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8. 한 발 더 수평적으로 대화하기
앞의 글에서 말을 할 때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내용을 능숙하게 잘 지킨다면 학생들에게 상당히 편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부터는 한 발 더 나가볼까 한다. 거슬림 없는 대화를 넘어 수평적 대화로 향해보자.
1. 말이 안 통해요.
고학년 담임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학년 학생, 학부모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공통된 반응이 있다.
“우리 엄마는 진짜 말이 안 통해요.”
“제 아들이지만 어쩜 그렇게 말을 안 듣나 모르겠어요.”
저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럴 때면 교사로서 참 난감하다. 왜 그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할까? 말이 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벽창호라는 말이 있다. 본래 벽창우(碧昌牛)였는데 이는 평안북도의 벽동군과 창성군을 뜻한다. 벽동과 창성의 소가 덩치가 크고 성질이 억세다는 뜻으로써 현재는 고집이 세고 우둔하며 고지식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상대가 벽창호 같다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국어학자들은 말이나 글을 목적에 따라 분류한다. 친교적 말하기, 설명하는 말하기, 설득하는 말하기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나의 말이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나아가 상대가 눈에 보이는 생각, 행동의 변화를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럴 의도가 없다고? 그렇다면 본인을 꾸미고 있거나 자신의 욕구에 귀를 잘 기울이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성적 대화의 표본이라고 할 맞장구조차 ‘상대의 감정 온도가 내려가고, 나아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면 좋겠다.’는 욕구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희박할 때 ‘말이 안 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대화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부모와 교사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바르고 안전한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그걸 위해 대화를 한다. 그런데 아이는(학생은) 점점 그 길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스스로 길을 만들거나 그 길을 거부한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와 교사에게 벽창호가 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과제분리를 하지도 못한 채 통하지 않는 대화 속에서 힘들어 한다.
그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과연 학생들에게 교사는 벽창호일까, 아닐까? 교사는 학생과의 대화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나? 양쪽의 생각이 서로에게 똑같은 무게로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수평적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수평적 대화라고 부른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수평적으로 대화하고 있을까?
2. 부탁은 지시가 아니다.
쉬는 시간, 급한 공문을 처리하는데 카메라를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바쁜 교사는 앞에 있는 학생에게 말한다.
“OO아, 6학년 2반에 이 카메라 좀 가져다 드릴래?”
그 때 OO이가 대답한다.
“저 지금 공기놀이 중이라 싫은데요.”
이 상황에서 교사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품게 될까? 조금 더 상황을 꾸며보자.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가기 싫어요.”
많은 교사들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거절당했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고 학생의 표정이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의 말하기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녀오라면 다녀 와.”
“선생님이 부탁하는데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라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은 억울하다. 거절할 수 있으니 부탁이고 거절할 수 없다면 명령이나 지시다. 그런데 부탁을 거절했다고 혼이 난다. 교사는 사실 부탁을 한 게 아니라 지시를 한 것이다. 다만 ‘나는 학생에게도 부탁을 하는 배려심 있는 교사다.’라는 자기만족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의도는 용감한 학생의 반응에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부탁하기는 수평적 대화의 좋은 예이다. 부탁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예의를 갖추어 실천 가능한 것을 부탁하면 된다. 다만 부탁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듣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부탁했으니 너는 해야해.’라는 생각은 힘의 차이를 전제로 했을 때만 생긴다.
그래서 교사는 현명하게 노력해야 한다. 가급적 명령이나 지시보다는 부탁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거절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같이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부탁을 하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부탁을 해서 거절당할 수도 있는 것’과 ‘꼭 지켜져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후자는 지시해야 하고 굳건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적고 학생들이 더 잘 받아들이게 된다.
3.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KBS에서 방영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싫어한다. 재미없이 반복되는 포맷에 상술로 가득한 내용도 싫지만 부모에게 모든 것을 해내고 책임지는 슈퍼맨 프레임을 들이대는 것이 가장 못마땅하다. 물론 상황이 다르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2~3살의 아기들에게 부모는 정말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이 육아 전반으로 확장되어 ‘부모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해내고 희생해야 한다.’는 성직관적 프레임을 일반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교사는 학생에 비해 경험적, 능력적으로 우위에 있다.(능력을 가능성의 범주에서 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거기에 책임감과 의무를 더하니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학생들의 실수는 나의 실수고 학생들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해주지 않으면 학생은 위험천만한 세상에 어린 양처럼 놓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야 말로 착각이다. 우리 딸은 만 22개월인데도 들고 먹기에 큰 빵을 주면 어떤 방법으로든 먹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묻지 않고 빵을 잘라서 주면 싫다며 땡깡을 부린다. 하물며 100개월이 훨씬 넘은 학생들이야 오죽하랴? 자신에게 ‘가장 올바른 결정’을 교사가 해버리니 학생들은 답답하고 화가 난다. 아니면 퇴보해버린다.
문제해결법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질문한다.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서 난감한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럼 내가 하는 질문은 이거다.
“혹시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 보셨나요?”
“......”
본인의 문제에 가장 진지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학생 자신이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신이 아닌 교사가 모든 걸 해결해줄 필요도 없고, 해줄 수도 없다.
“선생님, OO이가 자꾸 제 물을 허락 없이 마셔서 열받아요!”
“저런, 속상하겠다.”
“네, 엄청 속상해요.”
“( )”
괄호 안의 답을 눈치 챘는가? 내가 생각하는 답은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니?”
이다.
물론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교사의 의견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교사가 제시하는 것과 학생이 고민한 뒤 교사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도움을 청했더니 교사가 도와준다.’ 이보다 더 수평적인 구조의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모든 해결을 학생에게 전가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교사는 어른으로서 적절한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 받았을 때 제시해준다면 진정한 슈퍼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변화하고 있어요.
아쉽게도 학생들은 교사와 수직적으로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그래서 ‘범생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숨긴 채 교사의 지시에 따르고, ‘삐딱이’들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로 표현한다. 그렇게 우리는 수직적 대화로 ‘착한 학생’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학생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문화로 자리 잡게 하려면 교사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수평적 대화가 문화로 자리 잡으면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들이 있다. 우선 학생들이 교사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싫은 건 싫다, 귀찮은 건 귀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에게 원하는 것을 부탁한다. 이 때 교사가 정당한 이유로 거절했을 경우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부탁은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다만 그 장난이 무례하지 않다. 혹시 학생이 교사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장난을 칠 때 무례하다고 느껴지면 교사는 화내거나 혼내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학생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수평적 대화는 친밀함과 존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교사도 편하고 학생도 즐거운 대화가 꽃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