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6. 기다림이 진짜 대화를 만든다.
사진이나 영상의 기초에 ‘룸(room)’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쉽게 말하면 샷에서 일정부분 차지하는 ‘공백’을 의미하는데 안정적인 구도를 위해 꽤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머리 위의 공간을 ‘헤드룸’, 시선 앞 공간을 ‘루킹룸’, 이동하는 방향의 앞 공간을 ‘리드룸’이라고 한다. 룸이 부족하면 구도가 불안해지고 속된 말로 샷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샷에서 주연이라고 할 수 있을 피사체와 프레임이 아니라 조연인 룸이 샷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다.
부족한 루킹룸
충분한 루킹룸
1. 신속함이 정답은 아니다.
회의 때 안내할 자료를 정리해 회의에 참여하려 자리에서 일어나는 참이었다. 앞을 보니 두 녀석이 다투고 있다.
“무슨 일이야?”
“얘가 제 뒷담화를 했어요!”
“아니에요. 저는 뒷담화 한 적 없어요. 쟤가 괜히 그러는 거에요.”
잠시 이야기를 들어봐도 명확한 결론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 당신의 선택은?
교실에서 문제나 갈등이 발생하면 많은 교사들은 즉각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교실에서 많은 부분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교사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 장면을 살펴보다 보면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왜 교사들은 신속한 문제 해결에 집착하는 걸까?
우선 문제나 갈등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문제나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교사들은 더 문제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사실 문제나 갈등 자체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없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얽힌 개인의 경험이 좋고 나쁠 뿐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대부분 학창 시절 비교적 문제 상황을 많이 만들지 않으며 성장 해왔다.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다 = 해결해야 하는 옳지 않은 상태’라는 등식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주는 에너지의 진동이 감정적 불편함을 선물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불안감이다. 문제나 갈등을 그대로 둘 경우(실제로 얼마 방치하지도 못하지만) 더 커질까봐 불안해한다. 그리고 주변으로 번져 다른 학생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상상한다. 마치 산불이 난 뒷산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랄까? 그러다 보니 조기 진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2. 서두르면 그르치기 쉽다.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제한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이 찾는 방법은 ‘힘’이다. 물리적인 힘도 해결되지만 이 경우에는 관계적인 힘이 더 자주 작용한다.
“둘 다 잘못했으니까 각자 반성하고 얼른 사과해. 너부터 사과하고 그 다음에는 니 차례야.”
다음은 논리적 해결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교사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세워 학생들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 니가 얘한테 먼저 OOO라고 했다는 이야기잖아. 그렇지? 그럼 너라면 기분 나쁘겠니, 안 나쁘겠니? 물론 얘도 잘못했지만 니가 한 건 뒷담화잖아. 그러니까 니가 먼저 사과를 하는 게 맞지. 그렇지?”
세 번째는 달래기이다. 악역을 맞지 않고 일단 상황을 종료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너네 답지 않게 왜 그래? 너희 착하잖아. 싸우지 말고 서로 잘 지내, 알았지?”
이 세 가지 방법은 모두 ‘문제를 해결한다’는 가면을 쓰고 ‘입을 다물게 한다.’를 향해 달려 간다.
3. 기다려야 프로다.
이처럼 외적인 행동 통제가 아니라 내적 변화를 이끌려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교사가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상황이면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조금의 애매함이나 난처함이 있다면 일단 멈추는 게 좋다. 교사는 교실에서 힘의 우위를 점한 존재이기에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하거나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알아차려야 한다. 현재의 상황, 나의 감정,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유체이탈처럼 밖에 서서 나를 쳐다 보는 것이다.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공감 능력도 있어야 하고 관찰력과 자기 이해도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명상이나 심리 프로그램은 ‘알아차림’ 단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꾸준히 연습해야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
다음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공백을 만든다. 시간의 공백, 공간의 공백, 그리고 감정의 공백 등. 그 공백이 있어야 문제 상황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면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사진에서 헤드룸, 루킹룸, 미러룸이 없다면 프레임에 붙은 기괴한 피사체가 존재할 뿐이다.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음 쉬는 시간에 다시 이야기 해보는 게 어떨까?”
“선생님도 지금 흥분한 것 같아. 내일 아침 8시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 해보자.”
문제 장면에서 바로 해결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은 교사가 솔로몬의 레벨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학생들에게는 이 기다림이 어떻게 다가갈까? 패퇴로 해석되어 자신들의 승리라고 우쭐하게 될까? 많은 경우 대화를 해본 결과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숨을 돌리고 생각을 정리할 공백이 필요했다. 기다림은 어렵지만 효과적이며 근본적이다.
4. 오해는 마시길
물론 모든 문제 상황에서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진격해야 할 때도 있고 무모하게 부딪혀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우리는 기다림보다는 진격에 익숙하기에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
또한 기다림은 방치나 회피와는 다르다. 문제 장면을 벗어난 뒤 숨과 생각을 고르고 나면 꼭 다시 문제 해결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그것도 벗어날 때 약속한 그 시간에 말이다. 어영부영 넘어가버리면 그건 기다림이 아니라 교사의 전장 이탈에 불과하며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했다. 세 번까지는 아니라도 한 번 잘 기다려 슬기롭게 문제 해결을 돕는 교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