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08> 동해시 작은 집과 평창동 높이 5m 담장 저택, 수 십 억의 간극.
'굳이 워크숍'으로 오프라인 멤버들을 만난지, 벌써 2주가 지났네요. 높이 5m 담장 너머로 빼꼼히 정자 한 채 씩 보이는, 주택... 아니 저택들이 모여 있는 평창동에서 모였습니다. 저희가 머문 숙소도 으리으리한 3층짜리 주택이었어요. 노부부가 자택 중 일부를 에어앤비로 쓰시는 듯 했습니다.
방에는 화랑에서 수집한 그림들과 설치 미술들로 가득했습니다. 마당 또한 집주인 내외가 직접 나무를 손질해 못질한 벤치와 시소, 그네, 미끄럼틀, 정원과 텃밭으로 풍성했지요. 화강암이 하얗게 드러난 북악산을 마당에 가만히 앉아 커피 마시며 감상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집 업그레이드의 끝장판이었지요. 실컷 누렸습니다. 갤러리 같은 집, 그리고 마당의 놀이터까지!
그리고 허무했습니다. '가장 좋은 집이 고작 이거였어?'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 동안 집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아등바등 돈을 모으기도 했고,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집과 평창동 저택의 가격 차이는 수 십, 수 백 억이지만 '안락함'의 차이는 적었습니다. 평창동 저택은 더 쾌적했어요. 그렇지만 오로지 약간 더 쾌적함을 느끼기 위해 삶을 바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미묘한 차이었습니다.
'사는 곳'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해의 작은 집은 6천 만 원 안 되는 돈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거실에 앉아 전천과 태백산맥을 보며 지내는건 일상이지요. '주말에 뭐 할까?'를 고민하면, '바다'와 '등대'부터 떠오르는 휴양지이기도 합니다. 30분만 차를 타고 가도 정동진이 있고, 조금 더 가면 경포호도 있습니다. 유명 바리스타들의 커피를 주말 마다 마실 수도 있고, 강릉 수제 맥주도 생각날 때 한 병 들고 올 수도 있어요.
누리는 환경에 비해 5800만원의 집 값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싸고, 감사할 정도로 저렴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제가 사는 집을 선택했어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도 살고 계신 집을 선택한 이유와 좋은 점들이 있으실거에요.
아마 지난 주말,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하룻밤 머무르지 않았다면, 여전히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의식주' 업그레이드를 위해 돈을 모으고 싶지 않아요. 평창동과 동해시 집값, 그 수 십 억의 간극만큼 만족감이 비례하여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부동산(不動産)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먹고, 입고, 낡으면 버리는 단순 소비재와는 다릅니다. 투자로서 가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호화 저택에 살기 위해 수 억의 빚을 등에 지는 결말은 뻔합니다. 가난으로 쪼들리는 일과 대출금을 메꾸기 위해 노동에 삶을 저당잡히는 겁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지적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게'되는 거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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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 <월든>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집을 업그레이드하느라 시간과 돈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려 해요. 책 읽고, 글 쓰고, 커피 마시고, 남편, 아이들과 주말 산책을 가려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으려 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여행 계획을 짜볼거에요.
삶의 목적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 되도록 살거에요. 절약은 늘 상수로서 함께 하므로, 여윳돈을 차곡차곡 모으다보면, 좋은 집을 부담 없이 살 수도 있는 날이 오겠지요. 혹, 오지 않더라도 아쉽진 않을 것 같아요. 좋은 집을 목적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짜잔'하고 얻을 수 있는 만족감보다, 매일매일 조금씩, 소박하게 제가 좋아하는 일로 가득한 나날의 만족감이 더더욱 크니까요.
동해시 작은 집과 평창동 5m 저택, 수 십 억의 간극. 그 사이를 메울 수 있는건, 돈에 집착하는 매일이 아닌, 걷고, 쓰고, 만나고, 사랑하는 하루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