까지 문법교육=맞춤법 교육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법교육은 범주가 꽤 넓더라구요.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의 ‘문법’영역 내용 체계를 보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한글을 읽고 쓰는 것부터 시작해 낱말의 의미 관계, 문장의 기본 구조, 국어사전 활용, 높임법, 문장 성분과 호응, 상황에 따른 낱말의 의미, 관용 표현까지 학습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휘교육의 방법 중에는 낱말의 관계를 활용하여 지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제가 아이에게 ‘대충’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유의어와 반의어, 단어의 상하관계 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제가 대충이라는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안 하는 것, 정성들여 안 하는 것’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반대말을 활용하여 '대충'의 뜻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한, 아이의 수준에 맞게 ‘빨리, 아무렇게나’라는 유의어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국어 사전에서 대충의 의미는 '대강을 추리는 정도로' 라고 나옵니다. 저는 아이에게 대화 상황에 적절한 의미를 설명하느라 약간 부정적인 어감을 넣어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자세하지 않게 기본적인 부분만 들어 보이는 정도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 일이 대충 정리되다. 그 이야기를 대충은 들었습니다. 등)
아이들이 낱말을 학습할 때, 낱말의 관계를 활용하면 어휘를 습득하고, 어휘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문법교육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에도 저는 엄마로서,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고 있었더라구요. 그런데 문법교육에 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어 신기했습니다.
오늘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요지는 이것입니다.
문법교육은 분명 복잡하고 까다로운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맞춤법이나 발음법의 일부에 해당될 뿐입니다. 상당 부분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모습을 ‘왜 그럴까?’. ‘정말 그럴까?’ 생각해보고 확인해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삶에 대해 숙고하는 일이듯, 문법교육 또한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잠시 우리의 언어를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즉, 자신이 하고 있는 말, 쓰고 있는 글을 대상화하여 생각하는 일이 바로 문법교육입니다.
내 말 안에 문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글 제목은 '내 안에 너 있다.'(ㅋㅋㅋㅋㅋ)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