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함께읽기] 1탄. 천년의 화가 김홍도 (1)
#0. 미술가 함께읽기 시리즈
애들에게 시달리고, 업무에 치이다보면 힘들 때도 많지만 교사가 천직이구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어느 날이든 배우거나 느껴야 하루가 개운하게 마무리되는 제 성격 때문입니다.
책이든 영화든 볼 때마다 "애들한테 이걸 알려주면 좋겠다!", "교사로서 알고 느끼면 좋은 부분이야."라고 느끼며 그 쓸모를 생각합니다.
임고생때는 쌓여있는 각론만으로도 아득해서 저것만 다 알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해한해 가르칠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 개를 가르치기 위해선, 백 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옛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이번 상반기에는 상식보단 약간 깊은 수준의 지식을 훑어보고자 합니다.
첫 갈래는 미술가 훑어보기이고,
둘째 갈래는 책 속 교육 이야기 훑어보기입니다.
오늘의 글은 미술가 함께읽기 1탄입니다.
(준비하다보니 자료가 많아 2탄으로 나눠 구성하였습니다.)
#1. WHO IS THAT?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겠나요?
풍채에서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분, 조선팔도 화원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
"얼굴이 청수하고 정신이 깨끗하여 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상하고
세속을 추월하여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원기>
네. 바로 단원 김홍도 선생님입니다.
율곡 이이의 초상화를 그린 이종상 선생님의 그림과, 그의 자화상을 통해 우리는 김홍도 선생님의 생김새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어린 홍도
김홍도는 안산 성포리의 갯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민들이 갯가에서 조개와 물고기를 잡는 작은 마을이었죠.
김홍도의 아버지는 아들이 무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김홍도가 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환쟁이라 무시하는 화가였지요.
오른쪽 그림은 김홍도의 친구 강희언이 그린 그림으로,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던 때를 표현한 것입니다.
1번 사람이 집주인인 강희언이고, 2번 사람이 김홍도의 제자 이인문, 3번이 단원 김홍도 선생님입니다.
모두가 무시하는 길이었지만, 그에게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바로 양반인 강세황과 심사정 선생님이지요.
김홍도는 강세황에게 화결(기술)을 배운 후, 심사정의 집에서 동료 이인문과 도화원에 들어가기 위한 화술을 연습했습니다.
#2. 도화서 화원이 되다
김홍도는 18세에 도화서 화원이 됩니다.
하지만 그림이 천대받는 조선이었기에 1년간 무급화원으로 일하는 조건이었지요.
대궐에서 필요한 그림부터, 조정대신들의 초상화나 감상용 그림까지 그리는 게 도화서 화원의 일이었습니다.
김홍도는 낮에는 관청의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지전에 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풍속도 말고도 다양한 화풍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가 도화서에서 그렸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피카소가 젊은 시절 그렸던 사실적인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역시 창의성은 탄탄한 기초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홍도는 영조,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등 뛰어난 어용화사였습니다.
그는 도화서에 들어온지 얼마 안돼 영조의 수작연(궁중 잔치)의 기록화를 그리는 업무를 맡았고, 그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야 봉급을 받는 화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홍도는 영조의 신하인 동시에 정조의 신하이기도 했는데요.
명으로 그린 <주부사시의도>를 정조가 크게 칭찬한 기록도 있습니다.
정조의 시가와 산문이 엮인 <홍재전서>에는,
"김홍도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그의 이름을 안 지 오래되었다. 30년 전에 그가 어진을 그린 이후로는 그림 그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다 그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였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3. 세속화를 그리는 남자
김홍도는 도화서 화원으로서의 삶에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화결(기술)만큼, 화의(정신과 내용)가 중요하다는 걸 스승 강세황에게 배웠으니까요.
남이 그리라고 하는 그림, 도화서에서 요구하는 중국풍의 그림만 똑같이 찍어내선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았습니다.
중국의 그림을 흉내내는 그림에서 벗어나 진짜 조선땅의 삶을 종이에 옮긴 것이죠.
조선에 그처럼 생각하고 그처럼 그리는 이가 또 있었을까요?
그림에 대한 맹렬한 열정과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대단한 화가 김홍도의 삶은 어땠을까요?
재능에 마땅한 대접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렸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