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 라온제나 6기 헤집기 1탄(TET PDC편)
올 한 해 라온제나 6기 운영의 기본이 된 큰 기둥은 TET와 PDC이었다. 라온제나 학급 운영의 핵심인 이 둘에 대해 먼저 정리하고 반성해보자. 자랑은 뻔뻔하게, 자아비판은 치열하게 하자.
(글이 조금 길고 딱딱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은 느낌일까?)
[내가 한 것들]
학생들:보들 말하기(행동 관찰),자기표현(I message),직면,소극적 경청
나: 7 skill의 생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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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T의 핵심은 일곱 가지 기술이다(개인적으로 기술이라는 표현을 안 좋아하지만, 어쨌든!) 성인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할 경우 기본 철학과 이 일곱 가지 기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둔다. 하지만 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일곱 가지 기술 중 단기간의 경험으로 학생들이 소화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있고 익히고 연습할 시간 확보도 어렵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면서 체화할 수 있는 것 네 가지만 내가 ‘가르친다’. 가르친다는 것에 방점을 두는 이유는 말 그대로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대신 교사인 내가 일곱 가지 모두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델링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보완하고 있다. 어느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말할 수 없이 두 가지를 병행해 실천이 이루어질 때 목표를 달성하는 것 같다.
Past & Future,가이드라인과 동의,의미 있는 역할,상처 받은 영대,경청하기,질문하기,관철하기,기쁨 화 슬픔 두려움,인(공)사해,원 만들기,칭찬/격려/감사,학급 평화회의,문제 해결4단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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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년에 비해 더 많은 PDC 활동을 실천했다. 특히 학년 초부터 ‘학급의 문화적 기반 만들기’를 목적으로 주춧돌 쌓기를 시작했던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PDC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주체의 구분 없이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래서 TET하면 일대 일의 장면이 먼저 떠오르지만 PDC하면 집단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또 2014년에 했던 활동 중 올해 빠진 것, 그리고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들도 있는데 다시 한 번 고민을 해봐야 겠다.
[좋았던 점]
Point 1. 꾸준했던 TET, PDC의 생활화
내가 TET와 PDC를 활용하는 이유는 학급이라는 집의 기둥으로 삼고 싶어서이다. 학급 운영의 틀을 만들고 싶던 시절에 인디스쿨 연수, 원격 연수, 다양한 활동들을 접했다. 감동이 있고 훌륭한 활동들은 많은 영감을 주었지만 어느 순간 파편화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거 좋은 거니까 한 번 해보자!’라는 식의 접근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같은 학급 운영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강렬한 색깔들을 통에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의 빛나는 부분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TET와 PDC를 주춧돌로 학급이라는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핵심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잘 해낸 것 같다. 일 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만든 원칙, 문화를 벗어나는 길은 가지 않았다. 교사로서 더 큰 힘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픈 유혹도 이겨냈다. 학급문화라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욱 신중했다. 그랬기에 모델링 효과가 일어났고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겉으로 보이는 수준이 아닌 실제적인 변화의 단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TET와 PDC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우리 반의 문화에 녹아들었다는 확신이 있기에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Point 2. 민주적 학급 문화 형성
TET와 PDC의 가장 큰 공통점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 설정에 있다. 더 경험이 많고 우수한 교사가 아직 미성숙한 학생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기존의 교육관을 뒤엎고 둘을 수평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학생이 경험이 더 적고 어리지만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주체로 인정하고 1/N을 원칙으로 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교사와 학생은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학생, 교사 자신이며(TET),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 모두가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도록 민주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PDC). 처음 접하는 교사들이 가장 난감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다행히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묵묵히 걸어온 우리 반은 민주적 학급 문화가 형성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군사 독재를 한 모 대통령도 민주적인 지도자였다고 찬양하는 이 마당에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증거가 될 듯하다.
(장면 1)
전담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감정적인 갈등이 발생했다. 고학년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문제의 해결 방법을 평화회의를 통해 찾기로 했는데 학생들이 당사자인 전담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하는 건 문제 해결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중하게 전담 선생님을 모셔 함께 평화회의를 통해 문제 해결책을 도출했고 실천했다.
(장면 2)
한 학생이 친구의 직면(I message)을 들을 때 진지하지 않고 비아냥대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래서 몇몇 학생들이 부당함을 지적하며 고쳐줄 것을 부탁했지만 그 학생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봐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쌤이 한 마디 해줄까? 앞으로 제대로 안 들으면 백 번 정도 듣는 연습 시켜버려?’라고 반 농담 삼아 이야기 했더니 그건 3R1H 원칙에 어긋난다며 한 번 더 부탁해서 안 되면 평화회의에서 다루겠다고 했다. 결국 정식으로 건의해 학급 전체가 다루었고 ‘친구의 직면(I message)을 듣는 방법’에 대한 원칙이 게시되었다.
이외에도 서슴없이 교사인 나에게 직면(I message)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Point 3. 탄탄한 학부모와의 유대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가 탄탄했다. 우리 학교는 어려운 가정환경, 맞벌이 등으로 인해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호의나 참여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TET와 PDC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꼭 빠뜨리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학년 초 대면 상담이다. 첫날 편지에 학부모 상담 주간을 핑계 삼아 ‘꼭 한 번씩은 얼굴 뵐 거니까 편하실 때 오세요^^’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그리고 퇴근 후 시간, 주말까지 활용하겠다고 하면 의외로 학부모들이 만나러 온다. 이 때부터는 TET가 힘을 발휘하는 시간이다. 쭈뼛거리던 학부모도 점차 마음이 녹기 시작하고 이야기를 통해 많은 마음을 나눈다. 대부분 한 시간 이상 넘어가지만 힘들지는 않다. 그리고 ‘어머 선생님, 제가 이런 것까지 말씀 드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주책인가봐요.’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보이는 학부모들도 많다. 그러고 나면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또한 월간 라온제나와 클래스팅 오늘의 한 컷, 라온제나 통신을 통해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와 학생들의 생각, 마음을 학부모들과 공유한다. 탐탁지 않은 지표지만 교원평가 학부모 만족도는 계속 만점이다.
Point 4. 학년 공동체로의 확장
올해 학년 부장님은 내가 초임 시절부터 마음이 맞았던 부장님이다. 같이 PDC 퍼실 과정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공부를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올해는 학급을 넘어 학년에 TET와 PDC의 원칙을 담았다. 학년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일 년 동안 실천했다. 다모임을 통해 회의를 했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민주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철학을 담은 학급 운영을 하다보면 어려운 점 중 하나가 학년 동료의 비협조로 인한 일관성 유지의 어려움인데 올해는 그런 걱정은 줄어들었다. 학년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 그 매력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아쉬웠던 점]
Point 1. TET, PDC에 대한 도구적 접근
강의를 할 때면 참여하신 분들께 꼭 당부한다.
“TET나 PDC는 효과가 무척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방법 자체의 효용성 보다는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에 주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면 자칫 학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다루는 도구로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지금, 김제동씨가 한 말이 떠오른다.
‘니가 한 말대로 반 만 살아라, 새끼야.’
항상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일이 몰려 정신이 없을 때가 문제다. 상담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TET와 PDC는 큰 도움이 되는데 그 효과에 기대어 쏟아야 할 에너지를 줄이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학생이 비슷한 불만을 다시 토로할 경우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런데 I message는 썼니? 쓰고 이야기 할래?”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원칙을 연습시키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바빠서 얼른 상황을 해결하려는 욕심에 그러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TET와 PDC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며 나는 편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Point 2. 친절하면서 단호함의 경계에 대한 고민
PDC에서 추구하는 친절하면서 단호한 교사의 모습을 위해 노력한다. 행동을 친절하게 하고
원칙에 단호 하라는 것인데 사실 교사들조차 낯선 개념이긴 하다. 그러다보니 ‘확 잡을 때는 잡아야지!’, ‘너무 무르게 대하는 거 아냐?’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결국은 일관된 교사의 모습에 마음이 통하지만 가끔은 그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내 감정의 컵에 물을 넘치게 담아주는 학생들이 있다고 할까?
첫 번째는 내가 경청하고 감정을 존중해주는 걸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쯤으로 치부하는 학생의 경우다. 물론 학생의 권리라면 권리겠지만 문제는 그 학생은 교사인 나나 다른 학생의 감정에 똑같이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이게 장난하나? 똑같이 해줘?’라고 내 안의 악마가 속삭인다. 결국 이럴 때는 I message로 내 감정을 표현하지만 어쩔 때는 I message를 가장해 버럭 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안타까운 환경이나 감정적 문제를 가진 학생이다. 왜 이런 성격과 행동이 형성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 안타까운 학생이 있다. 장애까지 생길 정도니까. 문제는 그런 공감되는 기저에서 형성되는 문제 행동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명확한 피해를 줄 경우이다.다른 학생들은 정확하게 이 학생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의 입장에서 무척 난감하다. 다른 학생들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일관적이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조차 듣고 따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함께 정한 규칙을 명백히 지키지 않으려 할 때 등. 어쩌면 TET와 PDC를 교실에서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Point 3. 많은 시수 확보의 필요성
TET와 PDC를 생활화하려면 어쨌든 이것들을 학생들이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PDC의 경우에는 무척 다양한 활동들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수가 필요하다. 전면적으로 학급 교육과정을 짜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내가 활용하는 방법은 최대한 교육과정 분석해서 연계하기, 아침 시간 활용하기, 도덕 교과시간 활용하기 등이다. 올해는 도덕 시간이 전담이었는데 나는 학급 교육과정을 짜고 내가 수업을 했다. 거의 전부 학급 평화회의로 말이다. 그럼에도 여러 활동들을 담기에는 진도의 압박에 물려 시수가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인 실행 시기를 계획할 수 없었고 전체적인 운영의 묘를 살리기 어려웠다.
Point 4. 다른 수용선이나 철학을 가진 동료, 학생과의 호흡 문제
어쩌면 교사로서 가지게 되는 큰 고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TET를 하거나 PDC를 한다고 하면 ‘그게 뭐야?’, ‘뭐 별스러운 걸 하고 그래?’라든지 ‘나도 젊을 때 아이들에게 친절했었지. 누구는 안 해봤나?’라는 삐딱한 반응이 있다. 그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도 민주적인 학급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랐기에 당연히 이런 그림이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관리가이거나 학교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을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튄다’는 이름표를 교직 생활 내내(라고 쓰니 늙은 것 같군ㅎㅎㅎ) 달고 그런 선배들에게 꽤 많은 손해를 보며 살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다행히 올해는 좀 덜했다고 생각되지만 부정적이고 싸늘한 그 시선들이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그들 입장에서도 내가 아니꼽기도 하겠지?
또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반 한 학생이 그랬다.
“우리 아빠가 진짜 열 받게 하면 죽지 않을 정도로 패버리라고 했어요. 그게 왜 나빠요?”
이렇게 TET나 PDC의 철학 자체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생을 같은 길로 인도하는 건 참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힘들다.
TET와 PDC에 완성이 있겠냐만은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만 강해진 한 해였다. 그리고 일선에서 불고 있는 TET나 PDC의 광풍을 넘어 그에 따른 개선점까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