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 제 2회 PDC 컨퍼런스
(장면1)
어제 불금을 제대로 즐겼다. 3차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속이 쓰려 견딜 수가 없다. 주말에 아침을 일어나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 올린다. 그러다 취기를 이기지도 못한 채 일어나 씻는다. 집을 나선다.
(장면2)
아이들이 성화다. 지난주에 일부러 놀이동산까지 다녀왔건만 주말인데 또 놀아야지 뭐하는 거냐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낸다. 남편은 주말에 밥도 안 주고 나가냐며 연신 흘겨본다. 하지만 머쓱한 표정 한 번으로 튕겨낸 뒤 집을 나선다.
(장면3)
개학을 일찍 했더니 피곤하다. 개학 첫 주는 일주일이 한 달 같다. 졸업식 준비하느라 업무에 학급 마무리에 정신이 없다.이제 주말이라 겨우 숨을 돌린다. 이불 속에서 십 분을 고민했다. 어떡하지? 그러다 결국 기회가 아까워 이불 밖을 나서기로 한다.
교사가 주말에 집을 나선다는 것은 이러하다. 더욱이 그 주말이 방학의 끝자락에 자리한 것이라면 더하다. 그것도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공부하러 가는 것이라면? 같은 교사라도 열에 여덟은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탄식을 할 것이다.
그런 주말이 2016년 1월 30일, 토요일에 인천에서 펼쳐졌다.
지난 토요일, 인천 인동초등학교에서 ‘제 2회 PDC 컨퍼런스’가 펼쳐졌다. PDC 컨퍼런스는 PD KOREA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6개월에 한 번 씩 진행된다. 1회는 여름에 수원대학교에서 펼쳐졌고 이번에 인천에서 이어졌다. 전국 컨퍼런스였으나 인천 교육청이 예산을 지원하여 주관하겠다고 나서 인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게 되었고, 전국 대상 새 학기 연수를 2월에 별개로 마련하게 되었다. 진행과 강의는 김성환 선생님과 PDC 퍼실리테이터 2기 선생님들, 그리고 1기 선생님 몇 분이 함께 했다. 사회와 강의자로 나선 나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무척 흥미로웠다.
[김성환 선생님의 특강]
원동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육감님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교육감님께서는 누리과정과 관련해 하고픈 말씀이 많으셨는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그래서 당초 예정보다 조금 늦게 김성환 선생님의 특강으로 시작되었다.
특강을 만나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진지하고 빛났으며 간간히 미간이 찌푸려져 있기도 했다. 문득 내가PDC를 처음 접했을 때가 떠올랐다. 환상적이라는 기대감과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 선생님들의 얼굴에서 정확히 그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분들의 눈빛은 ‘그래서 PDC가 뭔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응은 좋았다. 강사는 능숙하고 솔직했으며 수강자들은 진지했다. 그렇게 포문을 열어 나갔다.
[PDC 연극]
연극 공연이 이어졌다. ‘PDC에 웬 연극이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연극은 학문의 철학적 기반을 전달하는데 좋은 수단이다. PDC의 근간이 되는 아들러 철학을 담은 연극은 선생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을 한예종까지 거친 연극을 사랑하는 교사들이 깔끔하게 풀어냈다. 마치 [미움 받을 용기]의 한 부분을 연극으로 본 느낌이랄까? 신선하고 괜찮은 시도였다. 어쩌면 다양한 형태로의 발전이 가능한 컨텐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반 강의]
오후에는 배정된 학급으로 나뉘었다. 크게 초등학교 저학년 3개 반, 중학년 3개 반, 고학년 3개 반, 중학교, 고등학교, 심화 반으로 나누었고 퍼실리테이터 선생님들이 강의를 맡았다. 나는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고학년 반에 들어갔다.
이번 컨퍼런스는 217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엄청난 선생님들이 몰려 경쟁이 생겼다. 내가 아는 지인들도 십 수 명이 떨어졌는데 대부분 경력 순으로 끊었다는 풍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강하시는 선생님들의 교육 경력이 15년에서 20년을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나보다 선배님들을 만나 뵐 생각을 하니 떨리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어디서 고경력 선생님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Ice Breaking, PDC 개요, Telling & Asking, Kind & Firm, Agreement & Guideline, Meaningful Work로 구성된 강의는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정말 밀도 높고 불꽃 튀는 세 시간이었다. 6학년 부장을 맡아 걱정하시는 선생님, 11학급을 이끌며 몇 년 째 호랑이 부장 역할을 하시는 선생님, 협동학습 / 비폭력 대화 / 감정코칭 등 다양한 공부를 하시고 찾아오신 선생님 등 다양한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야기 속에서 날선 항변과 질문, 눈물과 위로, 공감이 넘쳐났다. 그 에너지가 매력적이어서 컨텐츠를 줄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기를 타고 묘하게 흐르던 의구심과 긴장의 기운이 불꽃처럼 뜨거운 시간을 거쳐 차츰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강의자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 질문이 기억에 남았다.
“PDC도 협동학습처럼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유행처럼 지나가버리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교사가 뭘 알아야 PDC를 해보든지 할 텐데 어느 정도 알아야 그게 가능한가요?”
역시 경력이 있으시고 깊이가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생각을 듣고 차분히 대답했다.
“PDC가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PDC가 유행처럼 지나가버릴지 어떨지. 하지만 저는 지금도 협동학습의 일부분을 잘 활용하고 있어요.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DC건, TET건, 비폭력 대화건, 협동학습이건 결코 정답은 없고 완벽한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방법을 해볼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거죠. 해봤더니 나랑 잘 안 맞는다? 그럼 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 부분, 저기서 저 부분을 해보니 좋다? 결합하면 되죠. 도구를 활용하는 겁니다. 다만 도구로 여겨 방법으로만 보지 말고 그 도구에 담긴 철학, 마음을 이해하고 선택하자는 거죠.
PDC를 얼마나 알고 시작해야 될지 물어보셨는데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요, 저는 PDC가 번역되기 전에 [긍정의 훈육]이라는 책을 통해 접했습니다. 그 책 딱 한 권이었어요. 더 배우고 싶은데 한국에는 배울 곳도 없었죠. 그래서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엉성했죠. 하지만 그 속에서 뭐가 잘 되는지,어떻게 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죠.
우리는 알아서 행할까요, 해보면서 알게 되는 걸까요? 일단 저지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PDC에 대한 현장의 열기가 이렇게 뜨겁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서 그만큼 답답하고 힘든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결핍은 필요를 부르고 필요는 행동을 낳게 되니까. 이런 컨퍼런스와 같은 행사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에듀콜라에서도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싶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