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 라온제나 6기 헤집기 2탄(수업과 학급운영편)
새롭고 퐌타스튁한 한 해를 위해 한 번 더 가져보는 자아성찰 및 모두까기의 시간.
이번에는 수업과 학급 운영 면에서 라온제나 6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사실 TET나 PDC와 겹치는 부분도 많고 광범위하기에 기억에 남을만한 것 세 가지 씩만 추려보자.
[좋았던 점]
Point 1. Brand New 재구성 프로젝트
6학년을 자주 하다 보니 비슷한 재구성을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업 내용이나 프로젝트도 비슷하다. 편하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지만 아쉬운 건 새로움이 덜하다는 것이다.(아마 내가 게을러서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좀 했다. 재구성의 고수들이 보기에는 아주 우습겠지만 영상 매체(특히 영화)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몇 개 시도한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성취 수준에 대한 학부모, 학생들의 이해와 결정적으로 교사별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가 수업과 동떨어지지 않다 보니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우리 반 국어 시험에는 [빅 미러클]의 장면에서 인물의 성격을 분석하는 문제가 나왔고 [스쿨 오브 락]에서 인물의 성장 과정에 대해 서술하는 문제가 나왔다. ‘국어 교과서 속 작품이 꼭 학습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닌데 다루지 않아도 될까?’라는 망설임이 조금 있었지만 아침 독서 시간 등을 활용해 접하게 함으로써 해결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다.
“우리 반 시험 문제는 문제집이나 학원에 없어서 나중에 공부하기 어려워요!”
라는 불평도 나왔지만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집중해^^”
라는 쿨한 답변으로 넘겨버렸다. 몇 년 째 나는 학원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교사 1순위다.
Point 2. 사회적 이슈에 대한 현실 참여적 수업
교사는 정치적, 종교적 사안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사회의 현실을 몰랐으면 하는 사람들은 이걸 교사가 사회 현상에 관한 수업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포장해서 들이민다. 중립의 의무란다. 맞다. 하지만 참여를 해야 중립이고 편향이고도 있는 것 아닌가? 언어도단이다.
나는 평소에도 잘 그러지만 올해는 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수업들을 했다. 다만 나의 가치관이 맹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스며들지 않도록 최대한 강의식 수업 보다는 토론, 발표 등 참여형 수업으로 이끌었다. 중요하게 다루었던 이슈는 ‘삼권분립’, ‘위안부 문제’, ‘국정 교과서’, ‘인권’, ‘노동개혁법’, ‘차별’, ‘한국 전쟁’, ‘친일파’ 등이었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는 한일협정 조약 내용까지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학생들이 수준 높은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해 흥미로웠다. 거기다 얼마 뒤 한국 정부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상’이 터지면서 무척 뜨거운 열기가 교실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어렵지 않을까? 아니다. 의외로 학생들은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다만 어려운 말, 딱딱한 내용으로 설명하다 보니 졸린 것이다. 사회 교과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니 말이다. 교사로서 위험하지 않을까? 다행히 지금까지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다.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도 학생과 똑같이 한 사람으로서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확신만 가지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학생들이 증명해준다.
(장면1)
(2년 전에 졸업한 우리 반 학생) “선생님, 선생님께서 교사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희 담임선생님은 시위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나쁜 거라고, 그거에 관해서 조사하고 발표하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다른 생각을 써도 되냐니까 안 된대요. 어이가 없어요.”
(장면2)
(삼권분립 수업 후 우리 반 학생) “쌤, 삼권분립은 국회랑 정부랑 힘이 똑같은 거 아니에요?”
“맞지.”
“그런대 왜 대통령이 국회의원들한테 뭐라고 해요?, 우리나라 삼권분립 아니에요?”
“...;;;”
Point 3. 교사의 욕심 버리기
참신하고 유익한 시도를 하고 그걸 지속할 때 교사로서 많이 빠지는 딜레마가 있다.
‘좋은 의도인데 억지로라도 경험하게 해야 하나?’
일기가 그렇고 글쓰기가 그렇고 플래너나 복습이 그렇다. 얼마나 학생들에게 유익한지 알기에 기왕이면 학생들이 멋지게 해냈으면 좋겠는데 이놈들은 자주 빼먹고 미루고 어떻게든 안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본질을 벗어나 ‘한다, 안 한다’로 기싸움을 벌이기 마련이다. 만일 학예회 때 학습 결과물 전시라도 하라고 하면 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제법 잘 버렸다. 교사인 나의 욕심을. 특히 매년 뜨거운 감자였던 복습 노트에 대한 욕심을 다루는 데 성공(?)했다. 복습 노트를 시작하기 전에 깊이 고민했다. ‘내가 이 노트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바라나?’. 그에 대한 답을 찾자 길이 보였다. 우선 시작할 때 결코 검사를 해서 복습 노트를 쓰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주거나 혼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이런 이런 도움이 되니(이건 수업으로 두 시간 했다.) 너희들이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직접 복습노트를 확인하며 피드백을 해주고 원칙을 지켰다. 하루에 어떤 과목을 복습 노트에 쓰면 좋을지 추천도 했다. 그리고 2학기 때부터는 완전한 자율로 운영했다. 작성부터 복습, 확인 도장 찍기 등 모두 학생들 스스로 했다. 나는 가끔 격려를 하고 잘 작성하는 요령을 더 알려주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내심 불안했다. ‘이러다 한 명도 안 쓰면 어떡하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지금 학생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복습노트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함을 느끼고 중, 고등학교에 가서도 활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자 의외로 적지 않은 학생들이 복습노트를 꾸준히 작성했고 활용했다. 그리고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학생보다 복습노트를 잘 활용하는 학생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보며(이건 내 시험 문제의 특성도 한몫했지만) 더 자극 받는 것 같았다.
[아쉬운 점]
Point 1. 에너지 분배 실패
우리는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어쩌면
7월
9월
12월
이걸 반복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름 에너지를 분배하려고 노력했는데 올해도 실패한 것 같다. 특히 올해는 책 집필, 외부 강의, 공부 모임, 출산 및 육아 등 교실 밖 활동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더 에너지가 빨리 소모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장 꺼려하는 학생을 맞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걸 하면서도 나는 수업 준비, 일, 학급 운영을 완벽하게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최면은 우주 밖으로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학급 프로젝트 중 한 달에 한 번 씩 하는 일 년 짜리 프로젝트 두 개를 사상 최초로 한 학기만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매달 발간하던 ‘월간 라온제나’도 2학기에는 줄이게 되었다. 교사로서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뱉은 말 못 지키는 놈이 된 것이다. 학습 부진 학생 지도를 거의 손 놓다시피 했고 수업 속 새로움을 생각해내는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못하고, 음식을 못하니 배가 또 고픈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문제가 있다. 교사의 욕심을 줄이거나 워렌 버핏의 말처럼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답이 없지 싶다. 고민해야겠다.
Point 2. 학폭, 그 이후
처음으로 학폭을 직접 경험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출산휴가로 자리에 없을 때 일어난 일이니 내 탓이 아니라고 위로했지만 그 장면을 만든 것은 우리 반의 수많은 시간들이기에 엄연히 내 문제였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참 많은 걸 느꼈다. 개인적으로 학폭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글에서 다룰 생각이다. 아무튼 학폭으로 인해 학급 전체가 꽤 큰 타격을 입었다. 맞은 상처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가 여기저기에 자리 잡았다. 1학기 때 이룬 성장을 기반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학생들이 스스로 창조해내야 할 시기에 상처 치유에 몰두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상처를 이겨냈지만 이미 생긴 생채기는 흉터가 되어 딱지로 남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심에 서야 했던 내가 지쳐 버렸다. 부정할 수 없이 나는 방전 되었다. 가치관, 가정교육, 교육 방법, 믿음과 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슬펐다. 결론적으로 교사로서 나는 한 뼘 더 성장했지만 그러기 위해 지불한 시간이 너무 아팠다.
Point 3. 미흡했던 수업 준비
수업 준비에 미흡했다. 수업을 재구성한다는 미명 하에 개별 수업의 디테일에 대한 고민을 적게 했다. 디자인만 해 놓고 바느질을 하지 않은 디자이너라고 할까? 포인트 1과도 이어지는데 에너지가 부족하기도 했고 권태에 빠진 면도 있는 것 같다. 과학 시간이 되어 ‘이번 시간에는 무슨 실험이지?’라고 책을 뒤적이는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수업의 장점들(TGT 게임, 암호문, 라온제나 드라마,이배아모, 협동학습, 토론 학습 등)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수업보다 내실이 탄탄한 수업이 되어야 한다.기본은 재주를 이긴다. 알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F학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