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학교를 그만 두었나. -7- 스승이 아닌 나의. 스승의 날
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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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9:09
# 스승이 아닌 나의. 스승의 날
교직에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념일이 추가 된다. 바로 '스승의 날'.
학생의 입장에서 선생님 놀래켜드릴 겸, 우리도 즐겁게 파티 하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준비도 하며 보냈던 날이었는데
스승의 입장이 되어 맞이하게 된 이 기념일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날이었다.
2013년, 첫 교직에서의 스승의 날은 서로가 애틋했던 만큼 이제 겨우 2개월 함께 보내놓고
스승이라 축하 받는 입장에서도 부끄러웠고, 또 4학년 우리반 학생들도 마냥 신이 났던 하루였다.
그 다음 해에 찾아온 스승의 날도,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과는 마냥 쑥스럽게 보냈다.
작년 담임 학생들은 매일 학교 복도, 계단에서 오며가며 만나던 사이라 굳이 스승의 날이라 애틋함으로 만날 일도 없었다.
2년 간 스승의 날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무슨 벌써 스승의 날에 뭉클함을 느낄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쑥스러웠던 마음이 컸다.
또 한편으로는 현 사회에서 스승의 날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기에 괜한 허울 아닌가 싶기도 했다.
교직이 아닌 아는 사람들로부터, "스승의 날 선물은 많이 받았냐"는 구시대적인 질문을 받을 땐 참 화가 나면서도 듣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해, 2015년의 봄은 논현동 사무실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봄기운이 절정에 달했고 한참 회사일에 정신 없었던 가운데 맞이하게 된 5월.
학교에선 쉬어본 적 없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휴무로 보냈다.
그리고 5월 15일, 나혼자 괜히 더 뭉클했던 날이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된 탓인지, 회사 사람들은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네이버 로고 옆에 조그맣게 적힌 '스승의 날' 표기를 보면서,
예전엔 민망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스승의 날'에서 '스승'에 속했던 때가 있었는데.
만약 학교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제자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뭐하고 지내고 있을까. 다들.
잃어보니 괜히 애틋해졌다.
# 잃어보니 애틋해진다.
하루를 또 꼬박 사무실에서 보내고, 평소처럼 늦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날 침대에는 이모댁으로 도착한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같이 근무했던 친한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서울에서 지내는 곳 주소를 물어봤었다.
택배 보낼 것이 있나, 싶었던 그 주소의 이유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쓴 편지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랐던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편지 하나 하나를 읽으며 정말로 마음이 뭉클했다.
신규 교사라면 모두들 공감하듯, 그 때에는 나 또한 매일을 사회생활인 학교에 적응하느라
학생들을 아껴주고 이야기 잘 들어주는 좋은 교사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기억해 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그 날밤에 읽은 편지들로 마음이 뭉클했기에 다음 날 출근길은 마음이 달랐다.
하지만 역시나, 회사일은 쉽지 않았고 (나의 모자람은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하루를 자책과 후회 속에서 보내며 늦은 밤, 퇴근할 때에는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모댁으로 돌아왔을 때,이모는 또 한뭉치의 편지를 건냈다.
전날에 이어 또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받고 나니 정말이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매일을 복작대며 보낼 땐 이 정도일 줄 몰랐으나,
세상에 어디 일적으로 만난 관계에서 이렇게나 사랑한다 보고싶다 이야기 할 만큼 정 쌓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스승의 날이 되어, 정말 교실이 많이 그리웠다.
집으로 온 편지들에 이어 블로그에도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중국으로 전학간 학생에서도 편지가 왔다.
사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참 마음이 또 희미해질 때 쯤, 9월. 내가 교사였던 게 맞는지 헷갈려가던 그 시기.
이번에는 이모 댁으로 택배가 하나 왔다.
4-2의 추억 앨범, 이라는 손수제작 클리어 파일을 보며 교실로 너무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교육회사에서 근무하며 교육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의 경우,
학생들의 작은 피드백과 연락에도 크게 감동, 감명 받는 경우를 보았다.
학생들은 원래 착하기도 하고 수업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인사치레로 하는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워낙 자주 마주하고,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었던 학생들로부터의 표현을
어느 순간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일반 회사에서는 일년의 마무리,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한 해동안 열심히 쏟아부었는지 알수 있는 지표이며,
그에 따른 진정한 성과급, 보너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스승의 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학생들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선생님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사실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다.
스승의 날 나를 잊지 않고 떠올려주는 학생들. 그리고 나에게 전해주는 진심들.
하지만 잃어보니 정말 더 애틋했던 것. 바로 스승의 날, 그리고 학생들의 마음이었다.