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15> 힐빌리의 노래 - J.D. 밴스
J.D.밴스는 힐빌리였다. 힐빌리란, 미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뜻하는데 백인 쓰레기란 뜻의 '화이트 트래시', 바깥 노동을 해서 붉게 탄 목을 가진 탓에 '레드넥'이라고도 불린다. 굉장히 모욕적이다.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너는 힐빌리! 너는 화이트 트래시! 너는 레드넥!'하며 딱지를 붙이다니. 낙인을 참 서슴없이 찍는다. 어떻게 사람을 직업 혹은 부모의 재산으로 '쓰레기'라고까지 욕하는걸까.
사람의 가치는 벌어들이는 소득과 상관 없다며, 정장을 입든, 점퍼를 걸치든, 차림새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싶다.
한국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차별이 오가는 기준은 '아파트'다. 청년 임대 주택이 들어설 때, 주변의 한 아파트에서는 '부랑자들을 우리 동네에 들일 수 없다'는 식으로 벽보를 붙이기도 했다. 분양동과 임대동에 철조망을 쳐버리는 뉴스도 봤는데 벽보 쯤이야 식상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식상하지만 불쾌하다.)
어디에 사는지가 그 사람의 인격을 설명해준다는 식이다. 그래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학구적이고 신사적인 동네로 이사갈 것을 많이 권한다. 그 기준은 주로 멀끔한 '분양' 아파트를 말한다. 아, 그리고 분양 아파트에서는 '몇 동', 즉 몇 평에 사는지에 따라 다시 한 번 나뉜다고 한다.
미국에 '힐빌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휴거(휴먼시아 거지)'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별명까지 붙이면서, 거리를 두려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가 <힐빌리의 노래>에 있다. <힐빌리의 노래>는 사회적 낙인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설명한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친해지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식이다. 도대체 뭘까?
힐빌리 출신의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물려주지 못 한다. 부모 뿐이랴. 힐빌리가 몰려 사는 동네에는 이웃 모두가 무례하고 폭력적이며 무절제하다.
먼저 돈에 대한 태도다. 힐빌리는 절약하지 않는다. 가난해보일까봐 그렇다. 빚을 져서라도 좋은 물건을 쓴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다. 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벌게 될 때도 있다. J.D.밴스의 부모님이 연봉 1억 2천을 벌 때도 있었지만, 수영장과 트럭, 신형 자동차를 사대느라 여전히 빚을 지며 살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없다. 돈이 필요할 때 정작 돈이 없다.
한국으로 치자면, 진짜 부자는 강남에 없다는 말이나(진짜 부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리해서 강남에 살려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일거다), 원룸촌에 외제차가 많다는 말과 다름 없다. YOLO하다가 골로 간다도 비슷한 말일 것 같다.
232쪽. 절약은 우리(힐빌리)의 존재에 반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상류층인 척하려고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우리를 덮고 있던 거품이 걷히고 나면, 남아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의 대학 학비도 없고 재산을 늘릴 투자금도 없고 실업을 대비할 불황 대비 자금도 없다.
학업에 관심도 없다.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공부 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233쪽. 우리(힐빌리)는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부모가 됐을 때도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자녀들의 학교 성적은 형편 없다. 성적을 핑계로 화를 내는 일은 있지만, 자녀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을 평화롭고 조용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없다.
건강을 지키려 하지도 않는다. 같은 돈으로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패스트 푸드를 사 먹거나 집에서 쵸코 청크가 잔뜩 붙은 시리얼을 먹는다.
235쪽. 우리(힐빌리)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보면 마치 요절하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 ... 요리를 해먹는 편이 심신의 건강에 좋을뿐더러 가격도 더 저렴한데도 우리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어릴 적에 뛰어논 게 전부다. 살던 동네를 떠나서 군대에 가거나 집에서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진 대학에나 가야 길거리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J.D.밴스는 힐빌리였지만,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다. 머리가 월등히 좋았다기보다는 지독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매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으로 살았다. 하루 3~4시간씩 자고, 공부 말고도 아르바이트를 2개씩 했다. 그렇게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 후, 취직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상류층은 그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돈에 있어 과시보다 실속을 차려 도리어 검소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받거나 기부를 한다. 그리고 대출도 저축도 투자도 모두 신중했다. 한 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또한 아는 대로 실천했다. 공부가 삶에서 중요하다면, 공부를 했다. 건강해야 한다면, 견과류와 채소를 먹고, 자주 조깅을 했다.
323쪽. 나는 신분 상승이 단순히 돈만 많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이 달라지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그저 돈만 많거나 권력만 거머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규범과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J.D.밴스는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 '가난이 가풍이다'라고 말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쁘고, 그 태도는 다시 가난을 낳았다. 마약을 하고, 폭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돈은 과시용 소비로 몽땅 다 써버린다.
건강하지 못 한 태도는, 가난을 낳았다. 한편, 건강하지 못 한 태도로 가난을 가리기도 했다. 신용카드와 대출로 '힐빌리'라는 신분을 종종 세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급급하게 가렸을 뿐이다. 진짜 힐빌리는 아이패드로 가릴 수 있는게 아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최신형 장난감 또한, 힐빌리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없다.
돈과 세속적 성공이 전부라 여길 때, 삶은 삽시간에 무너진다.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많이 소비해서 무너지기도 하고, 성공이란 머나먼 별에 다가갈 수 없다 여기면 자포자기 해보리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야 하는 이유는, 과정에 정성을 들여야 결과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만을 바라보다가는 요행을 부려 일을 망치거나, 현재의 즐거움 없이 허상만을 좇게 된다.
116쪽. 오하이오 시골에 살면서 맞벌이 소득이 10만 달러가 넘는 부부가 금전적으로 허덕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듯하지만, 어쨌든 둘은 주로 돈 문제로 싸웠다. 새 승용차, 트럭, 수영장 같이 필요 없는 물건들을 사들인 탓이었다. 둘의 짧은 결혼생활이 파국에 이를 무렵에는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는 빚이 수만 달러씩이나 쌓여 있었다.
청년임대아파트가 들어설 때, '부랑자'들이라고 벽보를 붙였던 사람.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철조망을 친 주민들.
이들은 어쩌면 건강하지 못 한 태도로 가난을 가린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힐빌리의 노래>를 읽으면서, 진짜 상류층들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타인을 돕는 태도가 갖춰진지 확인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자산이든, 엄청나게 노력한다.
부자로 보이는 사람이 상류층은 아니다. 상류층을 가를 수 있는 것은 '태도'다. 마찬가지로 '가난을 가풍'으로 삼지 않기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바로 '태도'다.
공부가 얼마나 중요하며, 그 공부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게 아니라, 균형잡힌 건강한 식사를 해야 한다든지.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산관리 셈 속에서 소비해야 한다든지. 더 나아가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기부하고, 환경을 위해 의도적으로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까지.
가난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복지 제도 못지 않게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라도 하는 것이 낫다. 나쁜 태도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이다.
394쪽. 나도 무엇이 정답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오바마나 부시, 또는 얼굴도 모르는 기업을 향한 비난을 멈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봄으로써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의 나쁜 태도는 무엇이었을지 돌아봤다. 라면을 좋아하는 식습관, 대화나 타협보다 끝내는 '협박'으로 갈무리되는 육아까지. 이런 태도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애들 보며 업무까지 해내는데, 애들은 자꾸 나의 노트북을 닫아버린다. 미미 컴퓨터 놔두고 엄마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 심보는 뭘까? 어쨌든 보는 족족 죄다 로그아웃 시켜버린다. 업무용 메신저가 자꾸 끊겨서, 소통하던 작업들의 맥락도 엉망이 된다. 상대방이 의아해 할 것 같아 난감하다.
'로그아웃 할건데 왜 메시지를 보낸거지?'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하다보니, 아이들에게 화가 난다. 버럭 할 때도 있지만, '태도를 물려주자'는 마음으로 도를 닦고 있다. 내 세대에서 나쁜 육아 습관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나의 두 딸은 훗날 더 나은 육아를 하리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상류층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상류층의 삶을 살고 싶어서다. 배워야 할 것은 돈보다 태도가 먼저다. 돈 씀씀이만 배워버리면, 돈이 없으니 앞으로 상류층이 될 가능성마저 차단시킬뿐더러, 지금 당장 상류층처럼 살 수 있는 기회마저 없애버리는 거다. 돈 쓰는 버릇보다 태도를 배우는게 먼저다.
양질의 삶, 태도에 관하여 공부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