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수업] 8.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음악가들
글을 퇴고하려고 보니, 아무래도 제목을 바꿔야겠습니다.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그들은 이미 충분히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음악가들의 선행> 이라고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1.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서정적이고 때로는 구슬프기도 한 멜로디로 영감을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로 '건반 위의 구도자' 라는 별명을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요. 2013년에 MBC에서 기획한 섬마을 콘서트 다큐멘터리입니다.
외부인들은 쉽게 갈 수 없는 섬 울릉도, 그리고 통영시에 속해 있는 사량도라는 섬까지 두 곳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였습니다.
이 섬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연주회는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간결한 무대 위에서 몇 대의 마이크만 준비해서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선물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음악에 전혀 관심없던 섬마을 사람들도, 이 무대를 보고 나면 새로운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요? 실제로 내 눈앞에서 백건우님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말입니다.
외딴 섬에서, 이렇게 연주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때때로 음악은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소위 부유층들의 향유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보려면 10만원은 거뜬히 넘는 관람료가 필요하기도 하죠. 물론 그러한 자리도 금세 매진되어서 구하기 쉽지 않지만요.
그를 이렇게 만든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연히 보게 된 백건우님의 이러한 행보에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콘서트가 또 한 번 열린다면, 저는 그 곳이 어디라든 가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MBC 다큐멘터리 TV 예술무대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한 장면.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잠시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링크 첨부해드립니다.
백건우│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L.v.Beethoven, Piano Sonata No. 8 Op.13 Pathétique) Pf.GunWoo Paik - YouTube (링크 클릭)
2. 류이치 사카모토, 재난 대피처에서의 연주회
피아노에 관심이 많다 보니, 두 음악가 모두 피아니스트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류이키 사카모트는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마지막 황제 OST) 음악가이기도 하지요.
현재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 작업을 놓지 않고 있는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주저없이 영화관으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출처: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2017) trailer의 한 장면
그가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이 곳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일본의 지진으로 인해 대피한 지역민들의 임시 거처였기 때문이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곳은 마을 체육관 강당이었을 것입니다. 류이치 사카모트는 재난으로 인해 상심한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곳으로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지진이 잦은 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을까요?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이러한 장면이 그려질 수 있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가장 강렬하고 인상깊은 장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온 음악이었지만, 어둡고 고요한 이 공간 속에서 적막을 뚫고 나즈막히 울려 퍼지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음악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음악가들을 늘 동경해 왔지만, 이렇게 소외된 지역으로 찾아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모습이 지금까지 느꼈던 존경심을 넘어서 훨씬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교과서에서 이러한 예시를 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그들이지만, 선한 의도로 시작된 아름다운 스토리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 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오랜만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 그리고 김광민의 <Rainy Day> 를 감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