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12. 적게 힘들이고 많이 얻는 말하기를 하라
학교 폭력이 큰 이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학교 폭력 예방이 중요할까, 아니면 학교 폭력의 효과적인 수습이 더 중요할까? 많은 사람들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예방은 수습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에너지와 노력, 시간을 덜 들이고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운7 기3이라는 도박에서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 어차피 운인데 왜 고수는 돈을 따고 하수는 잃을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좋은 패가 돌아갈 확률은 비슷하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작은 노력이다. 그 노력으로 고수는 잃을 때 적게 잃고 딸 때는 많이 딴다. 하지만 하수는 딸 때는 적게 따고 잃을 때는 왕창 잃는다.
사설이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노력을 적게 들이고 많이 얻는 말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1. 고마움은 습관이다.
우리 학년에는 여학생 화장에 관한 약속이 있다. 최근 격랑을 겪은 뒤 약속을 관철시키고 있다. 어느 날 몰래 화장을 더 한 학생에게 말했다.
“약속을 지켜줄래?”
그 후 여학생은 점심시간에 찾아 왔다. 약속된 만큼의 화장을 한 얼굴로. 나는 말했다.
“고맙다. 아쉬웠을 텐데 그래도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마워.”
그걸 들은 옆자리의 선생님이 말했다.
“약속을 어겨서 지운 건데 고마운 건 아니지 않아요? 오히려 혼내지 않은 것도 감지덕지지. 우리 선생님들은 너무 착해.”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 말 들어준 건 고마운 거죠. 인상 찌푸리고 욕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누군가 나에게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대화 비법을 하나만 말해달라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고마움’이라고.(고마움의 가치와 위력에 대해서는 일전에 글로 소개했다.)
* 칭찬 대신 고마움 한 스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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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웃음을 만병통치약이라고 한다. 모든 병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그 어떤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고마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고마움은 칭찬이 가지는 부작용이 없다. 진심만 담겨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걸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마음을 많이 표현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칭찬 하면 우쭐 댄다.’라는 통념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몰래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미담으로 돌기까지 한다. 웃기지 않은가? 고맙다고 하면 닿을 진심을 굳이 돌려서 표현해야 한다는 게.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뭘 고마워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럼 어떻게 고마워해야 할까? 고마움에도 레벨이 있다. 하수는 고마운 상황에서도 고마움을 표현할 줄 모른다. 그저 멋쩍게 웃거나 칭찬으로 넘어갈 뿐이다. ‘그걸 말로 해야 아나?’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한다. 중수는 고마운 상황에서 정확하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사과를 받아 준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어.’ 그래서 고마움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더 고마움과 친숙해진다.
고수는 고마운 일을 찾아내서 고마움을 표현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틈에서 고마워 할 일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중수와 고수의 차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들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이 지각을 하지 않은 것은 노력 한 결과이니 고마워 할 만한 일이다. 수업 시간에 못한 숙제를 남아서 하고 간 것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진 거니 고마워해야 한다. 이럴 때 고마움을 표현해주면 학생은 감동한다.
2.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자.
기술의 발전이 생활을 변화시켰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다양한 소통 매체가 존재한다. 이 매체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노력 대비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1) 칠판
라온제나 1기를 시작할 때부터 꼭 해온 일이 있다. 아침마다 칠판에 편지를 쓰는 것이다. ‘도쌤 편지’라는 이름의 이 편지는 학생들이 무척 좋아한다. 사실 거창할 것도 없다. 그냥 그날그날의 생각을 짧게 쓰는 것이다. 학생들과 감정 일기를 쓰는지라 감정과 온도도 표시한다. 그럼 학생들이 읽고 답글을 단다. 소통의 창구다.
학생들은 칠판에 무언가를 쓰는 걸 좋아한다. 권위가 강한 교실에서는 칠판을 교사가 독점한다. 학생들에게는 금지된 파라다이스다. 한 여학생이 말했다. 칠판에 글을 쓰면 자신도 선생님이 된 것 같아 좋단다.
칠판 편지는 마침 시간의 잔소리나 당부를 줄여 준다. 또한 교사 혼자만의 시간에 적기 때문에 차분하게 정리된 생각을 담을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놓칠 수 있는 여유와 새로운 생각을 나눈다. 그래서 칠판은 매력적이다.
꼭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림에 재주가 있는 선생님은 그림을 활용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쉬는 시간에 써도 되고 학생들에게 쓸 공간을 제공해도 좋다. 교실의 중앙이 소통의 장이 되고 집중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일기
많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일기는 애증의 존재다. 생활 지도나 소통을 위해 필요하지만 귀찮음과 사생활 보호 때문에 폐지 논란까지 일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일기는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왜?’ 많은 학급이 그러하듯 일기 작성에 강제성을 두지 않는다. 또한 사찰의 목적도 없앤다. 오롯이 하나, ‘소통의 창구’ 역할만 한다. 소통의 창구로써 일기는 꽤나 멋진 매체다. 칠판이 학급 전체와의 대화 창구라면 일기는 일대일 대화 창구다. 비밀스럽고 심도 있는 대화도 가능하다. 몇 줄의 글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일기가 좋다. 기능을 더 키우는 한 가지 요령이 있다. 답글을 질문으로 끝내는 것이다.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지게 한다. 그렇게 소통하면 일기가 기다려진다.
그래도 일기가 불편하다면 글쓰기 공책이나 다른 것도 좋다. 무얼 쓰느냐 보다는 창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니 말이다.
3) 알림장
홈페이지든 종이든 SNS든 대부분의 학급은 알림장을 쓴다. 이 알림장도 좋은 소통의 경로가 될 수 있다. 공개적인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 1~2명 정도 정해서 알림장에 공개적으로 고마움을 적는다. 별것 아닌 한 두 줄은 모든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에게도 전달된다. 주인공 학생은 쑥스럽지만 엄청난 자존감 향상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평소에 자존감이 낮거나, 긍정적인 피드백 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는 학생들에게 주목하기를 추천한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대부분 어긋난 신념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알림장 한 줄은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의 위력을 발휘한다.
4) 포스트잇
낭만적인 광고가 있었다. 조용한 도서관, 빈자리에 놓인 따뜻한 캔 커피,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한 장. 사람의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데 포스트잇 한 장이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데는 편지만한 게 없다. 디지털 시대에도 손 편지의 감성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편지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접근하기 어려운 방법은 선택지에 두기가 어렵다.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게 바로 포스트잇이다. 예쁜 포스트잇을 사서 둔다. 그리고 고마움, 미안함, 칭찬, 격려 등을 할 타이밍을 찾는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써서 그 학생의 책상이나 공책, 책, 사물함 등에 붙여준다. 대신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포스트잇으로 전했다. 별 것 아닌 이 접착 종이 하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3. 몸은 말보다 강하다.
의사소통에 관심이 많다보니 비언어적, 반언어적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때 즐겨 쓰는 표현이 있다.
‘선생님은 입을 떼기 전에 이미 말하고 계십니다.’
수차례 언급한 메라비언의 법칙에서 드러나 듯 몸은 말보다 강하다. 흔히 사람들은 강한 설득이나 전달을 위해 말에 논리나 감정을 더한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말이 길어지게 되고, 그러면 실수를 낳는다. 강함은 간결함에서 나온다. 그 간결함의 완성은 바로 표정과 제스쳐다.
표정과 제스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상황에 적절하게’ 하면 된다.(중요한 예시들은 이미 언급했다.)
말하기, 이것만은 지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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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내 표정과 제스처가 말하고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매번 거울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인지하면 주의하게 된다. 백 마디 칭찬보다는 한 번의 미소가 강하다는 걸 잊지 말자.
한 가지 더 있다. 말이나 행동을 연습하듯 표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얼굴 근육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가소성 때문에 그 부분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물리적, 실제적 차원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움직이고 거울을 보고 끊임없이 움직여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원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4. 말하기는 타이밍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말하기도 타이밍이다. ‘언제 하느냐’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위력이 달라진다. 가벼운 잽은 평소에는 견제용에 불과하지만 상대가 파고들 때 날리면 카운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제 때 말할 수 있을까?
1) 첫 날 말하기
그 어떤 학생도 교사의 말에 경청하는 모범생이 되는 날이 있다. 마법 같은 이 날은 바로 ‘3월 2일’. 학년을 처음 시작하는 날 만큼은 교사가 주인공이다. 이 날을 활용해야 한다. 나중에 하면 잔소리가 될 이야기도 이날하면 안내가 된다. 칠판에 이름 세 글자를 쓰고 간단한 소개만 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유행하는 PPT에 편승해서도 안 된다. 함께 보낼 일 년을 이야기하면서 당부하고 싶은 것, 내가 바라보는 방향, 우리가 나아갈 길,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정제한 뒤 이야기해야 한다. 3월 2일 하루가 일 년을 가르지는 않지만, 성공한 일 년은 성공한 3월 2일에서 시작한다.
2) 복기는 바둑에서나 하는 것
상담이나 소통에는 큰 함정이 하나 있다. 감정은 개인의 복잡한 역사를 전제로 빚어지기 때문에 그 심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를 붙잡아 줄 밧줄이 있다.
‘Now and Here’
모든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갈등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유치원 때 있었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는 학생들을 보곤 한다. 물론 그 때의 경험이 그 학생의 마음시스템에 영향을 줬고 현재와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들어줄 만큼의 여력이나 여유가 없다. 들어준다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황하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교사의 말하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함정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잘못을 차곡차곡 모아뒀다 한 번에 몰아붙이는 교사들이 있다. ‘한 번 제대로 걸리기만 해봐.’라는 그들의 모토는 소통보다는 힘으로 압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혹은 이야기를 하다 예전에 있었던 유사한 경험들을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소환하는 경우도 있다. ‘너 1학기 때도 그랬었잖아?’ 법에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다. 그 때 마무리 한 이야기는 다시 끄집어내면 안 된다. 이런 말하기는 ‘화’라는 감정과 닮았다. 화는 처음에 가볍게 시작한다. 그러나 화를 내면 낼수록 본인의 감정에 취해 더 화가 난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폭발한다. 듣던 사람은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만 반복되는 화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같이 폭발한다. 관계는 틀어진다. 말을 했으면 그 때, 한 번에 끝내자. 복기는 바둑에서나 하는 것이다.
3) 링 위는 피하라
누구나 자존심이 있다. 자존감과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것이다. 학생들도 어리지만 자존심이 있다. 그런데 가끔 교사는 그걸 잊는다.
학생들에게도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링 위에 올라가는 순간이다. 공개적인 자리(교실, 강당, 식당 등)에서 많은 친구들이 보고 있다면 거기가 링이다. 링 위에 올라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시합에 임하듯 학생들도 최선을 다해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상대가 평소라면 수건을 던졌을 교사라도 말이다. 또래에서 ‘쪽팔리는’ 것보다는 교사랑 한 판 붙는 게 낫기 때문이다.
링 위에서는 평소라면 통했을 말하기가 통하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말들이 소용없다. 학생의 반응은 오히려 교사의 화만 부추길 뿐이다. 그 순간 교사도 같이 링 위에 서게 되고 힘으로 이겨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선택해야 한다. 링 위에서 내려오는 길을 말이다. ‘잠깐 진정하고 점심시간에 다시 이야기하자.’, ‘일단 수업부터 하고 쉬는 시간에 따로 이야기 할까?’ 이 공 울리는 소리는 학생에게도 구원이다. 잠깐 본인의 코너로 가 숨을 돌릴 수 있고 관객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 공은 교사만 울릴 수 있다. 어쨌듯 교사가 교실에서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피하는 게 교사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용기 있게, 현명하게 링 위에서 내려 와야 한다. 링 위에서는 말하지 마라.
4) 링 위에서는 몇 배의 임팩트
링 위가 대화하기에 얼마나 위험하고 부적절한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이상도 있다. 본인의 역량에 자신이 있다면 링 위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링 위가 위험한 이유는 수많은 관객들 때문에 대결 구도로 가기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주목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위기의 순간에 교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집중한다. 그 상황에 본인을 대입하고 교사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투적인 말하기로 다가오거나 교사에게 반항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그리고 학생들과 약속한 말하기를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개별적인 반응이나 이론 설명보다 몇 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친구와 싸운 뒤 씩씩 거리고 있다.
“OO아, 화가 났나 보네. 수업 시간이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 줄래?”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학생은 반응이 없다. 여전히 서서 친구를 노려보고 있다.
“OO아, 자리에 앉아 줘.”
그러나 여전히 반응이 없다. 교사의 표정이 굳어진다. 교실에는 긴장이 흐른다. 링 위에서 한 판이 벌어지려 한다.
이 때 교사들은 이렇게 실수한다.
“야, 선생님 말 안 들려? 앉으라고!”
이런 위협은 기질이 약한 학생을 앉히고 승리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앉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러나 평소에 강조하던 방법으로 말할 수도 있다.
“OO이가 감정이 많이 올라가서 선생님 말이 안 들리나 보다. 대화할 수 있을 때까지 원하는 방법대로 타임아웃 해도 좋다. 우리는 우리대로 수업하자. 대신 XX이에게 접근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수업으로 돌아간다. 링 위에서 언행일치를 보여주고 유유히 내려왔다. 선택권은 링 위에 혼자 남은 OO에게로 넘어 갔고 링 위에는 더 이상 부딪힐 상대가 없다. 그러면 대부분 OO이는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가거나 시간이 흐른 뒤 교사에게 대화를 걸어온다.
5. 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에 관한 책들은 수없이 많다. 효과적이고 평화적이며 아름다운 방법들이 넘쳐난다. 그 방법들이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건 동기를 일으켜야 하고 쉬워야 한다는 의미다. 어쩌면 이번에 소개한 내용은 간단한 팁들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팁들이 단초가 되어 더 큰 실천과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