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생의 체육잡설] 무책임한 체육수업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 (1)
지난 겨울에 적폐세력들을 물러나라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을 손바닥만한 핫패드에 의지해 버텼습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날때까지 '박아무개 물러나라, 황아무개가 박아무개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사실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적폐'라고 불리던 그들이 축출되었습니다. 곧이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사진출처: 한겨례일보 )
그런데 새 정부 들어서 얼마지 않아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농단세력들이 물러나고 나니 이제 저더러 적폐랍니다.
새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은 초등교육은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교원양성과 임용 시스템을 부정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래도록 초등교사들이 만들어 왔던 학교문화의 정통성과 합리성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하라는 체육 이야기는 안하고 뭔 쓸데없는 소리를 그렇게 정성껏하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꺼낸 이 이야기는 초등교육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초등학교 체육수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전강, 스포츠강사들의 정규직화 문제로 학교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이들의 처우개선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학교를 그저 일자리 창출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견해에 깊게 우려하고 있지요. 학생들을 '초등교육'으로 가르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초등교육'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걱정때문입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나 장관들은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이들에게 초등교육을 맡겨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현장을 모르는 인사들의 의사결정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 나의 탁월한 영도에 무지몽매한 너희들은 따라라. 아마 그들 생각은 그럴런지도 모릅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영전강이나 스포츠강사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발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론이 과연 초등교사들의 편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영전강이나 스포츠강사들의 정규직화에 반발하는 이유가 과연 초등교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요? 다수의 주장은 두 가지에 근거합니다. 하나는 절차상의 문제로, 이들의 '교사화'가 '정유라 사건'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납세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채용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교사가 있는데 혈세를 더 들여서 그들을 정규직화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지요. 국민들 다수는 그들의 초등교육에 대한 전문성 부족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우리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초등교육은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초등교육을 이만큼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 초등교사들 덕분이라는 생각에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 만큼 순수한 교육적 열의를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우리의 할 일을 잘 해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내부자의 관점입니다. 외부자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당장 '혁신'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를 숙청 대상 내지 교정 대상으로 만든 민선교육감들 뿐아니라 대다수의 '행정'관료들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천만 교육전문가들 역시 외부자의 시각에서 우리를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교육자로서의 도덕성이나 직업윤리는 좀 처럼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강사의 문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체육 수업의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쌓여온 폐단이었습니다. 적폐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초등교육은 초등교육만의 특이성이 있고 많은 현장의 선생님들은 거기에 맞게 수업을 해 오셨습니다. 체육수업만 빼고요. 우리의 체육수업에 교육과정이 있었나요? 일부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교육과정과 무관한 수업을 해 왔습니다. 근거 없이요.
재미있는, 의미있는, 교사와 학생들 모두 만족스러운
교육과정이 없는, 닥치는대로 하는, 그냥 노는
이런 상황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초등학교 스포츠강사입니다. 초등교육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해도 초등교사보다 좋은 체육수업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들은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을, 최소한 교과서에 맞게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스포츠강사들이 초등교사들보다 충실하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들도 만족하고, 행정관료들도 만족하는 그런 수업 말이죠. 그러나 스포츠 강사들의 정규화 주장 이면에는 단독 수업권과 '초등체육교사'로의 전환이 있습니다. 스포츠강사들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동의하며 대부분은 내심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한 동안 스포츠강사들에 대한 일자리위원회나 광화문1번가들의 글들을 날카롭게 주시했었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읽었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체육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전문성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초등학교 체육수업에 대해 몇 개의 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속을 뒤집어 놓는 글들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고 체육이라는 교과를 넘어서 초등교육 전체에 대한 고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주제라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