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화를 만나다]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여기, 교육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그 자체라고 자부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소위 최고의 교육을 펼친다는 학교와 일탈 그 자체인 남자의 불편한 앙상블로 시작되는 영화, [스쿨 오브 락]입니다.
실력이 없어 삼류 밴드에서도 잘린 채 친구의 집에 빌붙어 사는 뮤지션 듀이는 우연히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구한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는 돈이 무척 궁했기에 친구인 척 연기를 하고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 자체의 플롯은 단순하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만 피폐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괴팍하지만 열정적인 교사를 만나면서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플롯을 가진 성장물은 참 많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그렇고
[시스터 액트2]가 그렇고
[짱]이 그렇고
[G.T.O]가 그렇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감동을 받고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지만 한 편으로는 거부감도 생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명확한 한계 때문이다. 이런 성장물의 공통점은 영웅적인 한 교사가 학생들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 교사는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말하며 화려한 실력과 과거를 가지고 있고 학생들의 거친 반항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아이들을 위해 관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화려하고 멋지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어.’라는 자괴감을 낳기도 한다. 이런 성장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힘 1. ‘모두’ 앞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최고 수준의 사립 초등학교에 다닌다. 부모의 든든한 지원 아래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 받지만 모두 한 가지 씩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부모에게 꿈을 강요받지만 저항하지 못하는 아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찍힌 문제아, 뚱뚱해서 놀림 받는 아이, 특이한 성향을 가진 아이, 경쟁과 성과에 매몰된 아이, 왕따 등. 이 아이들이 영화 속에서 음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흔히 성장물은 공동의 위기와 갈등을 제시한 뒤 이를 극복하면서 ‘모두 행복했다’ 식의 거친 행복 스케치를 쏟아내는데 이 영화에서는 각자가 가진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제시된 학생들 개인이 가지는 어려움들은 우리 아이들이 현실 속에서 가질만한 어려움들 그 자체이며, 영화를 통해 아이들은 어느 한 캐릭터에 감정을 몰입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힘 2. 아이고, 배야!
바쁜 교육과정 속에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 ‘교육적이고 훌륭한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이 감동 받겠지?’라고 기대하고 재생하는 순간 아이들은
이럴 때는 정말 열 받는다. ‘내가 어떻게 준비한 건데!’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걱정이 필요 없다. 의미 있는데 재밌기까지 하다. 그것도 심하게 재미있다. 지금까지 10회 이상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줬지만 한 번도 빵빵 터지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도 거창한 교육적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재밌기 때문이었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재밌는지 아느냐?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잭 블랙이니까.
동네 백수 같이 생겨서 단순히 웃길 것만 같은데 알고 보면 뼛속까지 연기파 배우이자
실제 밴드를 운영하는 수준급 뮤지션인 이 남자는 영화의 재미를 보장한다.
영화의 힘 3. 영리하게 현실적인
[G.T.O]를 좋아해서 수십 번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니츠카 같은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있으면 좋겠다.’
교대를 가고 나서도 몇 번을 더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니츠카와 똑같이 되기는 힘들겠어. 하지만 비슷한 교사가 되어야지.’
발령을 받고 또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오니츠카는 현실 속에 있을 수 없구나.’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물론 듀이의 모습도 현실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악기를 교육과정에 개의치 않고 가르치고
당당하게 교장 선생님께 데이트를 요청하며
교장 선생님 허락 없이 현장 학습(?)을 강행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리하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묘한 접점을 만들어 낸다.
결국 역경을 딛고 밴드 대회에 출전한 스쿨 오브 락 팀은 최고의 무대를 펼치며 갈채를 받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 팀이 우승을 하며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이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스쿨 오브 락은 우승하지 못하고 듀이는 좌절한다. 그러나 실망한 듀이를 아이들이 위로하며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육적 메시지를 날린다.
[기운내요. 락은 100점을 받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그 뒤 방과 후 음악 강사로 활약하는 듀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또 하나 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 넣는 캐릭터는 바로 교장이다.
여느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반대하는 캐릭터들은 교육의 경직성 그 자체를 단편적으로 상징한다. 보수적인 교육관으로 똘똘 뭉쳐 선을 넘는 주인공을 저지하고 방해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 교장은 다르다. 물론 행정 전문가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저지하고 충돌한다. 그러나 이 사람도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과 교육자로서의 이상 속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는 모든 교사의 모습일 것이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지만 사고가 날까 두려운, 교과서를 넘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항의 받을까 조심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교장의 변화와 성장이 맥락 없는 개과천선이 아니라 우리에게 길의 자락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들은 날 싫어해요. 미워한다고요!]
영화의 힘 4. 프로젝트 학습이란 이런 것!
많은 선생님들이 프로젝트 학습을 활용하신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프로젝트 학습을 지향하는 ‘조사 발표 과제’로 전락한다.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학습자의 자발성의 유무이다. 왜 프로젝트 학습을 해야 하는지, 뭐가 좋은지, 재미있는지에 대해 학생들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교사가 강제 캐리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 영화가 적절하다. 영화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선생님, 우릴도 저런 거 해요!’
라고 먼저 아우성을 친다. 그러면
‘좋지, 그런데 선생님은 음악을 못해서 저런 영화 속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고 저거 비슷하게 다른 걸 해볼까?’
라는 말로 유혹한다. 그럼 학생들은 설탕을 본 파리처럼 빨려 들어오게 되어있다. 프로젝트 학습 입문, 성공이다.
영화의 힘 5.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고딩 때 크러쉬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에 빠져 살았다. 거친 음성으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가사를 열 번 넘게 반복하며 돌직구를 날리는 데 거부할 수 없었다. 이런 성장물들이 공통적으로 관객들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뭡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 질문을 잊은 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원하는 걸 강요당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펀치 라인이다. 영화가 끝난 뒤 잠시 텀을 주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진짜 원하는 게 뭐니? 그걸 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