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9. 패스해야지, 이 병의 신아!
“야 이 병땡아!”
대지와 하늘을 가르는 우렁찬 고함소리였다. 한가롭게 혼성축구를 감상하던 나의 의식을 두드리는 외침이었다. 그 외침은 나를 아나공 관람객에서 빡센 담임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재민.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재민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눈치 없는 녀석은 내 발걸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마디를 보탰다.
“패스해야지, 이 병의 신아!”
경기는 멈췄고 모두가 우리를 쳐다 보았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재민이를 불렀다.
“방금 뭐라고 했어?”
“네?”
재민이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연기라면 남우주연상감이고 진심이라면 개념상실이었다.
“방금 뭐라고 소리쳤냐고 물었어.”
“방금이요? 음…… 병의 신이요.”
“그 앞에는?”
“병땡이라고 했는데요?”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재민이는 평소에도 입이 거친 녀석이었다.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은 며칠 씩 지방 출장을 다니기 일쑤였고, 집에는 재민이와 누나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여느 사춘기 남매들이 그렇듯이 둘은 각자의 시간을 보냈고 재민이는 자연스레 인터넷 개인방송과 게임에 빠져 살았다. 더구나 주변에 누나를 포함해서 입이 거친 사람들이 많아 평상 시에 쓰는 어휘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새끼야’는 재민이에게 단순한 호격 조사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언어 습관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았고, 이골이 난 녀석은 이런 식으로 우회 작전을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재민이의 반격이 이어졌다.
“선생님, 그런데 저는 욕 안 했는데요? 병땡이 욕은 아니잖아요.”
“그래? 그럼 병의 신은 어떻게 생각하니?”
“말 그대로 각종 질병들의 신이잖아요. 국어사전에도 나와요. 병신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있는 말이 비속어에요?”
그놈의 국어사전 타령…… 국어사전 찾기 수업을 하면 꼭 키득대기 시작하는 녀석들이 있다. 십중 팔구는 병신이라는 단어를 찾고 나서다. 나는 기회다 싶어 이 상황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럼 이야기를 한 번 해볼 필요가 있겠네. 다음 시간이 마침 국어니까 그 때 이야기 해볼까?”
그렇게 체육을 마무리하고 교실로 들어 왔다. 학생들은 무척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비속어의 대장과 교사의 대결, 그 결전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우르르 자리로 향했다.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재민아, 너한테 동의를 하나 구하려고 해. 선생님은 너를 혼내는 게 목적이 아니야. 다만 오늘 상황을 매개로 하면 자연스럽게 너의 언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아. 반 전체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겠니? 니가 동의하지 않으면 둘이서 이야기 할거야.”
재민이는 세상 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은데요?”
“고맙구나.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잠시 말 없이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템포를 죽여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트렌지션 전략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칠판에 ‘병땡’, ‘병의 신’, ‘병신’이라고 적었다. 칠판을 보고 여기저기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몰래 사용하던 낱말들이 배움의 공간인 칠판에 버젓이 적혀 있으니 통쾌하고 재미있는 것 같았다.
“이 말들을 보니까 어떤 생각이 나니?”
키득대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금기의 영역에 진짜 발을 딛어도 안전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내가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은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어.”
“웃겨요.”
교실 구석에서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받았다.
“웃기다. 좋아요, 또?”
“재미있어요.”
“기분 나빠요.”
“쓰기 싫은데 친구들이 써서 저도 써야할 것 같아요.”
다양한 답들이 이어졌다.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좋아요. 다양한 감정이나 생각들이구나. 그럼 물어볼게. 혹시 이 중에 나쁜 말은 뭐라고 생각하니?”
예상 못한 질문이었는지 학생들은 벙찐 표정이었다. 눈을 몇 차례 꿈뻑이다 이내 대답했다.
“병신이요.”
재민이었다. 재민이의 찰진 발음에 또 다시 많은 친구들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부드럽게 되물었다.
“왜?”
“병신은 욕으로도 쓰이니까요.”
“그럼 병의 신과 병땡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네, 그건 욕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까 국어사전에 병신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니?”
“나오죠. 병을 앓거나 다쳐서 성하지 못하게 된 몸을 이르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아예 뜻을 외우고 있었다. 역시 재민이는 머리가 비상하다.
“그렇구나. 일단 재민이는 이렇게 생각한대요. 혹시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잠시 침묵이 다시 이어졌다. 이 금기의 게임에 참여해도 될지 고민되는 표정들이었다. 그 때 민주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셋 다 나쁜 말이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병의 신이나 병땡은 사실상 병신이라고 직접 부르면 혼나니까 돌려서 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욕이랑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야, 병의 신은 말 그대로 병들의 신이라니까? 게임 캐릭터 같은 거야. 그게 나쁘냐?”
재민이가 발끈하고 끼어들었다. 나는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런 게임 캐릭터가 어디 있어?”
“있어, 저승 사자나 레이스, 이런 거랑 비슷한 거지 뭐!”
재민이가 다년 간의 게임 경력을 바탕으로 전문 지식 공격을 했다. 그러자 동조하는 몇 몇 녀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민주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럼 선생님이 이야기 좀 해도 될까?”
모두 나를 쳐다 보았다. 재민이는 덤벼 보라는 듯 호기로운 표정이었다. 논리와 말재주가 강하기에 재민이의 비속어는 폭주하는 면도 있었다.
“재민이 니가 병의 신이라고 하는 건 게임 캐릭터를 말한거라는 거지?”
“네.”
“그렇구나. 재민이 니가 그렇다면 선생님은 그 말을 믿을거야.”
내 말이 의외였는지 학생들은 자세를 고쳐 나를 쳐다보았다. 왜 혼내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니 말을 듣고 다른 친구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니?”
“음…... “
“선생님 말이 납득이 안 되는 것 같네? 그럼 확인해볼까?”
나는 간단하게 의사소통온도계 변형 활동을 했다.
“재민이가 아까와 같은 뉘앙스로 ‘이 병의 신아!’라고 외칠거야. 그 말을 듣고 난 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주면 돼. 양손바닥이 붙은 게 엄청 기분 나쁜 것, 양팔을 최대한 벌린 게 무척 행복하고 좋은 겁니다. 어느 정도인지 표현해볼게요. 자, 재민아 부탁해.”
“......”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재민이가 움찔했다. 나는 재민이를 재촉했다.
“재민아, 얼른 해 봐. 궁금하잖아. 괜찮아. 혼내지 않아.”
“야, 이 병의 신아.”
재민이는 어렵게 말을 내뱉았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니지~ 재민아, 아까와 같은 목소리 크기, 높이, 감정으로 부탁해.”
“음…. 야, 이 병의 신아!”
재민이는 조금 더 크고 신경질적으로 뱉았다. 교실에 소리가 울렸다.
“고맙다. 그럼 각자의 감정을 손으로 표현해주세요.”
학생들은 양팔을 벌렸다. 대부분이 양손바닥들이 30cm 이내였다. 감정, 선호 등 추상적인 것들은 이렇게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위를 둘러 본 재민이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재민아, 어때? 친구들이 저 정도의 감정을 느낀대.”
재민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학기 초에 만들었던 가이드라인 내용 기억 나니? 어떤 말을 쓰기로 했지?”
“고운말이요.”
“그게 애매한 기준이었잖아. 그래서 구체적으로 표현했었는데……”
재민이는 생각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서 한 번 보고 오렴.”
재민이는 일어나서 가이드라인으로 향했다. 아까의 당당함은 조금 줄어들었다.
“재민아, 찾았니?”
“네,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말이요.”
“정확하네, 고마워. 그런데 방금 네 말들은 어떠니?”
“......”
재민이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닫았다.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지는 것 같았을까? 침묵이 이어졌다.
“재민이는 다른 사람이 너한테 그런 말을 쓰면 어때?”
“저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래? 정말?”
“네, 저는 맨날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재민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당당함이 돌아왔다.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아까보다 톤이 높아졌고 눈썹이 과장되게 올라갔다. 각종 비언어적 신호들이 거짓말임을 말하고 있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한 번 몰아부쳐서 제압해봐?’
하지만 이내 멈추었다. 힘으로 제압하는 건 효과가 짧다는 걸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향을 틀기로 했다.
“그래? 욕설이라는 걸 인정하기 어려운 것 같구나. 그럼 바꿔서 물어볼게. 혹시 그 말을 엄마께도 할 수 있니?”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자 재민이의 표정이 확 변했다. 아킬레스건을 물린 짐승 같았다.
“엄마한테 말할 수 있냐고 물었어.”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다렸다. 재민이는 고민하고 있었다. 거짓말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안다. 그걸 덮기 위해서는 양심을 가려야 하는데 가족은, 특히 부모님은 가장 아픈 폐부이기 때문이다.
“...... 아뇨……”
“그래? 어째서? 비속어도 아니고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도 아닌데?”
“......”
재민이는 말이 없었다. 여기부터가 중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인민재판이 될 수도 있었다. 대상을 재민이에서 학급으로 바꾸었다.
“말의 기본 에티켓은 상대방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낱말을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낱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경청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욕을 하면 나쁜 학생이에요.’라는 뻔한 도덕적 판단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도덕적 기준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겁니다. 다만, 상대방이 내 말에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걸 알고 배려하는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꼭 한 번 생각하고 하고, 혹시나 상대방이 불쾌해한다면 나와 기준이 다르더라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재민이를 향했다.
“재민아, 선생님은 니가 장점이 많은 학생이라고 생각해. 누구보다 운동도 잘하고, 창의적인 생각도 하고. 그런데 너의 말들 때문에 니가 가진 장점들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할까봐 걱정된다. 사람들은 단순해서 태도, 말 이런 걸로 상대방을 쉽게 평가해버리거든. 너는 나쁜 녀석이 아닌데 말 때문에 그런 오해를 사면 억울하지 않을까?”
재민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리고 여러분, 가끔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에요. 선생님도 그래요. 그런데 욕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 되는 게 아니래요. 잠깐 시원한 것 같지만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된답니다. 욕을 할 때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독소(정확히는 호르몬)가 나오는데 그게 상대방보다 나에게 먼저 전달되거든요. 스스로를 해치지 말았으면 해요.”
여기 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마무리 지었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고 합의한 걸 정리해볼게요. 비속어, 욕설의 기준은 상대방의 기분이고,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인정하고 사과한다. 나의 건강을 위해 가급적 욕을 하지 않는다.”
“욕을 하지 않는다!”
여러 녀석들이 선서를 하듯 따라했다. 재민이는 말이 없었다. 다만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관련 글 : [NQ , 지금부터 Q] 8. 비속어와의 전쟁 - 생각편
https://www.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27&pag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