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11. 선배님 가라사대
“부장님, 학부모 상담 어떻게 해야 하죠? 너무 부담스러워요.”
멋모르는 신규 시절, 학부모 상담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가급적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은데 일 년 내내 만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부모 상담에 대한 무서운 소문과 경험, 출처 모르는 사건 사고까지 듣고 나면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그 때 구세주이신 선배 교사가 천금 같은 조언을 해주신다.
“그럼, 준비 잘 해야 돼. 특히 선생님은 신규라 학부모들이 얕볼 수도 있거든. 내 말을 잘 들어~ 일단......”
비장한 표정으로 경청했던 비법들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도 여러 꿀팁들을 들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그 꿀팁들에 관한 생각이다. 과연 꿀이었는지, 독이었는지.
1. 정장을 입어라?
처음 들었던 조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정장을 입어라’는 것이었다. 교사는 다른 직종에 비해 복장 제한이 덜한 편이다. 학교 마다 편차가 있지만 ‘품위를 해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입는다. 그런데 젊은 교사들에게는 조금 더 엄격한 편이고 학부모 상담 주간에는 정장을 권한다.(필자와 주변 동기들의 경험이다.)
“네? 왜 정장을 입어야 하나요? 평소 모습이 아닌데.”
틀에 박힌 복장이나 태도를 싫어하는(그 때는 더욱 더) 나는 반문했었다. 그 때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무 애 같이 입으면 학부모들이 깔 봐.”
애 같다는 말도 놀라웠고 학부모들이 깔본다는 말도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굉장히 자유로운(?) 복장으로 다닌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잖은 반발심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10년이 넘어가면서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정장을 입으라는 조언에 대한 내 생각은 ‘No’다. 다만 선배들이 염려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경력이 되었다.
지금도 은행원이나 영업직, 의사 등 많은 직종에서 유니폼을 입는다. 왜냐하면 유니폼이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첫인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 때 복장이 큰 힘을 발휘한다.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와 의사 가운을 입었을 때 상대방이 가지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물론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는 재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교사에게는 유니폼이 없다. 선배들이 말했던 정장은 깔끔하고 품위 있는 복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 전형적인 교사에 대한 오마주. ‘복장 같은 거로 나를 재단하지마!’라는 패기도 필요하지만 굳이 복장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천하는 것은 ‘깔끔한 복장’이다. 어려보이면 어떡하냐고? 대학생 같아 보이면 어떡하냐고? 상관없다. 어린 게 사실이고 대학생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게 사실이니까. 우리는 아빠 양복을 입은 중학생에게 성숙함을 느끼지 않는다. 애써 감추거나 꾸미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게 좋다.
2. 전문 용어를 써라?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조언이 전문 용어를 쓰라는 것이었다.
“가급적 어려운 말이나 전문 용어를 사용해야해. 교수법이나 상담 기법 등에 관한 것. 그래야 학부모들이 ‘아, 어리지만 전문성 있는 교사구나.’라고 생각해서 만만하게 보지 않을 거야.”
첫 번째 조언과 달리 이 조언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내가 관심 있던 교육적 지식을 뽐내고 싶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 콜버그와 각종 교육심리학 이론들을 꼭 들먹였고, 학부모들이 나를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조언에 대한 나의 대답도 ‘No’다. 상담이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이다. 그런데 전문 용어나 어려운 표현이 소통에 도움이 될까?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말은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표정을 즐기는 것은 거기서 지적인 우월감과 성취감을 찾는 편협한 마음일 뿐이다. 즉, ‘나이는 어리지만 나는 전문가입니다. 깔보지 마세요.’라는 위협이다. 그리고 위협은 약한 쪽에서 하는 법이다. 싸움에 강한 개는 짖지 않는다고 했다.
하수는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고, 고수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한다. 학부모에게는 쉽게 말해야 한다. 교육에 관해 상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성인이면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비유, 그리고 경험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다. 가령 6학년이 세로토닌이 적게 나와 웃지 않고 이유 없이 반항 한다는 걸 설명한다면
“어머님, 저희도 돌이켜보면 사춘기 때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웃기 싫고 그런 적 있잖아요? 마음과 다르게 괜히 말도 덜하게 되고, 부모님에게 잘 웃지도 않고. 그게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시키는 거래요. 기분 좋게 해주는 물질이 60% 밖에 안 나온답니다. 그러니까 걔가 반항하고 싶거나 이상해진 게 아니라 몸이 시키는대로 충실히 하고 있는 거에요. 부모님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요. 사춘기가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니까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마음을 여유 있게 가져주시면 어떨까요?”
라고 이야기 한다.
3. 정치인 화법은 금지
상담을 하다 보면 흥분한 학부모들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감정이 격해져 쏘아붙이는 학부모는 교사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면 경험이 적은 교사들은 신중함을 잃고 감정 덩어리에 즉각 반응한다. 공격하거나, 후퇴하거나. 많은 신규 교사들은 후자를 택한다. 학부모에 맞서 평화롭게 공격을 펼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 죄송하다는 말이 모든 걸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해석되고는 한다. 그러면 학부모의 공격은 더 거세지고 상황은 악화된다. 그래서 선배 교사들은 조언 한다.
“함부로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고 하면 안 돼. 그럼 학부모들이 옳다구나 싶어서 다 덮어 씌울 거야.”
일면 타당하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정치인 화법을 이야기 하고는 한다.
“유감입니다.”
“안되셨네요.”
책임을 피하는 교묘한 화법은 정치인들의 특기다. 이 화법은 사과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본인의 발을 빼고 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책임은 피하고 당장의 공세를 넘기는 것, 그게 목표다. 그리고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교사의 화법으로는 어떨까?
“선생님, 우리 아이가 여러 친구에게 동시에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교실에서요!”
“어머 어머님, 그것 참 유감이네요.”
학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교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부모는 내 아이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의 이런 말은 아이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유감이라는 표현에 더 발끈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선생님, 유감이라고요? 남 이야기 하듯 하시네요!”
공세는 더 거세지고 교사는 결국 패닉에 빠진다. 그래서 이 조언에 대한 나의 대답도 ‘No’다. 교사에게 모호한 말은 나쁜 결과를 만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은 명확하게, 간결하게 해야 하다. 그럼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라는 말인가?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 미안해야 할지를 생각 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관계가 확인 되기 전에 학부모의 말에 미안하다고 하는 건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 사과는 사실 관계 확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경청의 방법을 통해 마음을 읽고 들어주는 게 먼저다. 가급적 사실 관계에 대한 논쟁은 피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의 대화로 이끄는 것이 좋다.
“어머님, 잠시 저에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님이 궁금하신 것에 대해 저도 명확히 알지 못하니 정확한 답을 드리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네요. 제가 정확히 알아보고 다시 전화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경청과 공감이 이루어졌다면 대부분 이 제안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대화를 어떻게 이끌지 정리한 후 다시 학부모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사가 미안해야 하는 건 뭘까? 사실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교사 본인의 책임이 크지 않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 현 상황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는 게 옳을 듯하다.
“어머님, 아무튼 이런 일이 생겨 어머님과 여러 사람 마음이 불편하게 되어 저도 안타깝습니다. 담임으로써 조금 더 잘 돌볼 수 있었을텐데,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사실 관계를 정리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감정까지 보살핀 뒤, 도의적인 미안함을 이야기하는 교사는 학부모에게 신뢰를 줄 가능성이 크다.
4. 선배와 다른 나의 방법
선배 교사들의 조언은 가치롭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방법이 모든 상황,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대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 하라는 게 아니다. 가치 있는 조언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맞게 변형, 결합, 응용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 나의 것이 되어 학부모 상담을 수월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