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09> 어느 날, 변두리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김효정
팥을 물에 불렸다. 쓴 맛을 빼기 위해 한 번 삶은 후, 물을 버렸다. 설탕 듬뿍, 소금 한 꼬집, 그리고 물을 넣고 팥이 익을 때까지 자작하게 끓여냈다. 팥 삶는 더운 열기에 에어컨을 틀어도 땀이 났다. 손품을 팔아 흡족하게 끓여낸 팥은 얼린 우유에 올려 먹을 빙수의 고명이었다.
얼린 우유를 포크로 긇어내 식감 좋게 우유 가루를 내고, 연유와 빙수떡, 빙수젤리, 그리고 팥을 넣었다. 남편은 커피 알갱이를 넣었다. 기막히게 따라하고 싶은 라떼빙수 완성이다.
둘째는 빙수젤리를 얹는 동안 울면서 달려들었다. 첫째가,
"엄마가 사진 다 찍어야 먹는거야!"
라며, 블로거의 자녀 다운 멋진 대사를 날려주어도 소용없었다. 빙수에 달려드는 둘째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는건 잔인하디 잔인하다! 둘째야, 먹어라, 어서.
더운 여름, 넉넉하게 삶은 팥을 보이 이웃 언니가 생각났다. <어느 날, 변두리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를 읽던 중이라 '순수증여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던 때였다. 빙수 팥 삶았는데, 필요하면 드리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괜히 언니네 가족들 쉬는 주말에 오지랍을 부린건 아닌지 조마조마하며 답을 기다렸다. 떨렸던 내 마음을 다독이듯, 언니는 되려 사골 한 팩을 들고 왔다.
좋은 관계는 계산 없이 탄생했다. 돈에 의존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꽤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사람'이었다. 관계는 과시용 소비에서 오는 쾌락을 대체할 수 있다.
91쪽. 불안의 원인은 비슷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풍요롭지 않아서이며 그로 인해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관계의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악어가죽 가방과 핸드메이드 무브먼트의 손목시계와 레이저 시술이 필요하다. 불행히도 안전한 관계를 보장한다고 여겨지는 기준은 패크애비뉴에서건, 경기도 모처에서건 현실의 내가 쫓아가기에는 항상 벅차며 그것을 통제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얕은 관계에서 묘하게 오가는 자식 자랑과 좋은 집, 고급 차, 그리고 한 치의 오점 없어 보이는 완전무결한 꾸밈은 불편하다. 은근한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돈을 많이 벌고, 걸맞게 많이 써서 뒤쳐지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사람과 대화할 거리가 고작 물건 밖에 없을 때는 친구가 하나 장만했다는 수 백 만원짜리 유모차를 두고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다. 멀쩡한 내 삶이, 도드라지게 초라한 것만 같다.
100쪽. 마을에는 남모르게 매일 도서관 화장실을 청소하고 퇴비장과 쓰레기통을 살피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아이들이 넘어질세라 무릎을 꿇고 길에 깔린 돌을 망치로 깨는 그 앞에서 애스턴 마틴을 타 봤자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런데 얼린 사골을 내밀며 웃는 언니 앞에서, 풀 메이크업과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행복한 관계의 중심은 '자랑'과 '우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받으면 기쁘고, 있으면 주고 싶다.이런 관계에서, 우열을 암시하는 자랑은 독(毒)이다. 마음이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겉치레는 없다. 단지 삶은 팥이 넉넉하면 언니가 생각났다. 그리고 파 몇 단만 들여도 나를 생각해주던 언니는 이번에도 얼린 사골을 가져다 주었다. 뿐만 아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와인을 주겠다는 핑계 삼아 한달음에 얼굴 보고 싶은 이웃, 옥수수를 삶으면 조금이라도 주고 싶은 좋은 사람들.
적은 돈으로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내 실험 결과는 긍정적이다. 한 푼, 두 푼 가계부 쓰며 지갑을 꽁꽁 닫는 일상에도 헤실거리며 헤프게 웃고 다닐 수 있는 동력의 절반 이상이 바로 '사람'이었다. 돈으로 친구를 사귀기는 글렀으니, 작은 식재료라도 나누고, 좋은 생각을 PPT로 엮어 모임을 구성했으며, 책 한 권을 두고 모여 수다를 떨었다. 누가 더 잘난 맛은 '더 선함', '더 건실함', '더 올곧음', '더 강인함'으로 판단되었다. 친구들이 내 선망의 대상이 되는건, 그들의 가방이 대형마트 빨간 장바구니더라도, 성실함과 따뜻한 말솜씨, 더불어 자녀 교육에 대한 단단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어느 날, 변두리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의 김효정 작가다. 그녀는 고백했다. 도시의 어설픈 관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정받기 힘들었다고. 8개월 젖먹이를 두고 출근했다가, 젖병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퉁퉁 불은 가슴을 대며 수유할 때 비참했다고.
그럼에도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장일을 꾸역꾸역 이어나갈 수 밖에 없던건, '남들을 따돌릴만큼 훌륭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언제나 나보다 뛰어난 남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결국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우울증 진단 테스트를 50점 넘어야 처방해주는 프로작(항우울제)을, 70점을 넘겨 급히 복용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프로작을 먹어도 허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언덕이 많고, 진입로가 좁아 '자루'처럼 생긴 자루마을로 이사온 후 변했다.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관계'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36쪽. 다른 이들이 옳다고,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 버렸음을, 우왕좌왕 하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 제대로 몰두한 적이 없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
내가 좀 더 일찍 삶의 목표를 큰 집과 차가 아니라 평화롭고, 불안 없는 삶으로 수정했다면 어땠을까. 20대에 시골집에서 꽃을 가꾸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내가 경쟁에 힘겨워 하는 사람임을, 다른 사람에게는 효율 없이 보이는 일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왜 이제서야 절감하는 걸까.
귀촌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농업으로 생계를 잇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변두리 마을이지만, 여전히 회사로 20분 거리 출퇴근 한다. 그러므로 시골 마을, 단독 주택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 아니므로, 행복한 삶은 누구에게나 가까웠다. 유토피아적 삶의 핵심은 '시골'이냐, '도시'냐가 아니었다. 허물 없이 이웃을 대하고, 우월감보다 겸손함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핵심이었다. 자루 마을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
작가는 남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인정욕구와 큰 집과 좋은 차가 성공을 대변하는 삶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그녀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고, 우울증 때문에 도저히 쓸 수 없었던 글도 다시 쓸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이 책, <어느 날, 변두리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다.
114쪽. 조금 다른 삶을 택한 사람들도 많으며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마을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행복이 있으며, 그것은 많은 돈이 들거나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에 시간을 들이고,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에 시간을 들이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은 풍요로워졌다.
남편의 전근으로 김효정 작가는 자루마을을 떠나야만했다. 자루마을에서는 한 달 동안 이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시골마을처럼 이웃을 사귀기 쉽지 않은 도시에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193쪽. 오랫동안 내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깨달았으니 무엇을 찾아야 할 지도 알 것 같다.
그녀는 이제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관계나 장소로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작은 책방 문을 두드렸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건이나 자식 자랑 아닌 책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맺고, 좋아하는 책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귐으로서 스스로 행복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래 앓았던 우울증의 원인처럼,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우열을 가리던 비뚠 관계에서 벗어났다.
여름철을 맞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반자본적 인간 관계'를 위한 귀띔을 살짝 해드리고 싶다. 물놀이 장소로 가능한 저렴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단, 저렴하되 우아한 곳! 바로 자연이다. 계곡이나 바다! 대형 워터파크의 휘황찬란하고 물 새듯 돈 쓰는 그런 곳 말고, 집 근처에 돌멩이 많고, 모기도 많은 그런 곳.
우리 가족은 나무 그늘 아래, 무릉계곡물로 꾸며둔 시립 시설로 물놀이를 간다. 여기서는 옆 사람과 과자도, 김밥도, 라면도 오간다. 옆 돗자리 꼬맹이가 수영장에서 상어를 물리쳤다는 허풍에 실컷 웃을 수 있다. 여기서도 모르는 사람 투성이지만, 아무도 뽐내지 않는 편한 차림에 평화롭다. 물놀이에서 슬쩍 만난 옆 돗자리 사람은 깊은 관계가 아님에도, 편안하고 소박한 환경에서는 옆사람에게 무장해제가 된다. 괜히 서로를 위하고 싶어진다.
관계는 역시 반자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