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촉진제 14> 절약, 불편할 때도 있지만 설득하고 싶어요.
저만 볼 글이었다면 일기장에 적었을 겁니다. 그런데 블로그에도, 때로는 오마이뉴스에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길벗 더 퀘스트 출판사와 함께 책을 낼 작정이에요. 보는 눈 많은 공적 글쓰기는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로부터 반론도 댓글 형태로 종종 들어오죠.
그래도 씁니다. 가능한 매일매일요. 왜냐하면 저는 설득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절약하자고요. 돈 덜 써보자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설득에 자부심을 느낀답니다. 재밌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쓰게 됩니다.)
저는 맛집에 가도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저에게 외식 사진은 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음식이 예쁘면 됐지. 맛집 사진 조차 찍기 꺼려지다니.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이쯤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절약가라는 타이틀이 실제 제 삶을 잡아 먹었다 봐야 하는 걸까요.
"거봐 거봐. 아껴 사는 얘기 말고, 번듯하게 잘 사는 얘기를 쓰라고. 니 글이 니 발목을 잡은거지."
순전히 제가 저에게 건내는 말입니다. '니 글이 니 발목을 잡았다.' 아무도 제게 이 얘기를 하지는 않아요. 내적 갈등인 셈이네요. 절약 글 따위 쓰지 않았다면, 신나게 먹고 돈 쓰며 SNS에 자랑도 하면서 적당히 만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엇! 나... 내가 써버린 글에서 더 벗어나지 못 하는거야?'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제 글에 발목이 잡혔을지언정, 발목 잡힐 글을 계속 씁니다. 왜 일까요? 절약 블로거로서의 체면? 그럴리가요. 아시다시피 블로그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블로그 계정을 폭파 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맛집 자랑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블로그야 지우면 그만입니다.
온라인 공간은 이렇게 얄팍합니다. 하지만 이 얄팍함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괴롭습니다. 제가 절약글을 쓰는 이유는 이깟 얄팍한 온라인 공간의 어두운 면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승리의 트로피는 아주 뚜렷합니다. 아무도 집에서 구운 군고구마 사진을 승리의 트로피라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더 나은 삶을 상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은 확연히 다릅니다. 그 기준은 뭘까요?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구분할 수 있어요. 시간 날 때마다 떠나는 화려한 여행, 넓고 좋은 집, 비싼 차, 산지 얼마 안 된 듯한 깨끗한 옷, 그리고 승진과 직함. 이런 것들이 승리의 트로피입니다. 반면, 다시 한 번 쓰려고 씻어 말린 콩나물 봉지는 결코 '승리'의 축에도 못 낍니다. 어쩌면 구질구질을 넘어 꾸질꾸질함으로 비춰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저는 '꾸질꾸질'하게 콩나물 봉지 씻어 말린 사진을 꼬옥 찍어둡니다. 자랑하려고요. 절약만큼은 자랑거리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외식해도 외식 사진은 안 찍습니다. 더 나은 삶을 상징하는 것들은 별로 자랑하고 싶지 않아요. 자랑거리라 생각 안 합니다. 이런 자랑 문화,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승리의 트로피를 자랑하는 문화 때문에 기후 위기는 점점 심해집니다. 저희 두 딸이 100세 인생을 무사히 살아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제 마지막 0.5℃의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을 앞뒀어요. 그런데도 오래 써야 할 물건들을 일회용품처럼 쉽게 사고 버리고(심지어 자동차까지), 멀쩡한 물건을 최신형으로 자주 업데이트하며, 없어도 될 물건들을 사기도 합니다.
기업은 가장 좋은 물건을 만들기보다, 적당히 좋은 물건을 대량 생산해 수익을 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량 생산하는 족족 대량 소비하고, 대량 폐기합니다. 중고 시장이 활황인 것은, 그만큼 새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기 때문이죠. 대량 생산? 그거 '대량 탄소'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SNS에 자랑하는 '승리의 트로피'들은 대량생산의 '잠재적 고객님'을 증폭시킵니다.
문제는 기후 위기 뿐만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병들고 있어요. 자기 삶에 집중하지 못 하고, 남 눈치 보느라 바쁩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 말고요. 자기 방어적인 체면 때문에요. 성과를 낸 사람은 다음 성과를 위해 압박감을 느끼고, 쉴 법 한 데도 계속 일을 합니다. 성과를 못 낸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자기 삶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계속 불행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요. 번듯한 물건과 서비스를 승리의 트로피라 여기는 사람들에겐 말이죠.
절약,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절약 글을 쓰고, 집밥 사진을 올리며, 환경 보호를 위한 아주 눈꼽만한 노력도 티 낼겁니다. 설득하고 싶어요.
다행히 절약을 자랑하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로 약한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절약은 실제적으로 개인의 이득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마음도 편해지면서, 각자 삶에서 무엇이 가치로운지를 생각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절약을 잘 자랑할수록, 절약을 자랑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청빈한 삶,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도덕적으로 가산점 쳐주는 분위기까지, 절약가들의 절약 자랑에 힘을 줍니다.
그래서 절약 자랑 할만합니다. 불편해도 신이나서 할만하죠. 그래서 오늘, 자정을 넘겨서도 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