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13. 도둑놈 심보를 버리자
대화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
“저도 노력하는데 안 되더라고요. 이 방법은 저랑 안 맞나 봐요. 우리 반 녀석들에게는 통하지도 않고요.”
하긴, 모든 교사가 공부한대로 실행했다면 대화로 인한 어려움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공부한대로 실천하는 건 어렵다. 성격과 궁합이 맞는 말하기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좌절은 교사의 높은 기대와 낮은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 해볼까 한다. 우리는 도둑놈 심보를 버려야 한다.
1. 연습이 필요하다.
김교사는 학교를 옮긴 뒤 처음으로 방송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는 전임자와 잠깐 만나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다.
“방송 조회를 할 때는 우선 믹서 주전원을 켜세요. 그리고 메인 카메라는 교장 선생님 바스트 샷을 잡으시고 2번 카메라는.....”
아주 상세하고 오랜 설명이 끝난 뒤 전임자가 말한다.
“설명 드린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전임자는 유유히 떠난다. 과연 김교사는 당장 첫날 방송 조회를 해낼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불가능하다. 물론 전임자의 안내는 친절했다. 하지만 듣는다고 즉각적으로 해낼 수는 없다. 아마 김교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도 첫 방송 조회 시간에는 실수를 연발할 가능성이 크다. 안다는 게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을 대화법에 적용해보자. 이 게시판 목록을 열어 ‘[NQ, 지금부터 Q] - 교사대화편’을 모두 읽었다. 상세하게 읽고 이해했다. 그럼 당장 글의 내용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틀린 문제를 오답 노트를 만들어가며 다시 푸는 이유는, 반복과 연습만이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는 어떤가? 학생들의 학문적 기술(공부)은 끊임없이 연습 기회를 주는데 인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정서적 기술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건 쉽게 잊어버린다. 도덕 시간의 훈계 몇 번으로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교사 자신도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채 ‘나한테 안 맞아.’라는 자기 합리화로 도망가려 한다.
못 믿겠다면 관찰해보자. 학급에서 말이 안 통하는 문제 학생을 한 명 고른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잔소리하는 그 학생의 행동을 찾는다. 그 다음에 학생이 그 행동을 해서 내가 잔소리 할 때마다 체크하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고 푸념했던 그 학생에게 나는 연습 기회를 몇 번이나 줬을까? 백 번이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대화하는 법을 시도할 때마다 체크해보자. 의외로 많지 않은 숫자에 포기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연습은 쉽지 않다. 대화는 습관이기에 관성에 따라 돌아오기 쉽다. 주변의 반응도 낯설고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한 선생님은 대화 방법을 바꿨더니 학생이 ‘선생님, 또 뭐 배우셨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습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 민망함과 귀찮음, 속상함에 지지 않아야 한다. [긍정의 훈육]의 저자 제인 넬슨은 연습 과정에서 힘들 때 아이가 첫 걸음마를 어떻게 떼게 되었는지 떠올리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수 백 번 넘어지고 부딪히는 동안 부모는 끊임없이 잡아주고 격려해준다. 왜 걷지 못하냐며 다그치거나 혼을 내는 부모는 없다. 수많은 연습으로 무릎이 닳고 나서야 우리는 걸음에 성공한다.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에게, 혹은 교사 자신에게 그 정도 노력은 어렵더라도 이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실수는 배움의 기회다. 연습이 필요하다.’
2. 간 거리 만큼 돌아와야 한다.
평소 권위적이었던 이교사는 학생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나도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사가 되어야 겠어.’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한 이교사, 드디어 개학 후 학생들을 만났다.
“선생님, 민수가 저를 막 놀려요!”
“(기회다!) 저런, 많이 속상했겠구나.”
멋지게 반응한 이교사는 의기양양해졌다. 온화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이상해요.”
“뭐 잘못 드셨어요?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감동과 환희의 도가니는 아니더라도 고마워는 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이교사의 변화에 학생들은 낯설어하고 저의를 의심했다. 상처 받은 이교사는 더 큰 마음으로 다짐했다.
‘그럼 그렇지. 얘들한테 무슨 소통이야. 더 완벽한 악마가 되어주겠어!’
많은 선생님들께서 평화적인 대화를 실천하려 하다가 냉랭한 학생들의 반응에 상처받는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 때 보이는 학생들의 부정적 반응은 정말 부정적(negative)이라기보다 낯설음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동안 교사의 대화 방법이 부정적이었고, 새로운 시도가 학생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역사를 전제로 한다. 그 역사의 맥락을 무시한 채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낯설음에 대해 교사의 책임도 크다. 수직선에 비유하자면 교사와 학생의 대화는 마이너스 쪽으로 한 참 가 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방향을 틀었으니 플러스가 되라는 건 교사의 욕심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우선 방향부터 플러스 쪽으로 틀고, 천천히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0에 도달해야 비로소 플러스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때 택시와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멀리 갔으면 택시비가 많이 나오 듯, 마이너스 쪽으로 많이 갔다면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책임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싫으니 바로 좋은 관계로 만들고 싶다는 건 도둑놈 심보다.
3. 투자한 만큼만 기대해야 한다.
친한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이 분은 학생들의 언어 습관에 민감하시다.
“요즘 애들은 기본적인 언어 예절이 없어. 욕이나 비속어의 수준도 너무 쌍스럽고. 커서 뭐가 되려고.”
그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자주 쓰시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새끼가’다. 친하기도 하고 선배기도 해서 오지랖 넓게 나서지는 못하지만 안타깝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이 아닌 행동에서 배운다.’
T.E.T의 저자 토마스 고든 박사의 말이다. 모델링은 힘들지만 가장 강력한 교육방법이다. 특히 대화에서는 절대적이다.
“욕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라고 소리치는 교사에게서 학생이 배우는 건 욕밖에 없다. 따라서 교사는 투자한 만큼만 학생들에게 기대해야 한다. 투자 방법은 모델링이다. 내가 고맙다고 말한 만큼만 학생이 고마움을 표현하기를 기대해야 한다. 내가 경청한 만큼만 학생들이 경청하기를 바라야 한다. 내가 친절하게 말한 만큼만 학생들의 말에 친절함이 깃들기를 원해야 한다. 이것이 기대수익이다. 합리적인 근거로 기대수익을 바래야지 몇 십, 몇 백 배의 초과수익을 바라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그러려면 복권을 사야 한다. 하지만 교육이 복권이나 도박이 될 수는 없다.
예전에 선생님들에게 혼날 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개떡은 개떡이고 찰떡은 찰떡인데 어떻게 개떡을 찰떡으로 알아들으라는 말인가? 우리는 개떡은 개떡, 찰떡은 찰떡이라고 말해야 한다. 더 나아가 찰떡 같이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아름대운 대화로 가는 멀지만 확실한 길이다.
4. 맺으며
글을 맺으려니 조금의 찝찝함이 남는다. 나는 많은 선생님들보다 위에서 다그치려는 게 아니다. 그럴 자격도, 깜냥도, 마음도 없다. 어설픈 지적질에 반발감을 가지거나 상처입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을 붙이는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가 아니다. 까칠한 필체 말고 내용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하는데?’라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간단하다. 나도 내가 투자한 만큼만 기대한다. 투자한 만큼만 글에 쓰고 있다. 그것이 공정한 게임이다.
더불어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괴테는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했다. 이상적인 모습의 실현보다는 나아지는 발전의 모습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게 현명한 길이고 편안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