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6. 입을 떼야만 대화는 아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말해야만 알 수 있는 마음은 말해도 알 수 없어.”
로맨틱한 소설의 한 장면이다. 사소한 오해로 비극을 만들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숭고한 사랑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아름답다. 낭만적이다. 하지만 답답하다.
우리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책과 매체들이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 한다. 역사상 가장 발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가 지금이다. 낭만과 이상을 접어두면 그러하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학부모와의 소통을 생각해보자. 학부모와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기회 자체가 적다. 대화라는 게 만나야 이루어지는데 만날 기회가 없다. 또한 소통에 대해 양측 모두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학부모는 교사가 어렵고 교사는 학부모가 껄끄럽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굳이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는 불통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관계가 특수하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소통은 결국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힘을 발휘한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학부모와 대화해야 할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남북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 내어 칭송을 받았다. 나는 거기에 힌트가 있다고 본다. 최근 몇 년 사이 남한과 북한 만큼 불통의 표본이 될만한 사례가 있을까? 하지만 그 냉기를 뒤집은 건 문재인 대통령의 용단이었다. 재지 않고 먼저 다가가는 용기 말이다. 상대가 나에게 내가 기대하는 수준의 대화를 걸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대화가 결국 양측이 하는 게임이라면 한쪽의 대승적인 개방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상대에게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열면 된다. 나를 보여주고 나를 설명하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본인에 대한, 교실에 대한 이야기를 학부모들에게 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회의감과 괜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는 자기노출이 먼저 이루어져야 상대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자기 노출이 가지는 힘은 명확하다. 사람은 상대에 대해 모르면 추측을 하게 된다. 추측은 오해를 낳고 결국 불신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를, 마음을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제한적 현실에서 교사는 어떻게 학부모에게 자기 노출을 할 수 있을까?
1. 교사 편지
편지는 가장 오래된 소통의 도구이다. 첨단 기기들의 홍수 속에서도 편지가 가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강력하다. 그래서 3월 첫 날 학부모에게 편지를 쓴다. 학생들도 교사가 낯설지만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편지는 그 지점을 공략한다. 교사가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일 년 동안 학급을 어떻게 꾸리고 싶은지, 당부하는 말과 반가움을 담는다. 물론 손편지가 제일 좋겠지만 그건 너무 수고스럽다. 그래서 나는 출력한 편지를 예쁜 편지봉투에 담아 보낸다.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 마다 편지를 보낸다. 주요 행사가 있거나 당부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안내가 필요할 때 주로 활용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 달에 하나 정도는 보낸다. 학부모들이 안내장과는 다른 마음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
2. 소통의 플랫폼 활용
학교에 입학하면 학부모들이 아쉬워 하는 부분이 있다. 자녀가 오늘 어떻게 학교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선생님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정리해서 어플이나 SNS 등을 통해 알려준다. 물론 초등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학생의 수, 수업의 특성(유희와 다른) 등 때문이다. 그래도 자녀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한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걸 충족시켜줄 수 있는 플랫폼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예전에는 학급 홈페이지가 유행했고 요즘은 밴드, 어플(클래XX 등)이 대세다.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푸쉬 알림도 받고 사진, 글을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은 강력한 소통의 플랫폼이 된다. 하루에 몇 컷 정도의 사진과 간단한 활동 내용만 공유해도 학부모들은 안심한다. 노력 대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학급 신문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급에서 있었던 일, 활동, 수업 내용 등을 정리해서 보낸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소감을 받는 것이다. 어플을 통한 것보다 심도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습 결과물도 확인 받을 수 있고 학급 살이 전반을 이해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매달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한 번 포멧을 마련해두면 시간도 줄일 수 있다.
3. 학습 결과물 공유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머지 하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후자가 개별 소통이나 상담 등을 통해 충족시켜야 한다면 전자는 학습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습 결과물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교과서 문제 풀이일 수도 있고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일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프로젝트 학습을 통한 결과물을 공유하면 좋다. 이건 교사의 스타일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프로젝트 결과물로 주로 영상을 만든다. 유튜브에 올린 뒤 링크로 공유만 하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 결과물을 공유한다는 게 ‘자녀가 이 부분을 안 했으니 혼내주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노력하고 이런 수업을 하고 있어요.’라는 좋은 안내가 된다면 학부모들은 교사의 수업을 신뢰할 것이다.
4. 랜덤 문자 / 전화
“잘 지내?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봤어.”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이런 연락을 받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목적 없는 안부 연락은 이 사람이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준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담임 교사에게서 연락이 오면 ‘우리 애가 뭘 잘못 했나? 무슨 일이 있나?’라는 불안감이 먼저 올라 온다. 하지만 그 때
“오늘 OO이가 수업 시간에 정말 열심히 해줘서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연락 해봤어요.”
“상담 때 뵙고 얼굴을 못 뵈었잖아요.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나서 연락 했습니다.”
라고 하면 어떨까? 처음에는 어색하고 ‘다른 이유가 있나?’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국은 ‘선생님이 나도 신경 써주시는구나.’라고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작위로 1~2주에 하나 정도 연락을 한다. 그럼 반응이 생각보다 좋다. 다음 글에서 다루겠지만 비공식적인, 친교적 대화가 소통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5. 경제성, 합리성, 그리고 진정성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지금은 ‘감정’의 매력에 빠져 있지만 타고나기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 왔다. 그래서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에 손익을 따져 보는 스타일이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도덕적으로 ‘그렇게 해야하기에’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위와 같은 시도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학부모에게 하는 자기 노출은 일종의 보험과 같다. ‘결국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관계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그래서 호의가 있고 신뢰하는 대상에게는 많은 것을 허용하고 이해한다. 자기 노출은 이 신뢰를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적은 돈(노력)을 들여 평소에 만들어두면 혹시나 큰 일이 터졌을 때 원만하고 효과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예방 주사처럼 아프기 전에 적은 노력으로 관계 유지와 상생을 돕는 것이다. 노력 대비 효과 측면에서 경제적이다.
또한 합리적이다. 교육 수요자와 제공자의 측면에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수요자로부터 불필요한 공격이나 오해를 받지 않는 것도 타당하고 이치에 맞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교사의 자기노출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것은 진정성이다. 단순히 테크닉으로 접근한다면 결국 한계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학부모는 교사의 자기노출 외에 자녀로부터 교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둘이 불일치가 생기면 학부모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학부모를 존중하고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방법은 효과를 증폭시키는 도구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교사와 학부모가 적이 아닌 동반자의 역할에 다다를 수 있게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