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01> 절약과 자립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오늘은 친정 엄마의 생신입니다. 엄마 가까이 사는 복 받은 딸인지라, 생신 당일 기쁨을 전해드릴 수 있었어요. 밥심보다 꽃심으로 사시는 저희 엄마를 위해, 간소한 꽃다발을 준비했답니다. 제가 직접 길러, 꽃 배치를 디자인하고, 금손 포장을 하진 못 했습니다. 대신 모아둔 용돈으로 값을 치르고, 효도 했지요.
"뭐 이런걸 다~"
엄마는 '완곡한 거절'을 하셨지만, 이미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입니다. 집반찬에서부터 효도까지. 단순 먹거리에서 효(孝)마저도 채워줍니다. 못 할게 없지요.
그래서 더 돈 많은 삶을 꿈꿨습니다. 당장 살림이 부족한 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부동산 공부를 하고 휴일이면 이제 막 걸음마 시작한 아이 데리고 임장 뛰었습니다. 한 사람의 월급만큼 부동산 임대 수익이 나올 때까지 절약과 노동, 투자를 아끼지 않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길게 보아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 믿었거든요.
결국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소시킨 후, 1년 3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복직했습니다.
남들 다 보내는 어린이집. 8시부터 5시까지 어린이집이지만, 아이는 무던히 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아침마다 우는 아이, 기침하던 아이, 열 나던 아이를 어린이집 현관으로 밀어넣으면서 속으로 주문을 외웠습니다. 민간신앙 뺨치는 정신승리 기도였지요.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 부모랑 온종일 떨어져 있어도 아이들 다 잘 크더라. 이것도 잠깐이다. 선생님들도 친절하시고, 어린이집 환경도 쾌적하다. 밥도 나보다 더 잘 차려주시더라.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주문을 외웠던건, 사실 괜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근 길에 마음 짠해 울었고, 퇴근 길 어린이집 신발장에 딸 신발 한 켤레만 남아 있으면, 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지금 아이는 잘 자라고 있지만, 제 마음이 약했던거죠.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예민한 행동을 해도 스스로 저를 탓했습니다.
문제는 맞벌이의 삶이 '미안함'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둘째 임신 중에 했던 복직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워킹맘으로 산다는건 왠지모를 억울함과 분노로 하루가 진흙탕이 되버리는 일이었어요. 부른 배를 힙시트 삼아 엄마 그리운 큰 아이를 안고 걸어서 등하원을 책임졌습니다. 아이 계절옷은 물론 작은 칫솔에서 물티슈, 온갖 안내장까지 제가 챙기게 되던 나날은 짜증스러웠어요.
저만 억울했을까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와도, 설거지, 분리수거, 아이들 목욕까지. 취미생활이나 사교 모임은 고사하고, 엉덩이 붙여 책 읽을 짬 내기도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불행베틀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희도 알고 있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죠. 저희는 그저 피곤했던 거에요.
2019년 복직을 예정대로 해 나가려니 두려웠습니다. 또다시 어린 둘째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밀어넣어야 하다니. 아이들하고 10분 놀아줄 체력을 모두 학교 제자들에게 쏟아주고 와버리는, 그런 나날을 반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복직을 하려 했던걸까요? 외벌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권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입이 반토막 난다니.
"외벌이. 적은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게 과연 잘 사는 걸까?"
넉넉한 월급과 쉼 있는 일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행복하기 위해 다짐만 하는 삶보다, 실제로 행복한 틀을 짜기로 결심했습니다. 2019년, 한 해 더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절약과 자립
유지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식비를 15,000원으로 제한하고, 매일 식비 가계부를 썼습니다. 4인 가족 한 달 45만원으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삼시세끼 조리대 앞에 섰습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고, 아이들이 아프면 닭죽, 전복죽을 해 먹였습니다. 삼계탕, 찜닭 같은 간단한 요리부터 닭갈비에 감자탕까지. 할 줄 아는 요리가 늘었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식으로 먹던 음식들은 간단한 기술을 익히면 적당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제게 집밥은 자립이었습니다. 생활비를 줄이면 복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생각보다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더 많이 벌기보다 적게 쓰기를 택했습니다.
집밥 뿐이었을까요. 식재료 사기 위해 마트에 덜 가니, 다른 생활 잡화 구입비도 줄었습니다. 작은 아이 옷은 무조건 물려 입히고, 사교육 보다 제가 직접 한글 교육을 합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던 키즈카페 발걸음도 뚝 끊어버렸습니다. 대신 좀 더 수고롭지만 집 앞 산책을 하거나, 놀이터, 근처 공원을 향했습니다. 큰 아이도 서서히 장난감 중독에서 벗어나 사람과 노는 재미를 알게 되었지요. 옷이 튿어지면 직접 바늘과 실로 꿰매고, 빨래 건조대가 고장나도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썼습니다.
변동지출(식비, 의료비, 유류비, 생활잡화비, 여가비, 미용비), 한 달 100만원 안에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축도 매달 100만원 이상 하고 있지요. 이 정도 저축이면, 불안한 미래를 위한 안정자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있을 만큼만 생활 필수품을 얻는 일에 매달렸다. 그 수준에 이르고 나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눈을 돌려 취미 생활과 사회 활동에 관심과 정열을 쏟았다.
그 때 미국 경제는 생활 필수품에 만족하고 나면 바로 안락과 편리함을 주는 물건에 관심을 돌리고 그 다음에는 호화 사치품에 눈길을 돌리도록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
우리는 사람들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
돈을 쓴다는 것은 다시 그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스티븐슨은 "적게 벌고, 그보다 더 적게 쓰라."고 말한다.
- <조화로운 삶> 중. 니어링 부부 지음.
궁상이냐고요? 아닙니다. 유지비가 적게 드는 삶 덕분에 부부 중 한 명이 집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소신대로 살 수 있는 힘은, '절약'에서 나왔습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행복을 해치지 않는 나날을 꾸려가고 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줄었습니다.
'노후 적정 유지비는 얼마일까? 4인가족 살아보니 한 달 220만원이면 충분하던걸.
연금을 안 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괜찮아. 노동을 줄인 덕에 취미 삼아 배운 손기술들로 노후에 일을 하자.
혹시 해직을 당하면 어쩌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도 충분해. 월급이 좀 더 적어도 살 수 있어.'
절약할 수 있다면 노동으로부터 해방됩니다. 미래에 대한 온갖 불안이나, 당장의 과잉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버는 돈 보다 적게 쓴다는 단순한 사실이, 저희 가족을 편안한 일상으로 초대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어려 휴직을 선택했습니다만, 여러 사정과 가치관으로 맞벌이를 하시는 부부께서 더 많으실 겁니다. (저도 두 아이가 6살, 4살 되는 내년에는 복직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꼭 외벌이 가정만이 절약해야 하는건 아닙니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기술은 결국 여러분을 노동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도록 해 줄 겁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절약을 권합니다. 경제적 자유가 깃드는 단순한 방법은, 여러분의 힘으로 밥을 짓고, 방을 청소하며, 빨래를 말리는 일입니다. 돈 적게 쓰는 일. 이젠 자린고비의 상징이 될게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는 '기술'입니다. 절약은 자립이며 경제적 자유니까요.
여러분의 삶이,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도록, 오늘 배달음식 안 시켜 먹고 냉장고에 수북한 식재료를 꺼내어 조리대에 서시길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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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이번 에듀콜라 신규 집필진, 휴직교사 최다혜입니다.
아이 둘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절약과 미니멀라이프를 영접(!)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샀던, 월급탕진의 아이콘이었던 제가,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살면서 느끼게 된 이야기를 주로 적습니다.
휴직이 길어지니, 학교가 너무 그립습니다.
바깥 공기와 학교의 공기는 무척 다르잖아요.
그래서 친정에 다시 오는 기분으로, 에듀콜라 신규 집필진에 지원했습니다.
경험도 적고, 경력도 적은, 그야말로 뭣도 없지만... 저의 좁디 좁은 울타리 안에서 농도 짙게 겪은 일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더 많은 미니멀라이프와 절약 콘텐츠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블로그로 놀러오세요 :-)
https://blog.naver.com/dahyun0421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