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 지금부터 Q] 10. 효과적으로 사과하기
지난 글에서 비속어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 마음이 무겁지만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라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번에는 관계를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소소한 방법인 사과하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너]
○학생1 : 아야, 너 왜 부딪혀?
○학생2 : 아, 부딪혔구나? 쏘리.
○학생1 : 그게 뭐야, 제대로 사과해야지?
○학생2 : 방금 사과했잖아? 왜 그렇게 오버야?
○학생1 : 뭐!
교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럴 때 교사가 개입해서 상담을 시작하면 이런 반응이 나온다.
○학생1 : 지가 잘못해놓고는 사과를 제대로 안 했어요!
○학생2 : 저는 분명히 사과했는데 괜히 그러잖아요!
판관 포청천으로 빙의한 교사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어느 쪽에 개작두를 대령해야 할지. 한 가지 상황을 더 보자.
○여자 : 오빠, 어쩜 그럴 수 있어?
○남자 : 아, 미안해.
○여자 : 뭐가 미안한데?
○남자 : ~~한 게 미안하지.
○여자 : 그게 미안한 태도야?
○남자 : 진짜 진짜 미안해.
○여자 : 됐어. 미안하다면 다야?
○남자 : 아, 진짜.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사과를 해도 뭐라고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하고. 나는 진심으로 사과한 거라고.
다소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이라고 쓰고 현실이라고 읽는다.) 사과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감정이 상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 사과를 받는 사람은 진심이나 태도를 운운할 것이고 사과를 하는 사람은 사과를 했음에도 받아주지 않는 상대를 원망할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심(태도) VS 형식’의 논란이다. 사과를 받는 사람은 상대가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상대는 ‘진심으로 했다.’라고 말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
여기서 잠깐 다른 논란거리를 생각해볼까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진심, 혹은 태도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진심은 상대에게 반드시 전달되는가? 사과를 할 때 진심과 형식 중 어느 게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이 중요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진심을 담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 명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라.’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미안함을 느껴라.’, ‘깊게 뉘우치고 송구스러워라.’라고 교육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건 감정의 영역이고 감정은 누군가에 의해 교육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언어적인 요소를 강하게 포함하는 그런 진심(태도)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진짜 미안할 때 상대가 그걸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오해와 상심은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되기에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다.
[형식에 손을 대자]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사과를 가르칠 때 형식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은 공감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감정교육이나 공감능력향상교육을 통해 다루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할까?
○교사 : 너는 ~~한 게 잘못이고 너는 OO해서 잘못했네, 그렇지?
○학생 1, 2 : 네.
○교사 : 그럼 잘못을 인정하니까 서로 사과해.
○학생1 : 미안해.
○학생2 : 나도 미안해.
○교사 : 됐어, 들어 가봐.
교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하지만 저 ‘미안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의 지시에 의한 것인데다 사과의 핵심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과하기의 핵심은 인정, 공감, 그리고 문제해결이다.
1. 인정
교사가 학생이 문제행동을 하면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다 쓰게 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문의 형태이든 ‘있었던 일’의 형태이든 말이다. 그건 경찰에서 하는 경위서와 마찬가지인데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동시에 자신이 진술 혹은 서술함으로써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사과가 이루어지려면 상대를 힘들게 한 그 행동을 자신이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사과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뭐가 미안한데?’라는 의문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가 아니라
‘내가 니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다가 깨뜨려서 미안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공감
통상적으로 하는 사과하기에서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부분이다. 사과의 목적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상대의 상한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감정 온도를 내릴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 때 공감이 필요하다. 앞서 보았던 남녀의 상황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여자는 남자가 자신이 화난 이유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그게 미안하다는 태도야?’라는 건 죄인처럼 비굴하게 굽실대면서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화가 난 이유와 감정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일단 사과만 하려고 하지마.’라는 뜻이다. 참 어려운 이야기이다. 특히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자들에게는 화생방 훈련만큼이나 높은 난이도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내가 사과를 하고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지 지난 일에 대해 반복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게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니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다가 깨뜨려서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가 아니라
‘내가 니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다가 깨뜨려서 미안해. 엄청 속상했겠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 문제해결
사과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감정을 공감한 다음이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상황에 따른 욕구와 목적이 있다. 사과하기를 통해 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많은 경우 사과에서 끝내거나 ‘앞으로 안 그럴게.’라고 다짐을 하고 넘어가는데 그것보다는 이 갈등을 일으킨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원칙적으로 감정이 상한 상대가 정해야 한다. 이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이다.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봐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감정은 한풀 더 크게 풀린다. 그리고 적절한 해결책을 공유하고 실천하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지 않아 오히려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문제해결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내가 니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다가 깨뜨려서 미안해. 엄청 속상했겠다. 앞으로 안 그럴게.’보다는
‘내가 니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다가 깨뜨려서 미안해. 엄청 속상했겠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가 나은 것이다.
그러면 상대가‘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만지지 말아줘.’ 혹은 ‘똑같은 걸로 사다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그대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혹시 문제해결을 기회삼아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나한테 존댓말 쓰고 형이라고 불러.’라든지 ‘십 만원으로 보상해줘.’라든지.
사과한 사람이 판단해서 무리한 방법이라고 생각될 경우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건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해결책을 물어보거나 그래도 중재가 안 될 경우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매너가 젠틀맨을 만든다]
사과를 할 때 자주 발생하는 후속 갈등이 있다. 바로 ‘사과했는데 안 받아줘요!’ 논란이다. 사과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받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다 풀리지 않았을 경우 사과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사과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매너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우선 사과는 내가 하는 최선이지 상대가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반응까지 조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상대가 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할 수는 있어도 화를 내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미 공은 넘어 갔으니 선택은 상대의 몫이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반대로 사과를 받는 사람은 마음을 더 크게 먹고 받아줄 필요가 있다. 사과라는 건 나와의 관계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상대의 노력인데 그런 노력을 무시할 경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면 느낄 안타까움, 속상함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물론 감정이 덜 풀렸는데 억지로,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100% 무결한 상태에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51%로 넘어가는 순간 관계를 맺다 보면 더 급속하게 회복되는 것이기에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사과에 대한 받아들임이다.
[N.Q 지금부터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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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효과적으로 사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