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7. 죽어버릴거야!
“선생님, 큰일났어요! 윤재가!!!”
점심을 먹으러 느긋하게 걸어가는 길이었다. 민선이가 흡사 적의 침공을 알리는 사자처럼 긴박하게 외쳤다. 나는 끄덕이며 일부러 말을 끊었다.
“알았어, 선생님이 가볼게. 고마워. 윤재 어디에 있어?”
“우리 반 복도요!”
“고마워.”
학생들을 식당으로 보낸 뒤 발걸음을 돌렸다. 차분하지만 잰걸음으로 걸었다. 복도가 가까워지자 몇 명의 학생들이 더 튀어 나왔다.
“선생님, 윤재가 있잖아요!”
나는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OK 사인을 보여줬다. 내가 인지하고 있으니 진정하라는 의미였다. 학생들의 흥분에는 침착함만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학생들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 흥분에 찬 학생들의 말은 상황의 에너지를 고조시킬 뿐이었고, 전체의 불안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내가 직접 빨리 사태 파악을 하고 대처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에 도착했다.
윤재는 특수학급학생으로 분류되어 있다. 진단명은 ‘정신장애’인데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학 때는 아니었으나 저학년 때 입급한 걸 보면 선천적이라기보다는 후천적 요인이 큰 것 같았다. 기막힌 운빨(?)을 지닌 나는 전교사가 꺼리는 이 녀석을 뽑았고, 모두의 측은한 시선 속에 만나고 있었다. 한 달 여 간 만나 보니 사회성 자폐와 분노조절장애, ADHD 등의 증상을 지닌 듯했다. 지적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 조절 능력이 바닥에 가까웠다. 그러니 교사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들(학교에서 뛰쳐 나가기, 괴성 지르기, 벽에 머리 쳐박기, 복도에 쓰러져 바닥을 치며 소리 지르며 울기 등)을 반복했고, 버티기 힘들었던 교사의 제안으로 특수학급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도착해 보니 익숙한 상황이었다. 내가 얼굴보다 먼저 마주한 건 윤재의 괴성이었다.
“죽어버릴거야!!!!!!”
윤재는 복도에 주저 앉은 채 철제 방화문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옆에는 말리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조금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복도 끝의 1학년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 보았고, 교무실 쪽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나오고 계셨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침착해야 한다. 산성 용액에 염기성 용액을 섞어 중화 작용을 하듯, 부정적이고 긴박한 에너지가 가득할 때는 반대 에너지로 상황을 진정시켜야 한다. 같이 흥분하거나 더 큰 에너지로 제압하는 건 역효과를 내기 쉽다. 특히 상황을 주도하는 교사는 입을 떼기도 전에 온 몸으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교사의 불안한 표정, 거친 숨소리, 경직된 몸동작, 커다란 목소리 하나가 주변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자칫 학생이 다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태연하게, 침착하게 상황 속으로 들어 갔다.
“선생님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들 다른 곳에서 놀아줄래? 선생님이 윤재랑 이야기 좀 하게.”
나의 말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교감 선생님도 멀리서 나를 발견하시고는 다시 교무실로 들어 가셨다. 나와 윤재는 일대일이 되었다. 나는 바닥에 앉은 윤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앉았지만 윤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벽에 찧으며 괴성을 지었다. 하지만 아까와 묘하게 달랐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윤재야, 선생님 왔어. 선생님 말 들려?”
녀석은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괴성과 자해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 말에 정확하게 변한 목소리의 크기를 통해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은 간단한 대화로 본인만의 세계에서 우리의 상황으로 데려와야 했다.
“선생님 말 들리면 오른손~”
나는 오른손을 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Yes or No, 혹은 양자택일의 제한된 선택이었다. 뚜껑이 열려버린 녀석들에게 복잡하고 추상적인 질문이나 힘의 사용은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제한된 선택 질문을 던졌다.
“......”
윤재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오른손은 들지 않고 계속 머리를 찧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잘 안 들리나? 선생님은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선생님 말이 들려야 도와줄 수 있거든. 잠깐 기다릴게.”
그리고 윤재를 빤히 쳐다보며 기다렸다. 우리 사이의 적막이 멀리 운동장에서 들리는 소음과 묘한 앙상블을 만들었다. 1분 쯤 지났다. 부정적이고 강한 에너지 속에서의 1분 정도의 침묵은 무겁고 견디기 어렵다. 마치 간질거려서 참기 힘든 두드러기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걸 견뎌내야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너와 부딪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놓지도 않는다. 여기 있으니 대화하자.’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 지금은 어떨까? 선생님 말이 들리면 오른손을 들어 줄래?”
윤재는 한숨을 푹 쉰 뒤 마지 못해 오른손을 들었다.
“오, 이제 들리는구나. 고맙다. 윤재가 뭔가 엄청 속상한 일이 있었나보네. 니가 이유 없이 이럴 아이가 아닌데, 그렇지?”
윤재가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의 상황으로 들어왔다는 신호였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까.”
“이하민이 저 왕따 시켰단 말이에요!”
“에? 왕따를 당했다고 느낀거야? 자세히 말해봐!”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공감하며 반응했다. 흥미롭고 놀라워 견딜 수 없다는 리액션이었다. 윤재는 억울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 급식먹으러 가는데, 저는 힘들어서 빨리 못 걷는데 앞에서 너무 빨리가잖아요! 그래서 쓰러졌더니 이하민이 저를 두고 가자고 소리쳤단 말이에요!”
“헐, 그랬다고?! 그래서?”
“저는 아파 죽겠는데! 그리고 다른 애들도 저 왕따 시키려고 다 가버리고! 진짜!!!”
다시금 윤재의 목소리와 울음이 높아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아까는 감정과 에너지를 담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하소연이었다. 나는 과장되게 반응하며 들었다. 감정으로 하소연하는 상대에게는 일단 무조건 과장되게 몰입하고 공감해주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생각 전달은 차후의 문제다.
“진짜 속상했겠네! 친구들이 너 안 기다리고 밥 먹으러 갔어?!”
“네, 진짜. 왕따 당하는 게 제일 싫단 말이에요! 죽어버릴거에요! 3학년 때도 애들이 왕따 시켜가지고!”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자 과거의 아픔이 녀석을 더 자극한 것이었다. 나는 템포를 유지하며 슬며시 대화를 돌렸다.
“옛날 생각 때매 엄청 걱정됐겠다! 그래서, 넘어진 곳은 괜찮아? 어디야, 어디! 여기 무릎?”
내가 호들갑을 떨며 몸을 살피자 윤재는 세상 죽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내밀었다.
“에이~ 빨개졌네! 어디 보자. 음……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시간 되면 보건실은 꼭 가봐야겠다. 그렇지?”
“네……”
그렇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줬다. 감정을 읽는데 온 에너지를 모았다. 얼마 뒤 윤재의 호흡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나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윤재야.”
“네?”
“하민이가 그렇게 이야기 한 건 진짜 속상했을 것 같아. 그건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도와줄게. 하지만 친구들이 너를 왕따시키고 싫어한다는 건 니 생각일까, 사실일까?”
“하지만 저 싫어해서 막 버리고 가고 그러잖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런데 진짜 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음…… 물어봐야돼요.”
“맞아, 선생님이 6교시에 확인시켜줄게. 친구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도 될까?”
윤재는 한 템포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갈까?”
“싫어요. 가면 또 걔들이랑 밥 먹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걸어갈 힘도 없단 말이에요.”
버텼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답답하기보다는 귀여웠다. 분노 폭발이 투정으로 바뀐 것이니 말이다.
“그래? 그런데 선생님은 엄청 배고픈데? 그리고 다른 친구들 밥 먹는 것도 봐줘야 해. 가자~ 선생님이랑 따로 먹으면 되지.”
하지만 윤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같이 가자~ 손 잡고 도와줄게.”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녀석은 잡지 않았다. 그래도 손을 내밀고 기다렸다. 얼굴에는 미소를 띤 채였다. 30초 쯤 지나자 슬그머니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냉큼 손을 잡았다.
“좋아, 가자~”
윤재를 부축한 채 일으켜 걷기 시작했다. 녀석은 중증 환자처럼 힘 없이 걸었다. 하지만 이내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으니. 걸어가는 중에도 끊임없이 말을 걸고 수다를 떨었다. 목소리가 평상시로 돌아왔다. 식당에 다달았을 쯤 나는 목소리를 바꾸었다.
“아, 그리고 윤재.”
나의 단호한 목소리와 어미 처리에 녀석은 눈치를 보며 내 쪽을 보았다. 나는 톤을 유지한 채 말했다.
“한 가지 앞으로 지켜줘야 하는 게 있어.”
“뭔데요?”
“어떤 상황이라도 니 몸을 아프게 하는 건 안돼.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짜증날 수 있어. 그건 나쁜 게 아냐.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으니까. 하지만 니 몸을 아프게 하는 건 선생님이 용납 못해. 니 몸은 네 것이 아냐. 만들어주신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도 있잖아. 왜 사랑하는 선생님 새끼 몸을 함부로 아프게 해!”
윤재는 묘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아무튼 너를 아프게 하는 행동은 용서 못한다, 알았어?”
“네……”
“가자~”
그렇게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기 전에 에너지를 많이 썼더니 배가 고팠다. 그래서일까? 그날 점심은 유달리 맛있었다.
매번 이렇게 대응해주면 학생들에게도, 우리 학급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어렵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볼만 하다. 익숙해지면 시간이나 에너지도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과정에 총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현재는 두 달이 더 흘렀고, 윤재는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다. 몇 번의 비슷한 과정이 더 있었고 하루에 두 세 번 씩 폭발 할 때도 있지만, 괴성을 지르거나 몸을 아프게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앞으로 또 폭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나아가는 방향이 괜찮은 방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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