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2. 시작은 입을 닫는 것부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이 명언은 비단 언어 철학, 분석 철학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도 일종의 언어라고 한 그의 말처럼 언어는 삶을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언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만 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SNS, 인터넷 등 다양한 언로가 생기고 그로 인해 ‘말의 잔치’라고 칭할 만큼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공간적 제약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자신의 말을 전할 수 있으며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취사선별이라는 고급 능력을 강요당하고 있다. 말의 공식적인 활동 무대가 넓어지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멋지게 말을 할까에 대한 고민들이 난무하는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가 아닌 ‘말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 고뇌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더욱 가치 있게 빛나고 있다.
1. 말이 너무 많아요
이번 시즌에는 교사가 학생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입을 닫으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이야기 같다. 과연 그럴까?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말을 수려하게 잘 하는 것?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상대를 내 생각대로 설득하는 것?
나는 ‘때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여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들어야 할 순간에 듣고 말해야 할 순간에 말하며, 필요할 때 상대가 말할 수 있게 이끄는 능력, 그게 바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이루어지려면 먼저 말을 줄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대화, 특히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는 지나치게 많은 교사의 말에서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말의 양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들어야 할 순간에, 혹은 하지 않아도 될 ‘타이밍을 잘못 잡은 말’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어김없이 힘든 결과를 불러온다.
2. 과제 분리
여기까지 읽고 나면 교사는 억울하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이 많다고 그래? 그리고 나도 피곤해서 말 많이 하기 싫어. 하지만 학생들이 제대로 못하니 어쩔 수 없잖아?’
한 사람의 교사로써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교사가 학생들이 잘못되기를 바라거나 힘들게 하고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하는 따뜻한 마음이고 정성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 때문에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금이 간다. 바로 ‘과제분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과제분리란 심리학자 아들러가 제시한 개념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야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제란 인간이 태어나 겪어야 할 생활과제를 의미하는데 크게 일, 사랑, 우정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과제를 지니는데 문제는 타인의 과제를 자신으로부터 분리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처럼 다루게 되는데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구분하느냐? 결과의 영향과 책임을 누가 지는 지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학생이 규칙을 어기고 아침에 지각을 했다. 그럼 이건 누구의 과제일까?
그렇다. 학생의 과제이다. 지각에 대한 결과도, 책임도 학생이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은 이럴 경우 자신의 과제로 끌어 온다. ‘너는 지각을 하지 말아야지, 왜 지각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그 과제에 발을 들이게 되며 화가 나고 안타까운 감정이 생긴다. 그럼 이 감정적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 교사 자신이 그 학생이 지각을 안 하게 만들려고 시도 한다. 그 순간 교사는 과제 분리에 실패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아니, 걔가 지각을 하면 나도 영향을 받아서 기분이 나빠지는데 이게 어떻게 오롯이 학생의 과제일까? 그리고 지각을 계속 하는 걸 관리자가 보고 내가 학급살이를 제대로 못한다고 비판하면 나는 어떡해?’
충분히 공감한다. 교실이란 밀착된 공동체에서 서로 수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교실을 이끌어야 할 교사의 책임감을 생각하면 과제분리라는 것이 지나치게 냉정한 판단을 요구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되묻고 싶다. ‘그 일의 결과와 영향,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상황을 정밀하게 나누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위의 예시로 설명하자면 우선 ‘지각을 하는 행동’이 있다. 그에 따르는 논리적 결과(지각을 할 경우 하기로 되어 있는 규칙, 혹은 약속) 혹은 자연적 결과(아침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는 학생의 몫이다. 교사가 고려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지각을 하는 행동’ => ‘교사의 기분이 나빠짐’ or ‘관리자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음’
뒤의 부분은 앞의 행동 자연적, 논리적 결과가 아니다. 과제를 분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별개의 ‘선택’이다. 모든 교사가 학생이 지각을 할 경우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로부터 무조건 나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사는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감정이란 나를 유지하는 항상성 시스템이 필요해 의해 만들어내는 선택과 해석이다.(이 부분은 별개의 글에서 다루겠다.)
또 하나의 설명은 지각을 하는 행동과 교사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별개의 과제라는 것이다. 앞의 것은 학생이 책임을 지고 과제를 해결해야 하고 뒤의 것은 당사자인 교사가 책임지고 자신의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내 과제가 너의 과제 때문에 발생했잖아.’라는 인과론적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면 문제 해결은 점차 복잡해지고 관계는 어려워진다.
3. 과제 분리를 못하면
과제 분리에 실패하는 순간 교사는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은’, 혹은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쉬운 말로 ‘잔소리’라고 부른다. 잔소리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자체에 대해 좋고 나쁨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잔소리는 다만 비효과적일 뿐이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는 데에도, 관계를 좋게 만드는 데에도 효과가 적다. 아니, 가끔은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잔소리는 가능한 줄여야 하고, 잔소리를 줄이려면 과제 분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설명이 장황하고 어려웠는데 다음의 영상을 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더 쉽게 전달될 것 같다.
한국 엄마 VS 영국 엄마
https://www.youtube.com/watch?v=RiQTdP7M1Ug
4. 오해는 마시길
여기 까지 보면 또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럼 아이들이 제대로 하건 못하건 교사의 과제가 아니니 무조건 방치하라는 건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과제 분리를 하는데 생기는 불편함과 과제 분리 후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음 글에서 이 부분, 그리고 과제 분리가 안 되어서 학생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교사의 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