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 PDC로 학급 세우기(3) - 의미 있는 역할 나누기
때는 바야흐로 전담만 하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된 2월, 온갖 기대감과 야심으로 가득 찼던 철없는 신규가 2박 3일을 꼬박 고민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청소, 어떻게 시키지?’
청소 구역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청소가 아닌데 학생들이 해야 하는 일들은 어떻게 하는지, 언제 시키고 얼마 동안 하라고 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교대에서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고민이었기에 괜시리 교대 교수님들을 한 번 더 원망하며 인디스쿨을 무작정 뒤졌더랬다. 그랬더니 유명하다는 그 분들의 방법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다른 선생님의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점심시간에 각자 자리만 후딱 시켜.”
“매일 돌아가면서 하게 해. 그래야 불평이 없지.”
“분단별로 나눠서 하면 되지.”
“마치고 책상 다 민 다음에 빡세게 해야 교실이 깨끗하지.”
별거 아닌 문제로 고민하는 내가 참 한심하기도 했지만 나름 나는 진지했다. 벌청소를 지겹도록 해서 학생들이 청소를 벌로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나름 합리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 때부터 나름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가며 일인 일역이란 걸 운영했다. 점심시간에 하기도 하고 마치고 하기도 했다. 매일 돌아가며 하기도 했고,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씩 바꾸기도 했다. 열심히 한 친구에게는 역할 선택권을 주기도 했고 경쟁이 생기면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를 시켰다.
그렇게 운영되던 일인 일역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바로 ‘일을 1/N로 나누는 것’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지시적으로 분배하든 나름 공평하게 하든 어떻게 나누느냐라는 방법의 차이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PDC의 의미 있는 역할 나누기(Meaningful Work)라는 활동을 알게 되었다.
이 활동의 핵심은 일을 떠맡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학급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고용 되어 실천한다는 것이다. 즉 수동적인 방관자를 자발적인 참여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활동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몇 번 언급했지만 PDC에서는 인간은 소속감과 자존감이 결여 되었을 때 어긋난 행동을 한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소속감은 바로 사회나 공동체에 기여하는 경험과 인정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기여의 기회를 학생들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대략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준비물 : ‘의미 있는 역할 지원서’ 파일
(지원서 포함 내용 : 역할 이름, 언제 할 것인가? 이 역할이 우리 반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역할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나의 관련 경력 // 김찬경 선생님의 틀 참조)
- 소요시간 : 약 3시간
1)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리들 찾아보기(칠판의 내용 적는 친구 1명)
2) 기왕이면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기
- 예 : 도서관 청소(책벌레집 청소), 1학년 청소 지원(출장 도우미), 각종 용구 및 청소 용구함 정리(도구 컨트롤러), 친구 격려하기 및 이동 시 줄 인솔(빨간 격려자) 등
3) 통폐합, 혹은 조정할 수 있는 역할 조정하기 + 이름 재미있게 바꾸기
4) ‘역할 지원서’ 작성 방법 안내 및 비치
5) 내일까지 지원서 적어오기(원칙 : 모든 친구들이 하나 이상 씩의 역할 맡기, 모든 역할은 우리가 해내기)
-다음 날-
1) 역할 지원서 역할 별로 분류 해놓기
2) ‘OO 친구가 XX 역할에 지원했습니다. OO 친구는 본인이 역할 지원서를 실감나게 읽어주세요.’
3) 이 친구를 역할에 임명하는 것에 동의, 반대를 눈을 감고 손으로 표시하겠습니다. OO 친구는 엎드려 주세요. 하나, 둘,셋!
4) 'AA 역할에는 두 친구가 지원했습니다. 각자의 지원서 내용을 들어 보겠습니다.‘
5)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임명해주세요.’
- 칠판의 경우 세 명이 지원했는데 한 친구가 실력을 보고 싶다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교사가 칠판 세 곳에 낙서를 한 뒤 직접 깨끗하게 지우고 정리하는 실행 오디션을 즉석에서 실시했고, 실시 후 선호도가 바뀌었다.
6) ‘이제 우리가 약속한 원칙대로 하나 이상의 역할을 모두 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역할의 수가 우리의 수보다 많기 때문에 아직 주인이 없는 역할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남은 것을 누군가가 떠안는 느낌으로 맡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역할들은 너도 나도 아닌 우리가 해내면 됩니다.’
- 지원자들이 속출해서 편하게 역할 나누기가 끝났다.
7) 의미 있는 역할 목록 작성, 지원서는 모아서 비치
8) 지원서에 적은대로 역할 실천한 후 기록표에 기록하기
의미 있는 역할 나누기에서는 역할을 직업의 개념으로 본다. 그 직업을 만드는 것부터 고용까지 모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하는 것이다. 역할을 지원하기 전에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역할을 얻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다.그리고 더욱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오디션을 통한 역할 나누기,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