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생의 체육잡설] 체육수업의 성공은 약속이 반이다
체육 수업에서 아무런 교육이 일어나지 않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가르침이나 배움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피곤한 일입니다. 교실에의 수업도 답답한데 운동장의 수업은 말할 것도 없지요. 수업이 수업답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나 학생들 모두 가르치고 배울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준비, 다르게 표현하자면 약속이 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체육수업의 약속은 수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 약속은 결코 통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서 저는 수업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과관계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전제로 합니다. 원인을 정확히 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지식은 전체 현상 중에 일부만 설명할 뿐입니다.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식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실전의 영역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수업의 혼란들은 맞닥뜨려서 상호작용 속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약속을 통제로 두면 수업은 불행해집니다. 약속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학생들의 갈등을 줄이거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안전하게 체육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학생들이 체육수업에서 뭔가 배우는데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만약 약속을 세우는데 있어서 교사가 편하게, 계획한 대로 수업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그러한 약속을 바탕으로 한 수업은 좋은 수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제가 아닌, 배움에 초점을 둔 약속은 어떤 원칙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먼저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나열하는 방식을 피해야 합니다. 많은 규칙은 교사나 학생 모두 관리하기 힘들어집니다. 거기에다 학생들은 ‘그 규칙만 아니면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친구의 공을 빼앗지 마라’라는 규칙을 ‘공 빼고 나머지 것은 가로채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반면 ‘친구의 연습을 방해하지 마라’라는 규칙은 여러 상황에서 확장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규칙은 포괄적인 규칙이어야 합니다.
어떤 규칙이 좋을는지 구체적인 예를 원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저는 여러분께 네 가지 규칙을 추천합니다. 첫째 규칙은 ‘경청하기’입니다. 체육수업의 정보는 다른 교과보다 적지만 결정적입니다. 게임의 규칙이나 방법을 놓치면 자신뿐 아니라 친구들의 수업도 망칩니다. 둘째 규칙은 ‘목적에 맞게 행동하기’입니다. 이것은 도구 사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배드민턴 라켓은 셔틀콕을 치는 용도로 사용되어야지 칼싸움을 하는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비난 금지’입니다. 체육수업은 어떠한 교과보다도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입니다. 경쟁과 협동에서 수반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비난으로 폭발하면 수업을 망치게 됩니다. 넷째는 ‘배움에 초점두기’입니다. 체육수업의 모든 협동과 경쟁의 최종 목적은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한 학생들은 승패라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체육수업의 성패는 약속이 반입니다. 여러분이 수업다운 수업을 하고 싶다면 좋은 약속을 수업의 아래에 깔고 가야 합니다. 체육수업은 학생들에게나 교사들 모두에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체육을 배우고 가르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학생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