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무튼, 시리즈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그런 분야가 있다.
"와 이건 진짜 내분야지. 찐 내분야. " "내가 딴건 몰라도 거기에는 차 한대 값 썼지. " "넥슨 건물 벽돌 몇 장, 아니 기둥 하나는 내 돈일꺼다. " "내가 거기에 들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가고도 남았다. " 등등. 돈이 되었건 시간이 되었건 좋아 하니까 다른 사람 보다 많이, 혹은 쬐끔이라도 더 에너지를 투자했던 어느 분야. 그래서 그 분야의 주제가 나오면 약간 텐션이 업 되면서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 근질해지는 그런 주제들.
이건 어른 아이 할 것 없다. 우리 어린이들도 자신이 좋아 하는 분야가 나오면 아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발표해 보라고 멍석 깔아 주면 쑥스러워서 쭈뼛대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편하게 수다 떠는 것을 잘 들어 보면 이렇게 말을 잘했나 싶을 만큼 술술술 이야기를 풀어 낸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아무튼- 시리즈이다. 아무튼 시리즈가 무엇인가 하면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이렇게 세 곳의 출판사에서 함께 출간한 것인데, 여러 직업을 가진 작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을 쓴 작가들은 번역가, 목수, 작가, 가수, 만화가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이 작가들이 쓰는 아무튼 주제는 더 다양하다. 아무튼 술, 아무튼 메모, 아무튼 식물, 떡볶이, 하루키, 문구, 요가, 발레, 망원동, 방콕, 피트니스, 비건, 게스트 하우스, 등등. 그림판에서 사용자 색깔 지정을 위해 마우스 클릭 창에서 보여주는 색 스펙트럼 창 마냥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유사한 와중에 방향이 다르게 세분화 된 주제들이 있을까 싶다. 열심히 검색해 본 결과 2020년 2월 11일 기준으로 출판된 아무튼 시리즈는 총 27개인 것으로 보인다.
제일 먼저 접했던 아무튼 시리즈는, 역시나 '아무튼, 술'이다. 처음 이 책을 보며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술의 역사, 혹은 음식과 술의 조합 추천, 혹은 술의 제조 방법 처럼 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뒷통수 제대로 맞았다. 아...... 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정말 단 하나도 없다. 그냥 술과 관련하여 작가가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술을 통해 사람들과 쌓은 인연, 술을 마시다가 만든 잊지 못할 에피소드, 술을 마시며 발견한 좋은 소리(소주 오르골편 참고)와 같이, 술을 접하며 쌓은 경험들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개성있고 다채롭게 만들었는지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주제는 나도 참 쓸말이 많은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시간 되는 대로 개인 블로그에 기록해 보아야 겠다.)
다음으로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는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 였다. 이제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 바가 있으니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유쾌한 마음으로 읽었다. 떡볶이 맛집에 대해 철저하게 파악하거나, 혹은 떡볶이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도 아니라. 그냥 떡볶이를 좋아하는 마음, 떡볶이와 관련된 추억들, 떡볶이를 먹으며 혹은 떡볶이와 관련되어 들었던 생각들을 읽으며 나 역시 떡볶이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떡볶이에 관련된 경험들에 공감하기도 하고, 또 떡볶이에 대한 작가의 디테일한 관찰력에 놀라기도 하며 책을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를 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의 짐도 좀 내려놓게 되었다. 한 주제에 대해 꼭 내가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가져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주제에 대해 정보가 좀 없으면 어떤가. 그 주제와 관련해 내가 애정을 쏟고, 시간을 투자하며, 경험들을 쌓았다면 그것들은 주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 정보와 또 다른, 혹은 그 이상으로 소중한 이야기들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아무튼 시리즈를 적어 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주제를 선정할 수 있을까. 「아무튼, 6학년」 「아무튼, 배구」 「아무튼, 강낭콩」. 글을 쓰면서도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아직은 나는 이렇게 세 가지 뿐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마저도 주제를 떠올리자 마자 '내가 이 주제에 대해 감히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하는 조바심 부터 나는 것도 사실이다. 6학년만 내리 몇 년을 하셨던 선배 선생님들이 이렇게나 많으신데 꼴랑 6학년 담임 2번 했던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 배구 선수인지 교사인지 헷갈릴 만큼 코트에서 날아다니는 선생님들이 계신데 리시브도 못 받는 내가 배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건방지진 않은지.
하지만 아무튼, 시리즈의 의미는 얼마나 전문가이고 얼마나 잘하는가가 아니니까 다시 한 번 자신감을 가져보려 한다. 교직에 들어오면서 부터 6학년을 열렬히 희망했으나 번번히 밀려나기를 반복했던 끝에 드디어 만났던 6학년 교실은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체력 닿는 한 6학년 교실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싶다. 배구는... 갈수록 입만 느는 것 같지만 그래도 코트에서 파이팅 넘치는 역할로 계속 버티고 싶다. 나는 봄이 오면 벚꽃 구경 대신 강낭콩 새싹 구경을 한다. 그래서 매년, 어디서든 강낭콩을 심고 키울 것이다. 지금 보관하고 있는 강낭콩 씨앗은 무려 5대째 꼬투리로 이어진 종자이다. 그러니, 너무 주눅 들지 말고 내 스스로도 아무튼, 나 이거 좋아해! 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시리즈가 많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나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요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중에 만날 우리 학생들에게도 물어 보고 싶다. 그래서, 너에게 아무튼, 이거 좋아해요. 하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혹시 있다면 글로도 한 번 표현해 보는 건 어떤지.
그래서, 선생님들의 아무튼, 시리즈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