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5. 나 혼자 마주해야 한다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사회에서 서울대 나왔어도 군대 오면 똑같은 XX이다.’라는 격언 처럼 이등병 시절은 누구나 어리바리하다. 나이도, 학력도, 지식도 소용없는 암울한 시기,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선임의 말씀을 진리로 받들고 하루 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최악의 사수(군대에서 업무 상 직속 선임)를 만났고 평생 들은 욕보다 더 많은 욕과 갈굼을 견디며 버티고 있었다. 덕분에 업무 습득은 빨랐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고 눈치와 충성만이 필요했다.
그렇게 업무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때였다. 내 업무 결과를 살피던 행정보급관님이 나를 불렀다.
“야, 이거는 왜 이렇게 한 거야?”
“잘 못들었습니다?”
“여기 이거, 왜 이렇게 처리한 거냐고.”
“아…… OOO병장이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뭐?”
“원래 그렇게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행정보급관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라고 이 XX야? 그게 말이야 똥이야! 니가 왜 이렇게 처리했는지 물었는데 왜 OOO 이야기를 해!”
“아……”
“너는 OOO이가 죽으라면 죽을래?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니가 판단하는 거지 XX야. 원래가 어디 있어 원래가!”
고성과 욕설로 가득한 그 곳에서 나는 멍해졌다. 그리고 외롭다고 느꼈다. 역시 인생 독고다이인가 보다.
"졸라 고독하구만......"
처음에는 억울했다. 나는 상급자가 시킨대로 했을 뿐이었다. 생소한 업무를 사수가 시킨대로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곱씹어볼 수록 행정보급관님의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나는 내가 판단하지 않고 타인의 권위에 기댄 것이었다. 전범 아이히만과 비슷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원래', ‘~~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에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1. 조언을 구하되 의지하지 마라
교사는 다양한 상황에서 학부모를 만난다. 그 상황은 긍정적일 때 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인 경우가 더 많다. 학생이 아프거나 학교 생활에 불만이 있을 때도 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 학교를 힘들어 하거나 학교 폭력 등에 노출되기도 한다. 생활습관과 관련된 어려움일 수도 있다. 이럴 때 학부모와 교사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는다. 남북 협상 테이블이나 이 테이블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이익관계와 목적이 다른 두 주체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전문성을 갖춘 교사라도 모든 상황에, 모든 대상에 능숙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저경력 교사라면 더 난감하다.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OO이 어머니가 찾아오셨어요.’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두렵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동료다. 경험이 많은 선배 교사나 관리자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 그들로 부터 다양한 경험과 대처 방법을 듣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교사는 혼자가 아닌 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난감한 점이 있다. 수많은 조언들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학부모에게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게 결국 교사 개인의 경험과 철학에서 비롯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언들이 상반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시류에 맞지 않기도 하다. 전에는 아는 게 없어 힘들었다면 이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 힘든 것이다.
이럴 경우 교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게 될까? 개인 차가 있겠지만 많은 교사들이 ‘내가 신뢰하는' 교사의 말을 선택한다. 평소 인품이나 친밀도, 학급 살이 능력 등을 봤을 때 ‘이 사람 말이 믿을만 하겠다’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결국 나의 학부모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이 듬뿍 들어간 상황 설명을 듣고 조언을 할 뿐이다. 그래서 상황의 본질과 내가 대할 학부모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걸 파악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러므로 내가 신뢰하는 교사의 선택이 나의 선택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가설은 사실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그들의 조언에 선택을 위임한다. 왜냐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선한 권위에 기대어 그 어려움에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이 방법에는 또 다른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는 것이다. 조언을 해주고 결과까지 책임져준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담임은 나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그들이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 겪었던 것처럼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올 수 있다.
더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아예 다른 교사가 상담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가끔 드세거나 어려운 학부모가 오면 저경력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학년 부장교사나 관리자 등이 대신 만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악성민원인에 대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리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절차가 중요하다. 요즘 이슈가 되는 ‘~~패싱(코리안 패싱, 재팬 패싱 등)’이 발생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관리자나 학년 부장 교사가 단독으로 나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를 몇 번 봤다. 담임 교사는 그 순간 안전하고 편했다. 하지만 동시에 영향력을 잃었다. 그 후 그 반 학부모들은 일이 터지면 바로 부장 교사나 관리자에게 달려 갔다. 담임 교사의 말에는 힘이 실리지 않고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무력감에 빠졌고 갈등 상황을 더 겁내게 되었다. 부장교사나 관리자에게 상황이 넘어가더라도 반드시 담임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담임이 함께 학부모를 마주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국 책임자는 당사자인 담임이다. 책임을 지는 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조언을 구하되 의지 하지 말아야 한다.
2. 중요한 내용은 바로
뒷담화는 학급의 큰 골칫거리다. 뒷담화가 힘든 이유는 일을 부풀린다는 점이다. ‘쟤 어제 청소 했어?’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걸 들은 친구가 말을 전한다.
‘OO이가 쟤한테 청소했냐고 하더라?’ -> ‘OO이가 쟤한테 뭐라고 하더라?’ -> ‘OO이가 쟤 뒷담화 하던데?’ -> ‘OO이가 쟤 별로래.’ -> ‘OO이가 쟤 싸가지 없대’
말이 변한다. 그래서 결제 라인과 대화 라인은 간단 해야 한다. 말이란 사람을 거치면 오해를 낳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교사가 학부모와 소통할 경우 학생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엄마한테 ~~라고 전해드려.”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껄끄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학부모와 직접 소통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교사의 의도를 정확히 담아 부모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의도는 둘 째 치고 워딩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학생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껄끄러운 사안이라면 민감한 문제일텐데 그 때 학생을 메신저로 삼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학부모와 직접 소통하기를 추천한다. 후속 글에서 다루겠지만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직접 마주해야 한다. 불편한 자리를 피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잠시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테이블에 직접 뛰어 들자. 그래야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