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13> 전기 없이 우아하게 - 사이토 겐이치로
작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올해 여름은 서늘했으나, 가을이 되서야 이상 기후를 실감했다. 2주에 한 번 가을 태풍이 한반도를 쓸고 갔다. 링링, 타파, 미탁이었다.
지구 온도가 0.5도만 더 올라가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를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한계선 직전이다. 지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영화에서는 늘 영웅이 등장했다.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일 때면, 미국을 중심으로 뛰어난 과학자, 리더십있는 정치인이 빠밤!하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줘 왔다. 나 같은 일반 시민들은 위기 상황에서 벌벌 떨고만 있으면, 알아서 다 해줬다.
현실에서도 누가 다 해 줄 알았다. 상상해봤다. UN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하는 강력한 규제가 동원되는 거다. 예를들어 최소한의 교통 수단과 공장 생산만을 허락하고, 탄소배출량을 일시 정지할 특단의 조치라도 나올 줄 알았다.
심각한 기후 변화 앞에서 전인류가 합심할만도 한데, 사람들은 아마존강을 개발하는 브라질 대통령만 비난했다. 동네 뒷동산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상가와 아파트를 올리는 데 거리낌 없었다. 넓고 긴 고속도로, 고속열차가 자기 지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국민청원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동차와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탄소배출량과 경제성장은 연결되어 있었다. 경제력은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으니, 어느 누구하나 나서기 어려웠다.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영웅은 나타날 수 없었다.
8쪽. 아무리 이상과 꿈이 드높다 해도, 이 세상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어서 개선하고 싶다 하더라도, 정부나 기업, 타인에게 의존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기대했던 만큼 배신당했을 때의 충격과 피해가 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나는 5암페어로 전력 사용을 제한하는 절전 생활에 뛰어들었다.
사이토 겐이치로가 5암페어 절전 생활을 실천하고 <전기없이 우아하게>를 펴내게 된건, 영웅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전기없이 우아하게>는 후쿠시마 원자력 폭발 이후에도 또다시 원자력 발전을 가동하는 기업과 정부에게 항의하는 책이다.
49쪽. 지방 신문기자가 다가가 물었다. "후쿠시마에 희망은 있습니까?" 그때까지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만 연신 숙이던 상무의 입이 갑자기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뺨이 새빨개지며 엄숙했던 표정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러고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일본에도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와 언론은 후쿠시마 주변으로 방사능 눈이 내려도 침묵했고, 통제력을 잃은 핵연료 봉이 펄펄 끓어도 방법을 몰랐다. 후쿠시마를 찾은 도쿄전력 간부는 '희망이 있는겁니까?'라는 질문에 '네, 있습니다.'라고 할 수 없어 눈물만 흘렸다.
정부도, 전문가도 문제가 일어나면 손 쓸 수 없었다. 시민의 욕망은 전기를 통해 누리는 쾌적한 삶이었고, 정부와 전문가는 딱 시민의 욕망만큼만을 채워줬다. 그래야 선거에 당선되고, 물건이 팔렸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도, 중단됐던 다른 지역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국민이 원해서'라고 했다. 사람들은 후쿠시마를 까맣게 잊었고, 전기를 쓰지 않기 위해 잠시 어두웠던 도쿄 거리는 다시 휘황찬란해졌다.
문제의 원인은, '원자력' 씩이나 필요할만큼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삶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토 겐이치로씨는 전기에 의존하는 삶을 바꾸기 시작했고, 기사로, 그리고 책으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5암페어 절전 생활은 어느 정도의 삶일까? 우리집과 비교해봤다. 우리 가족들은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쓰고, TV, 건조기, 식기 세척기 같은 최신 가전 제품을 아예 들이지도 않았으며, 자주 쓰는 거실과 서재방 조명은 LED로 교체해 사용한다. 그 결과 1달 전, 8월 246kwh를 썼고, 여름 아닐 때는 135~180kwh를 쓴다.
사이토 겐이치로 씨는 2013년 12월, 2kwh를 썼다. 우리집이 2018년 12월, 172kwh를 썼을 때, <전기없이 우아하게> 사는 저자는 우리집 전기 사용량 90분의 1을 썼다. (여름 기준으로는 120분의 1)
작가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전자레인지, 드라이기, 토스트기, 전기포트, 전기압력밥솥, TV, 청소기 등 대부분의 가전 제품을 쓰지 않았다. 에어컨과 드라이기 대신 선풍기, 전자레인지 대신 찜기, 토스트기 대신 후라이팬, 전기포트 대신 주전자, 전기압력밥솥 대신 냄비, TV 대신 휴대폰,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썼다. 세탁기도 헹굼, 탈수는 한 번 씩만.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초절전으로 이겨내기 위해 위해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리고 기어이 냉장고까지 없앴다.
163쪽. "5암페어 생활은 견디고 참으면서 돈을 극도로 절약하는 빈곤 생활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얼마나 쾌적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가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삶이지만 작가는 쾌적하고 즐겁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간 가전제품으로 이어져왔던 쾌적함과 효율성은 그저 '익숙'해진 상태일 뿐이기 때문이라 한다.
사이토 겐이치로씨처럼 해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습관을 조금만 바꿔도 몸에 익은 전기 생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전자레인지, 토스트기, 전기포트, 전기압력밥솥과 드라이기. 모두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건 줄 알았다. 방법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800L 냉장고도 당연한 줄 알았는데, 점점 이 거대한 녀석이 부담스럽고 우악스러워보인다. 고장나면 꼭 더 작은 용량으로 바꾸고야 말거다. 머리 감고 젖은 머리도 충분히 수건으로 닦지 않고, 드라이기로 생각없이 말려왔다. 수건으로 꼼꼼히 말리기만해도 드라이기 사용 시간을 많이 줄였을텐데!
149쪽. 이미 익숙해진 쾌적함과 효율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감히 놓아 버렸더니 알게 되었다. 쾌적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 쾌적하다고 느끼도록 세뇌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좋은 것이 최근에 만들어진 신제품보다 훨씬 뛰어나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싸고 편리하게'라는 가치만 쫓다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면, 퇴행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점점 서늘해지는 가을 중순. 단열재를 현관과 창문에 꼼꼼하게 바르는 것부터, 얇은 옷을 두 겹씩 입고, 양말을 신는 생활부터 시작해야 겠다.
64쪽. 이 도시(도쿄)는 벌써 후쿠시마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르는 척하려는구나.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집을 잃고 상자벽 아래 누워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자, 너무나 슬프고 원통해졌다.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같은 슬픔은 없었으나, 여전히 미세먼지와 쓰레기 대란 속에 살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변화로 또 19호 태풍이 발생했다는 끔찍한 소식도 무섭다.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를 점점 잊어가고, 도쿄 거리는 대시 찬란해졌다. 우리도 생활하다보니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잊어가고, 타성에 젖어 에너지 소비에 거리낌 없다.
에너지 소비라는 오래되어 굳어버린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수치심', '죄책감'을 이용하고 싶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소비를 경계, 비판하는 나 자신조차도, 그 일원임을 자각하는 거다.
유럽에서는 Flight shame 운동을 벌이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 수치심을 느끼자는 뜻인데, 탄소 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사용을 줄이자는 의미다. 도로와 철도가 잘 발달된 한국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대신 우리는 Consumption shame은 어떨까?(*Consumption: 소비) 에너지 소비는 전자제품이나 비행기, 자동차처럼 직접적 드러나기도 하지만 숨어있기도 하다. 바로 '소비' 속에 에너지가 있다. 물건을 대량생산 후, 대량수송, 대량폐기 될 때에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편리함에 덜 익숙해진다면 에너지 과잉 생산과 미세먼지, 기후변화(폭염, 혹한, 가을태풍 등)을 줄이는 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
163쪽. 이 세상에는 에너지에 의존한 상품이 넘쳐난다. 싼값에 만들어서 싸게 팔고, 용건이 끝나면 금방 버리는, 자존심이라고는 없는 상품이 수도 없이 많다. 나도 그런 상품에 둘러싸여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라는 쳇바퀴 속에서 살고 있었다.
에너지를 줄이는 길은 많다. 실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