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교실10화] 수학 수업에 영화를 활용한다고요?
복도를 지나가다가 다른 학년 아이들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우리반은 영화로 수학 수업을 해."
"우와, 어떻게?"
"어벤져스 보면서 수학 문제 풀어."
사실 영화를 활용한 수학자료가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조금 전 아이들이 수학 수업을 매우 흥미롭게 느낀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영화로 수학 수업을 한다니? 과연 어떻게 하시는 걸까? 스토리텔링 이외에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그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들이 많이 활용하시는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습니다.
우선 저는 6학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기에 6학년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수학 자료가 있는 게시판을 들어가봤더니, 영화를 활용한 수학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봤던 픽사 영화부터 시작해서 마블 관련 영화까지.
페이지마다 20개의 게시글이 표시되는데, 어떤 페이지들은 절반이 넘는 글이 영화를 활용한 수학 자료를 게시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뿐만 아니라 작년, 재작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도 영화를 활용한 수학 자료가 이미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활용한 수학 자료가 이렇게나 많다니...
마침 저는 개학하기 전부터 분수의 나눗셈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를 씨름하고 있던 터라, 그 자료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6학년 분수의 나눗셈을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분수의 나눗셈 과정에서 왜 나눗셈이 곱셈으로 바뀌는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2. 분수의 나눗셈 과정에서 나누는 수(제수)의 분자와 분모의 위치가 왜 바뀌는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아쉽게도 새로 개정된 2015 교육과정에 근거한 수학 교과서에서는 2009 교육과정에 근거한 수학 교과서의 아쉬움을 모두 개선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선 분모가 같은 나눗셈의 계산을 '덜어내기' 상황으로 해결한 것의 한계를 다루지 않은 점(덜어내기 방법으로는 ÷1/2이 ×2로 변화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는 점)과 나눗셈의 몫의 의미를 찾는 과정의 필요성을 잘 다루지 않은 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학습 내용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분리하여 상황마다 다른 분수의 나눗셈 해결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할 수 없이 수학 교과서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를 활용한 수학자료에는 그 고민을 어떻게 담고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아쉬웠습니다.
영화를 활용한 수학자료를 쭉 살펴본 결과 스토리텔링에 너무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수업 장면과 관련 없는 영화 클립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 자막을 바꿔 억지스럽게 학습문제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은 난데 없이 그 수학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분수의 나눗셈의 알고리즘은 (분수)÷(분수)가 (분수)×(분수의 역수)로 바뀌는 것인데, 학생들은 사실 이 계산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나눗셈의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분수의 나눗셈 계산 방법만 익혔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모른채 계산방법만 익히고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영화를 활용한 수학자료에는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자료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거의 비슷한 래퍼토리의 자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이 자료들을 많이 활용하는지 댓글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물론, 자료를 만드신 분들과 그 자료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이 수학에 친숙해졌으면, 혹은 거부감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 자료를 수학에 활용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학 수업을 한 후 아이들이 무엇을 먼저 떠올렸으면 하시나요?
다음 차시 수업의 전시학습 상기 시간에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다고 이야기했으면 하시나요?
그 무엇이 적어도 영화의 줄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사실 영화를 활용한 수업을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있는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영화 활용한 수업은 더욱 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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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자료의 출처에 관하여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입니다.
대부분 마블, 픽사 영화들이 수학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굿다운로드 사이트로부터 다운받은 마블 영화와 픽사 영화는 DRM, 즉 저작권보호장치가 적용되어 편집이 불가합니다.
그렇다면 합리적 의심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올라왔던 마블, 픽사의 편집 영상들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